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공동휴가를 진행하였고 올해도 어김 없이 함께 여름날의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애초 취지는 여름에 적당하게 휴가를 가시기 어려운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여 마치 무슨 수련회처럼 되었네요. 아무튼 좋은 일입니다.
이번 공동휴가는 이관택 전도사님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시간이어서 저는 특별히 관여하지 않고 다 맡겼습니다.
이 전도사님도 주도적으로 목회적인 경험을 하셔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요청을 하였던 것입니다.
준비하고 또 오가는 길 차량 운전하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전도사님이 처음으로 맡아 진행하다보니 여러 가지로 미흡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흡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관택 전도사님을 우리 교회의 담임자로 모셨다면 그 분의 지도력을 인정해주고 따르며 먼저 교회에 오신 분들로 전도사님이 목회활동을 잘 하실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당부드립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고 또 새로운 여건에 자신을 오픈하는 것이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권할만한 것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앙에서 가장 큰 적은 매너리즘, 일상성입니다.
하던 대로, 믿던 대로, 살던 대로... 신앙은 더이상 신앙이 아니라 답습이 되지요. 창조성을 잃은 신앙은 과거의 유물, 화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화석화된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나 추악하고 추잡하며 잔인한 일들을 벌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습관이 하나의 관습,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는 반드시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갖게 돼있습니다.
누구는 이래서 문제고, 누구는 저래서 문제고, 저 사람 때문에 안 돼고, 이 사람이 잘못 했고...
그러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미 전적으로 용납한 형제 자매를 감히 우리가 어떻게 정죄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교회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열려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단 성숙한 인성과 영성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잘 구분하여 절제 있는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땅히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판에 한 교회에서 한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서로를 정죄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일입니까!
예수님은 율법적 정죄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연민으로 서로 이해하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길이 생명과 평화의 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교회는 많은 변화를 맛보고 있습니다. 특히 교우들 수가 갑자기 많이 불어났습니다.
건축하고 이전한 뒤로는 불과 십여 명이 꾸준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교회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기도하였는데 2-3년 만에 배가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그래봐야 재적 약 40명이 고작이라지만 그래도 작은 교회로써는 급격한 변화를 맞은 것이라 당황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 기존교인들과 새교인들 간에 작은 얄력들이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잠재적으로 내재돼 있는 영역과 서열에 관한 욕망 때문일 것입니다.
기존 교인들이나 새교인들 간,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다 좋고 관계가 좋은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생기는 불편함들이 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한 침대에서 잠을 자지만 그 잠자리는 수십년 간 혼자 누워왔던 서로에게는 더없이 불편한 잠자리였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불편함은 남아 있습니다.
하물며 일 주일에 한 번 만나는 교우들 사이에 그런 불편함과 다툼, 논쟁들이 없겠습니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서로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은 없을 수 없습니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대우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고 교인들도 목사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기존 교인들은 그동안 묵묵히 기도하며 교회를 지켜왔던 신앙을 내세우고 싶고 새교인들은 기존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만 상식적인 눈으로 보고 조금만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당연한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고자 하는가 입니다.
욕망 대로 따른다면 우리교회는 더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회사나 써클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기득권력과 신생권력이 부딛히면 그 모임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득권력과 신생권력이 합력하면 놀라운 창의성과 추진력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그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하게 성장을 지속하느냐, 아니면 구멍가게 안에서 분란하다가 주저 앉을 것이냐!
지금까지 해온 대로 예수님을 죽기살기로 따를 것이냐, 이제는 예수님이고 뭐고 그저 우리 목소리만 낼 것이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좋은만남교회에 모여 함께 삶과 마음을 나누는 성도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안하지만 목사인 저는 물론이거니와 여러분들 중에 어느 누구 하나 잘났다고 목에 힘주면서 타인에게 훈수하고 성낼 자격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다 오십보 백보입니다. 조금 더 낫냐, 조금 더 낫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섬기는 곳에 생명과 평화가 있습니다.
이렇게 드리는 말씀이 어느 특정한 누구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여기지 말고 바로 이 글을 읽는 자신에게 마땅히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가는지, 아니면 설교를 자주 않해서인지 말이 많아지네요.
어쨌건 건강하고 무사고하게 잘 다녀오시고 즐거운 시간 되셨기를 바라며 감사드립니다.
준비하느라고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건강한 모습으로 주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