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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아직도 충분히 알 수 없는가?

   

1. 역사적 예수 연구가 그동안 많은 학문적 결실을 내었지만, 아직도 역사적 예수를 “충분히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예수가 살았던 시대상황, 예수가 대결해야 했던 문제들, 예수의 믿음, 예수의 전략 등등에 관해 이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지혜의 아들로 고백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2. 우리가 예수에 대해 더 이상 무엇을 알아야만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할 것인가? 예수가 정말로 요셉의 아들인지 아니면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사생아인지, 목수 일을 했는지 아니면 농사일을 했는지, 세포리스나 티베리아스에서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을 했는지, 인도에 갔었는지, 결혼을 했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학자들이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밝힐 수 있다면,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할 것인가? 도대체 이런 문제들이 우리의 삶과 관련해서 무엇이 그리 중요한 문제라는 말인가?

3. 그런 문제들이 매우 중요하기에, 혹은 결정적인 증거도 없기 때문에 아직 풀리지 않아서,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실제로는 “역사적 예수를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것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4. 내 생각에는 역사적 예수를 알게 되면 될수록, 나에게 개인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감당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이상 요구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생각되거나, 혹은 있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완성을 위한 요구이지만, 역사적 예수는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어 예수의 제자로서 살기를 요구한다. 그 요구에 따르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알 수 없다”는 주장을 핑계로 내세우는 것은 아닐까?

5. 예수 당시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나사렛 촌놈이라고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권력을 가진 부자들과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위험인물로 보고 잡아 죽일 생각만 했다. 세 번째로 열심당이나 시카리파와 같은 반제국주의, 반귀족주의 폭력혁명가들 역시 예수를 혁명에 대한 훼방꾼으로 간주하여 제거할 수만 있다면 제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새로운 세상이 오지 않으면 아무런 삶의 희망이 없었던 사람들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인간의 존재방식과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구현한 그를 구원자로 믿고 따랐다.

6. 그래서 오늘날도 기독교인들은 예수에 대한 성경 말씀을 영적인 해석이나 도덕적인 해석으로 국한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마태복음 1장 첫머리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다윗 가문 출신의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huios theou)임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를 영적인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분이지, 정치와는 상관이 없다는 해석이 정말로 옳은 해석인가? 아니면 이런 영적인 해석은 권력의 시녀가 된 서구 부르주아 신학자들의 해석일 따름인가?


7. 마커스 보그와 도미닉 크로산이 쓴 <첫 번째 크리스마스>(2007)를 보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신의 아들(huios theou), 구세주, 평화의 왕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였다. 14년에 죽은 그는 로마제국 원로원에 의해 승천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1세기 당시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족보는 천 년이 넘는 세대들에 걸친 족보였다. 그 족보는 쥬피터 신에서부터 출발하여, 그의 딸 비너스와 트로이의 영웅 안치세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애네아스였으며, 그의 아들이 율루스로서 율리우스 가문으로 이어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예수의 족보는 바로 로마제국의 신학이 만든 이 찬란한 족보를 정확하게 겨냥하여 한 방에 날려버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성경 전체와 마찬가지로 복음서들 역시 인간의 구원, 그 온전함과 평화를 위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통치를 믿는 복음서 기자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개인적인 구원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정치적인 저항, 특별히 제국에 대한 저항과 뗄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8. 성경을 탈정치화시키고 영적인 의미로만 축소시키는 이유는 성경 해석자들이 결국 권력자들의 하수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이 글은 한국기독교연구소 김준우 소장의 글로 당당뉴스에서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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