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좋은만남 12-15] - 나의 고백 2 / 강경숙 집사

by 좋은만남 posted Apr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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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백 2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를 읽고

글: 강경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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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치 있게 사는 것 우리의 가슴 두드림을 듣는 것 성경의 가르침은 그러하다 함께 서로 베풀고 아끼고 서로 보살피며 타인의 것들을 욕심내지 아니하며 어울려 사는 모습. 더불어 말이다. 그처럼 산다면 분쟁과 시기와 질투와 탐욕으로 가득 찬 계략은 없을 것이다. 웃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한 삶, 금은보화는 없어도 그것이 천국 아니겠는가. 저자의 말처럼 사후의 세계 천국이라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없다 주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곳은 그런 화려함이 존재하는 곳은 아닐 것 같다. 그 곳 또한 더불어 함께 사는 곳이 아닐까

나는 죽음에서 다시 생명을 찾은 체험이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한 나의 하나님은 늘 조용히 미소로 바라보시며 지키시는 분이셨다. 성서대로라면 벌 받아 마땅할 나다. 자살 생명을 포기하는 나에게 형벌 보다는 따뜻함을 주셨던 분이셨다. 나의 일상속에 뜻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몰아쳐도 저 낭떨어지로 몰아가지 않으시며 나에게 위로라는 것을 주시는 나의 든든한 빽 이기에 그 힘으로 난 잘 버티며 살았고 그럴 것이다. 내게 심장 뛰게 하시는 분이셨고 나의 양심이란 것에 사정없는 방망이질로 나를 늘 깨어 있게 하시는 분이시다. 혹자는 신앙의 믿음이란 것이 양심과는 다른 것이다 라며 비난도 한다. 그러나 난 그것이 꼭 그러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그가 내 안에 계심으로 옳고 그릇된 것에 대한 깨우침의 방망이질이며 불의를 보며 분괴하는 방망이 질이고 아픈 자를 보면 가슴이 저미는 아픔을 느끼며 외면치 않게 하는 방망이 질 이기 때문이다 곧 사랑 이라 난 믿는다.

나는 느낀다. 예수의 삶. 사랑.. 그 사랑은 절대 이기적일 수가 없으며 나의 이익이나 계산 따위가 섞일 수 없다. 그 안에는 “서로”라는 개념이 농도 깊게 담겨 있다. 난 “더불어”란 말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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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엔 나란 존재가 부각되지도 너란 존재가 도드라지지도 않는다함께 같이 라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 ”같이 “라는 말은 아마도 세월이 더 지나면 신종어가 될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는 “나”만이 존재한다. 1차 집단인 가족 안에서도 그러니 학교 직장 사회 모든 곳에서 내 가족이 아닌 타인들의 집단 속에선 더 하지 않겠는가. 골로세서 1장 20절에 보면 “그분은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 자기와 기꺼이 화해 시켰다....”라고 되어 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만물의 모든 것의 담을 헐어 버리신 예수다.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고전적인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옛 사람들의 해석 그대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권하고 마치 그리하지 않으면 바른 신앙인이라 여겨지기 어렵다는 것처럼 비난도 받는다.

담을 허무셨단다 우리는 담을 허물고 있는가? 남녀 간에, 병자와의, 동성애자들에게, 노동자들에게, 나보다 덜 배운 이들에게, 덜 갖은 이들에게 타종교인들에게 타교회 사람들에게 우리 스스로가 담을 쌓고 살고 있지 않은가? 성령이 임재 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난 그것 이라본다. 그런 마음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럴 용기와 사랑이 있는 것.

선악과의 원죄로 시작되는 삶이 아니라 가치 있도록 현 삶을 하나님 “보시기 좋았더라“ 하셨던 이 세상을 의롭게 아름답게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그 가르침 난 그것이 하나님 나의 부모이신 분의 가르침이라 믿는다. 내가 좋은 만남교회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있다. 이곳엔 “우리” “더불어”라는 말이 존재하고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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