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대학의 의미... 깨어나십시오!

by 방현섭 posted Sep 29,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랜만에 목회자 노트에 글을 올립니다.

눈에 잘 안 띄는 글이라 얼마나 보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많이 봐주세요.

목회자가 세 명이나 있지만 담임전도사, 소속목사 등으로 입장이 애매한 상태에들 있다보니 목회자 노트에 글이 잘  안 써졌나봅니다. 어쨌건 저도 목회자이니까, 그리고 수요성서대학 강의를 하는 목회자로서 글을 몇 자 적어봅니다.

 

2011년 가을학기를 시작하고 이제 세번째 시간을 지냈습니다. 첫 모임에는 몇 분 안 오셔서 그냥 복습 위조로 강의를 했고 추석이라 한 주 쉬고... 지난 주에 한 번, 이번 주에 한 번... 세번 밖에 안 했습니다. 그래도 꾸준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어제 수요성서대학 강의를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을 즈음 장문의 휴대폰 문자를 한 통 받았습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누가 보내신건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내용은 한번 옮겨봅니다.

 

"목사님 ...이런 표현 맞을진 몰라도..성경읽는 맛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늘 지루하고 무섭고 잔인하기까지한 구약을 읽을땐 하나님은 이렇게 무섭고 잔인하신 분일까

늘 ???물음표를 찍게 했었는데 성서대학 들으면서 뭐랄까 신세계를 만난기분?

내 머리를 확 깨워주는 기분?...

그래요.... 성서대학에 맞춰 요즘은 신약을 읽는데 즐거워요...

예전엔 신앙인으로써의 의무감? 읽기표 색칠해서 내야하는 뒤지기 싫은 경쟁심?

뭐그런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서 특정 구절들 외엔 그리 머리에 많이 남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도 즐겁게 다시금  읽고있어서 감사드려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우선 감사합니다. 제가 수요성서대학 강의를 계속 해야할 이유를 알려주셔서 말입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대북지원단체에서 일하면서 수요일마다 강의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치게 되는 일도 다반사이고 또 한편으로는 전도사님께 누가 될 수도 있는 일이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 내가 좋은만남교회에서 존재의미를 갖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갖고 이런 열매를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결심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물론 저에게 문자를 주신 분만이 아니라 성서대학에 참여하시는 분들 모두가 다 비슷한 생각을 하시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적지 않은 분들이 꾸준히 성서대학에 참여하시면서 얼마나 많이 변하고 달라졌는지 저에게는 아주 잘 보인답니다.

 

신학대학생들이나 하는 고민들, 신학대학원생들이나 알아야 할 내용들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무슨 신학박사 석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수준 높은 강의를 계속해서 해오는 이유는 바로 여러분들 자신을 위해서, 여러분들의 바른 신앙을 위해서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이런저런걸 따지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동안 신앙이라는 것이 믿기 어렵다 해도 그냥 믿으면 되는 것이고 믿다보면 믿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래서 뭔가 잘 모르면서도 느낌으로 감으로 믿으면 그게 믿음 좋은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것이라고들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더이상은 아닙니다. 교육수준도 높아졌고 생활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전혀 다른 방식의 믿음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전혀 다른 방식의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머리로도 역시 이해해햐 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지식을 가르치고 또 지식과 지성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지식과 지성에 따라 사는 것이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만 오면 그런거 다 필요 없다, 그저 무조건 믿어라, 믿기 어려운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식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성적 지식을 교육 받은 젊은 층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느덧 양로원화 되고 있습니다. 원로들이 교회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서 젊은 층이 믿음이 없다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 어절 수 없는 세대차이가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회가 젊어지려면 이제는 머리로 믿음을 이해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합니다. 머리가 믿지 못하는 것을 가슴이, 마음이 믿기는 어렵습니다.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전혀 가슴이 믿을 수 없다는 단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머리가 믿지 못하는 것을 가슴이 믿는 것이 오히려 희귀한 현상이 돼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체험이나 경험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방식을 거부하고 소수의 독특한 사람들, 어쩌면 옛것이 돼버린 방식을 통해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열려있는 신앙이라면, 저는 단호하게 거짓된 신앙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단이라고 하는 집단들은 오직 소수의 자신들에게만 특별한 능력이나 체험, 권위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몇십만 몇천 명에 들어야 한다느니 자신들만이 진리를 담지하고 있다느니... 소수의 독특한 체험이나 소유를 고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단인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머리를 깨우시고 가슴으로 느끼시면서 하나님 말씀이 지닌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나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죠. 하나님 말씀도 역시 살아계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계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저 강단에서 설교자가 설교할 때에나 종종 인용하는 정도이지 그 말씀이 살아서 우리 자신의 삶에 강하게 역사하면서 우리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대에 하나님 말씀을 죽었습니다. 살아 있어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살아 있는 희귀한 것이 돼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다시 살려내야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살려내는 것은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말씀, 그 가르침에 이끌려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하나님 말씀이 생명력이 있는 것이지요.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그냥 그렇게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감동을 받아야 하고 그 감동의 힘이 자신을 이끌어가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옳고 능력이 있으며 구원의 길이라는 것에 스스로가 동의하고 공감해야 이런 기적같은 일이 우리 삶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외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성경구절 암송대회를 많이 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이제와서 되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라는 말은 뭐고 메시야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인지, 대속, 속죄, 어린양 등등의 개념이 생소한 것은 여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워 알아야 합니다. 배워 알게 되고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칠 때 그 말씀은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우리 삶의 지침을 바꿔놓게 되는 것이고요.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요? 변덕이 많은 이유, 쉽게 지치거나 또 쉽게 기뻐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울다가 웃다가 투정부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헤헤거리는 삶! 삶에 기본적인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의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힘든 일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아멘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삶에 기본적인 의미가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찾는 사람은 작은 바람 앞에서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는 풀잎 같은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힘과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힘, 신앙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을 때 나타나게 되고 그 감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했을 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야기가 참 길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성서를 읽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여러 가지 지식과 지적 도구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도구를 손에 쥐어주는 것이 바로 좋은만남교회의 수요성서대학입니다.

수요성서대학에 많이들 나오세요! 하하하! 긴 글에 비해 결론이 너무 허무한가요?

 

수요성서대학을 통해 깨어나십시오. 몽유병 같이 산들 그게 내 삶입니까? 그건 한낯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꿈처럼 그냥 그렇게 살다 가겠습니까? 뭔지도 모르고 믿으면서 믿는다고 주문 외우듯이 외운다 한들... 구원은 받겠지요. 그러나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몽유병과 같은 삶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꿈 속에서는 무엇이 자신에게, 인생에 중요한지 알지 못하고 신기루만 좇다가 잠에서 깨고는 쓴 입맛을 다십니다. 깨어나야 자신의 삶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게 됩니다. 정작 중요한 일은 제쳐놓고 헛된 일에만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고 인생을 깨우는 일에 수요일 저녁 한 시간을 투자하세요. 저는 자신있게 권합니다.

 

수요성서대학에 마음 쓰고 참석하시면... 여러분의 인생이 깨어나게 됩니다.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