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좋은만남 12-26] - 고물차를 위한 기도문 / 이인건 청년

by 좋은만남 posted Jun 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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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차를 위한 기도문

글: 이인건 청년
 

 하나님 안녕하십니까. 어제도 그것이 달렸습니다.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부활하더군요. 한번은 그걸 차고 지리산에 갔었습니다. 히터를 틀었는데 터질듯이 달달 거려서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정신과 마음의 안정감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지리산 자락에서 신새벽에 눈 위를 타다가 농수로를 침범한 기억도 가진 차입니다. 그러나 돌아오던 길에는 결국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멈췄습니다. 생명이 꺼져갈 때 날숨 들숨 희미해지듯 서서히 멈추던 그 자동차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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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오늘은 그것을 타고 서울 밤을 달리고 있습니다. 눈 돌릴 틈도 없이 빽빽이 서있는 가로등 빛을 받으며 거친 바퀴를 굴려 거무튀튀한 콘크리트 길을 갔습니다. 어둔 밤을 헤치며 은하철도처럼 갔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고 옆 차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갔습니다. 누구에게는 달콤한 밤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여전히 고된 일을 해야 할 시간일 것입니다. 밤이 내린 대학의 캠퍼스에 우린 포스터와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워크캠프를 가기 때문이죠. 대학생들에게 빈곤과 차별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자고 포스터가 권할 것입니다. 어떤 이가 다가오고 워크캠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라는 삶으로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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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일도 다시 밤이면 자동차랑 함께 여기 저기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다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싣고 은평구 여기 저기를 향하겠지요. 강경숙 집사님은 연신내에서, 오호숙 권사님은 음, 어디더라,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 함옥분 권사님은 상암동 근처에서, 보란이는 불광역 근처에서 정희누나는 저 멀리까지. 우리 모두 봉고차에 자신의 자리와 흔적을 조금씩 남겼어요. 자신을 닳아가는 이 자동차에게 당신 자비를.

 

 사실, 차를 타고 달리는 저는 간간히 시동이 꺼질 때 조금 불안합니다. 제 손으로 앞서 천국으로 보낸 팥빙수기계처럼 제가 타고 있다가 고장 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히터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여름엔 항상 에어컨대신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들입니다. 하지만 결국 봉고타고 저 멀리 건대에서 서울대까지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동문이 달려있지 않습니까. 신기한 자동차입니다. 살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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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우리 교회에서 한기연의 활동을 지원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던 자리가 생각납니다. 우리들 모두가 이 차를 타고 여기서 저기로 다녔지요. 지금까지 함께 갔던 여러 장소들이 생각납니다. 덩달아 항상 봉고를 앞질러 가던 목사님의 마티즈나 윤성일 집사님의 차도 생각나는군요. 달리는 거리만큼 추억을 쌓고 우리의 신앙도 깊어지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많은 장소를 향해 달려갈 고물차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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