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예수를 기다리며
/ 윤성일 집사
어릴 적 이야깁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예수님은 안중에 없고 산타할아버지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주시는 선물은 사탕이랑 과자가 잔뜩 들어 있는 사각 몇 호 종합선물세트였지요. 입안에서 눈 녹듯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그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일년에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아침에 일어나 가슴을 두근거리며 선물 포장을 벗겨내면 거기에는 늘 선명한 한글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궁금했습니다. 사슴 썰매를 타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먼 곳에서 오시는 산타할아버지가 주시는 선 물에 왜 한글이 찍혀 있을까?
제가 재민이만큼 어렸을 때 집 옆에 작은 침례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처음 찬송을 배웠습니다. 교회 창문에 길게 내려 쳐진 두툼한 보라빛 커튼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게 주시는 선물이니 받아라.” 모나미 볼펜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먼 하늘나라에 살고 계시는 예수님이 학교 앞 문방구에 있는 우리나라 모나미 볼펜까지 알고 계시다니! 또 연필처럼 깎을 필요가 없기에 내가 늘 볼펜을 갖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이런저런 의문들을 풀지 못한 채 청년이 되었습니다. 방황했지요. 돌도 던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끝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폭풍 같은 청년시절에 제가 내린 결론은 침묵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세상만사에 침묵하시는 하나님! 좌에도 우에도 개입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눈앞에서 날마다 불의가 행해져도 구경만 하시는 비겁한 하나님! 지구라는 녹색별을 지으시고 그 안에 온갖 생명을 풀어놓으시고는 너희들끼리 치고 박든지 말든지 내 상관할 일은 아니다 방관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밤마다 저는 하나님에게 고함 지르고 주먹감자를 먹였습니다.
그 후 저는 인간의 언어에서 답을 찾고자 텍스트 여행을 떠났습니다. 글자가 적힌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신문 쪼가리든 포르노 잡지든 상관없이 인간이 뱉아낸 모든 언어를 읽어내겠다는 각오로 겁없이 덤볐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청년시절이 끝나고 장년이 되었습니다. 그 여행길에서 몇 번 성경을 만났습니다. 성경 속에서 인간의 냄새를 흠씬 맡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사에 침묵하시지만 인간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언어로 편재하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이제 어렴풋이 느낍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하늘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작은 예수로 살면서 구현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