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으로 아직 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반도에 급기야
지난 11월 23일에는 북한군이 연평도를 향해 포를 발사하는
무력도발을 가해 우리 측은 4명이 죽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남북한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독일은 통일하여 20주년 행사를 올해 치렀지만 우리는 세계의 화약고라는
인식을 다시금 전세계에 인식시키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남북한 사이 전면전이 발생하면 첨단무기로 무장한 한·미 연합군이
승리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북한 모두 ‘민족의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1994년 이른바 ‘1차 북한 핵위기' 당시의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약 150만 명이
사상할 것이라고 나왔습니다.
한국의 예비군이 소집되고 미 육군도 한반도에 집결하여 개전 1주일 이내에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인만 최소한 1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남한측 민간인 사상자는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5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2004년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 따르면 이때는
1994년의 피해보다 1.5배 이상 늘어나 24시간 내에 사상자가 230여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2010년인 현재에는 그 피해가 더욱 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초기의 정밀타격으로 북한의 장사정포를 궤멸시킨다고 하여도
위장하거나 지하에 숨은 장사정포의 30%는 살아 남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시간당 7200발의 포탄을 수도권에 쏠 수 있기 때문에 그 피해는
극심할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정밀타격으로 초기에 전쟁의지를 꺾어 버리겠다는
작전 역시 그들의 광기를 자극해 화학무기나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제2의 한국 전쟁이 일어날 경우 무기체계의 발달로
한국전쟁보다 17배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전쟁이라는 말은 결코 쉽게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닙니다.
남북한 간의 긴장고조 상황에서 우리 기독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전쟁이
한반도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모든 호전적 발상들을 묶는 것입니다.
평화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지상명령입니다.
그런데 북한을 압박하고 박살을 내야 한다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땅 위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 34)는 구절입니다.
하긴 평화의 왕 예수님의 말씀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칼은 예수의 칼을 자기 식으로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의 칼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목숨마저 내어놓는 사랑의 칼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군사력으로 타민족을 정복하고 평화가 왔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거짓 평화였습니다.
서로의 평화롭고 정의로운 관계를 강조하는 성서의 평화는 아니었습니다.
원자폭탄, 항공모함, 최신 전투기 모두 거짓 평화의 산물입니다.
예수께서 칼로 베어 버리겠다고 한 것은 바로 이 거짓 평화, 무력과 억압과
불의로 만들어진 사이비 평화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 평화를 깨는 예수의 칼은 바로 사랑이라는 원자폭탄이었습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사랑의 원자폭탄으로 김정일, 김정은, 북한의 원자폭탄을 녹여야 합니다.
우리의 저주는 북한의 원자폭탄 수를 늘리고 강화시킬 뿐입니다.
초기 카타콤 순교자들의 사랑과 죽음이 힘으로 통치하던
로마제국을 녹였습니다.
한반도에 힘으로 유지되는 거짓 평화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의
물결이 넘칠 때 비로소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거짓 평화에 연연해서는 결코 진정한 예수의 평화, 살롬의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북한과 화해 협력 교류하는 것은 북한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원자폭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원자폭탄만이 북한의 핵무기, 생화학무기, 수령 독재를 녹일 수 있습니다.
남한의 압박정책은 북의 포를 뜨겁게 할 뿐입니다.
포용정책으로 북이 핵무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압박정책이 북의 핵무기를 추동하였습니다.
포용정책은 핵개발을 지연시켰으나 대결정책은 핵개발을 촉진시켰습니다.
남한의 지원이 없었더라도 북은 어떻게 해서든 핵을 개발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북한입니다.
결국 북미 평화협정만이 진정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기독인의 사랑의 원자폭탄은 북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녹일 것이고 하나님은 결국 이 땅에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혹 우리의 사랑의 원자폭탄이 제 기능을 못할까 두려운가요?
그러나 두려워 맙시다.
북한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칼에 의존한다면 마침내 그 칼로 다칠 것입니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지난 11월 23일에는 북한군이 연평도를 향해 포를 발사하는
무력도발을 가해 우리 측은 4명이 죽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남북한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독일은 통일하여 20주년 행사를 올해 치렀지만 우리는 세계의 화약고라는
인식을 다시금 전세계에 인식시키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남북한 사이 전면전이 발생하면 첨단무기로 무장한 한·미 연합군이
승리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북한 모두 ‘민족의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1994년 이른바 ‘1차 북한 핵위기' 당시의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약 150만 명이
사상할 것이라고 나왔습니다.
한국의 예비군이 소집되고 미 육군도 한반도에 집결하여 개전 1주일 이내에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인만 최소한 1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남한측 민간인 사상자는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5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2004년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 따르면 이때는
1994년의 피해보다 1.5배 이상 늘어나 24시간 내에 사상자가 230여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2010년인 현재에는 그 피해가 더욱 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초기의 정밀타격으로 북한의 장사정포를 궤멸시킨다고 하여도
위장하거나 지하에 숨은 장사정포의 30%는 살아 남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시간당 7200발의 포탄을 수도권에 쏠 수 있기 때문에 그 피해는
극심할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정밀타격으로 초기에 전쟁의지를 꺾어 버리겠다는
작전 역시 그들의 광기를 자극해 화학무기나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제2의 한국 전쟁이 일어날 경우 무기체계의 발달로
한국전쟁보다 17배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전쟁이라는 말은 결코 쉽게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닙니다.
남북한 간의 긴장고조 상황에서 우리 기독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전쟁이
한반도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모든 호전적 발상들을 묶는 것입니다.
평화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지상명령입니다.
그런데 북한을 압박하고 박살을 내야 한다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땅 위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 34)는 구절입니다.
하긴 평화의 왕 예수님의 말씀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칼은 예수의 칼을 자기 식으로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의 칼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목숨마저 내어놓는 사랑의 칼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군사력으로 타민족을 정복하고 평화가 왔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거짓 평화였습니다.
서로의 평화롭고 정의로운 관계를 강조하는 성서의 평화는 아니었습니다.
원자폭탄, 항공모함, 최신 전투기 모두 거짓 평화의 산물입니다.
예수께서 칼로 베어 버리겠다고 한 것은 바로 이 거짓 평화, 무력과 억압과
불의로 만들어진 사이비 평화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 평화를 깨는 예수의 칼은 바로 사랑이라는 원자폭탄이었습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사랑의 원자폭탄으로 김정일, 김정은, 북한의 원자폭탄을 녹여야 합니다.
우리의 저주는 북한의 원자폭탄 수를 늘리고 강화시킬 뿐입니다.
초기 카타콤 순교자들의 사랑과 죽음이 힘으로 통치하던
로마제국을 녹였습니다.
한반도에 힘으로 유지되는 거짓 평화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의
물결이 넘칠 때 비로소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거짓 평화에 연연해서는 결코 진정한 예수의 평화, 살롬의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북한과 화해 협력 교류하는 것은 북한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원자폭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원자폭탄만이 북한의 핵무기, 생화학무기, 수령 독재를 녹일 수 있습니다.
남한의 압박정책은 북의 포를 뜨겁게 할 뿐입니다.
포용정책으로 북이 핵무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압박정책이 북의 핵무기를 추동하였습니다.
포용정책은 핵개발을 지연시켰으나 대결정책은 핵개발을 촉진시켰습니다.
남한의 지원이 없었더라도 북은 어떻게 해서든 핵을 개발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북한입니다.
결국 북미 평화협정만이 진정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기독인의 사랑의 원자폭탄은 북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녹일 것이고 하나님은 결국 이 땅에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혹 우리의 사랑의 원자폭탄이 제 기능을 못할까 두려운가요?
그러나 두려워 맙시다.
북한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칼에 의존한다면 마침내 그 칼로 다칠 것입니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