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꾸밀 코디네이터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상책방) 주인 윤성근(37·사진)씨가 발탁됐다.
윤씨는 3일 오후 박 시장과의 면담 직후 “박 시장이 나를 불러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콘셉트로 집무실 공간 디자인을 부탁했다”며 “‘서울시민들이 시장한테 바라는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일 별도의 공간을 만들 것과 기존의 책장을 재활용할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윤씨는 주말에 실측과 디자인을 거쳐 다음주까지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헌책방 주인 윤씨와 박 시장의 인연은 몇해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였던 박 시장이 은평구를 방문했을 때 응암동 윤씨의 책방을 들른 게 계기였다. 평소 헌책방을 자주 가는 편인데다,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동네사랑방을 겸한 윤씨의 서재식 헌책방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때 헌책방의 꾸밈새를 보고 희망제작소의 집무실을 꾸며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박 시장이 반한 ‘이상책방’의 디자인은 소통과 재미가 특징이다. 사방을 책으로 두르고 다양한 높이의 책꽂이로 파티션을 삼았다.
윤씨가 쓰는 공간은 유리케이스로 칸막이를 삼았는데, 그 안에는 자신이 자원교사로 일하는 대안학교인 씨앗학교 어린이들이 기증한 꼬물꼬물 인형들이 가득하다. 곳곳에 설치한 소품들이 윤씨의 깔끔한 성품과 재밌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방 한가운데는 두 개의 탁자와 의자들이 있어 누구나 책을 보거나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탁자를 한편으로 밀쳐두고 옹기종기 앉아 한쪽에 마련된 야트막한 데크의 연사를 향할 수도 있다.
“시장님이 희망제작소 집무실의 코디를 맘에 들어했던 것 같아요.”
장서 1천여권으로 사방 벽을 두르고 집무 책상 뒤쪽 책꽂이에 커다란 문을 단 상임이사의 집무실은 방문객들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필수코스가 됐다. 시선은 당연히 뒤쪽의 문으로 쏠리는데 “궁금하시죠?”라며 정작 문을 열면 거울이 들었을 뿐이다. 물론 거울에는 방문객들 모습이 비친다. “바로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그 순간 방문객들은 희망제작소의 열렬한 팬이 되기 마련이다.
“권위적이고 고풍스러운 현재의 사무실 분위기를 생기있고 발랄하게 바꾸어 사람냄새 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해요.”
윤씨는 30여평의 시장실에 희망제작소와 박 시장 자택의 책을 합쳐 5천~6천권의 책을 비치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옛 집무실에 비해 훨씬 넓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자신의 헌책방과 규모가 비슷해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다만, 공·사 공간의 조화와 시민과의 소통이 주제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윤씨의 책방은 자신이 읽은 뒤 추천할 만하다고 판단되는 책들만 진열해 파는 게 특징. 손님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두고 원하면 언제든지 상담에 응해 읽을 만한 책을 함께 찾는 방식이다. 그 외 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2009년 책과 책방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낸 데 이어 최근 후속작 <심야책방>(이매진)을 펴냈다. 제목은 격주 금요일 밤새도록 책방을 열어 동네사람들의 사랑방·공부방이 되고 있는 자신의 ‘심야책방’ 프로그램에서 따왔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