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 교회에서도 몇 번 상영한 적이 있었죠.
볼링 포 콜롬바인, 무기소지에 관한 내용을 담은 영화였고
911 루즈 체인지, 9.11 테러 사건을 음모론적 관점에서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더 있었나? 두 개를 함께 보았군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인 줄 모르고 보았는데 그의 영화라 기대를 하면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조금 보다 끊고 조금 보다 끊기를 반복했더니 영 아쉬웠던 차에 이상북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길래 기쁜 마음으로 관람하였습니다.
조금씩 끊어 볼 때도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끈거렸는데 쭉 이어서보니 그 감동과 분노가, 안타까움이 더 심했습니다.
미국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심지어는 북조선 사람일지라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나앉는 사람들, 더 기가 막힌 것은 은행에 빼앗긴 자기 집을 청소해주는 댓가로 은행으로부터 120만원(1,000달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약올리는 거지요.
드럽고 치사하지만 거절 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벅찬 우리네의 가슴 짠한 현실일 것입니다.
제가 종종 사용하는 말 중에 '그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해설하지 않아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속속들이 우려 먹는다는 뜻임을 다 직감하셨을 것입니다.
그게 자본주의의 속성입니다.
가진 놈은 그 탐욕을 무한대로 키우기를 바라지만 세상의 물질은 한계가 있지요.
게다가 가진 놈들끼리의 카르텔이 있으니 그들끼리의 내부거래에 순응하면서 없는 이들의 등을 치고 그들의 껍질을 벗겨먹는 것이지요.
이놈 저놈 하는... 너무 심한 표현들입니다만 서울 거리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몇 번이라도 본다면 험하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숙자들은 루저, 패배자, 성실하지 못해서 그렇게 됐다고 믿을 것을 강요하고 또 그렇게 믿는 시대입니다.
분명한 것은 unfair하다는 것입니다. 공정하지 못하다!
파생상품이라고 온 세계를 그렇게도 떠들썩하게 하는 그놈이 뭔가 했더니 전문가들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금융상품이더군요.
뭔지도 모르는 것을 만들어 파는 세상, 실물은 없는데 온라인 상으로 없는 돈이 생기기도 하거 있는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세상!
이런 세상을 어떻게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벌어도 누군가가 장난질치면 그 날로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이런 세상이 과연 희망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는 바로 민중,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투쟁과 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항과 투쟁이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지만 그저 그렇게 순응하고 그 시류에 따라가지 못해서 안달을 한다면 결국 노예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자본의 노예, 가진 놈들의 노예, 허상의 노예!
그동안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반란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반란하냐고요?
삶을 바꾸면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창조적인 발상을 하면 됩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나간다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이클 무어 감독 역시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본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추악한 어글리스토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이 되는 스토리를 우리가 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휴머니즘... 러브스토리!

볼링 포 콜롬바인, 무기소지에 관한 내용을 담은 영화였고
911 루즈 체인지, 9.11 테러 사건을 음모론적 관점에서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더 있었나? 두 개를 함께 보았군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인 줄 모르고 보았는데 그의 영화라 기대를 하면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조금 보다 끊고 조금 보다 끊기를 반복했더니 영 아쉬웠던 차에 이상북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길래 기쁜 마음으로 관람하였습니다.
조금씩 끊어 볼 때도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끈거렸는데 쭉 이어서보니 그 감동과 분노가, 안타까움이 더 심했습니다.
미국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심지어는 북조선 사람일지라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나앉는 사람들, 더 기가 막힌 것은 은행에 빼앗긴 자기 집을 청소해주는 댓가로 은행으로부터 120만원(1,000달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약올리는 거지요.
드럽고 치사하지만 거절 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벅찬 우리네의 가슴 짠한 현실일 것입니다.
제가 종종 사용하는 말 중에 '그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해설하지 않아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속속들이 우려 먹는다는 뜻임을 다 직감하셨을 것입니다.
그게 자본주의의 속성입니다.
가진 놈은 그 탐욕을 무한대로 키우기를 바라지만 세상의 물질은 한계가 있지요.
게다가 가진 놈들끼리의 카르텔이 있으니 그들끼리의 내부거래에 순응하면서 없는 이들의 등을 치고 그들의 껍질을 벗겨먹는 것이지요.
이놈 저놈 하는... 너무 심한 표현들입니다만 서울 거리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몇 번이라도 본다면 험하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숙자들은 루저, 패배자, 성실하지 못해서 그렇게 됐다고 믿을 것을 강요하고 또 그렇게 믿는 시대입니다.
분명한 것은 unfair하다는 것입니다. 공정하지 못하다!
파생상품이라고 온 세계를 그렇게도 떠들썩하게 하는 그놈이 뭔가 했더니 전문가들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금융상품이더군요.
뭔지도 모르는 것을 만들어 파는 세상, 실물은 없는데 온라인 상으로 없는 돈이 생기기도 하거 있는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세상!
이런 세상을 어떻게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벌어도 누군가가 장난질치면 그 날로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이런 세상이 과연 희망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는 바로 민중,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투쟁과 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항과 투쟁이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지만 그저 그렇게 순응하고 그 시류에 따라가지 못해서 안달을 한다면 결국 노예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자본의 노예, 가진 놈들의 노예, 허상의 노예!
그동안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반란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반란하냐고요?
삶을 바꾸면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창조적인 발상을 하면 됩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나간다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이클 무어 감독 역시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본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추악한 어글리스토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이 되는 스토리를 우리가 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휴머니즘... 러브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