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뉴스에 흘러나오는, 박근혜의 고무인형 같은 무표정과 기계음 연설을 들으며 나는 오늘 분노한다. 공권력이라 참칭한 살인적 국가 폭력으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아니 벼랑 아래로 이미 떨어져 죽음의 행진을 스물세 번이나 길게 이어가고 있던 쌍용 해고노동자들이 박근혜가 약속했던 국정조사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대한문 옆 담벼락에 지친 몸을 기대어 세상을 향해 호소하던 그 천막이, 어이없는 자의 방화로 그나마 소실되어 더욱 초라해졌던 그 농성 천막이, 도둑처럼 새벽에 몰려온, 세금으로 밥 얻어먹는 자들에 의해 10여 분의 짧은 작전으로 철거되었다.
국가는, 중구청은, 그리고 무관심한 세상은 그 자리에 대신 꽃을 심어 우리의 눈을 속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환각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 잠깐 우리의 눈을 가린들 이 땅의 남루한 노동 현실이, 시시로 때때로 도지는 그 아픈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평택 진압의 날, 그 공장 지붕 위를 바람처럼 내달렸던 국가 폭력, 그리고 누군가가 높이 쳐들어 쓰러진 누군가를 힘껏 내리쳤던 그 몽둥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폭발하면서 불에 타오르던 망루와 그 아비규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재능교육이 학습지 교사들에게 내민 월급명세서에 황당하게 찍혀 있던 그 560원, 이러한 것들은 우리 사는 동안 내내 영혼의 깊은 상처로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국가를 상대로 죽는 날까지 아물지 않을 우리 영혼의 상처에 대해 집단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상처로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국가를 상대로 죽는 날까지 아물지 않을 우리 영혼의 상처에 대해 집단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지난 대선에 앞서 국정조사를 입 발린 소리로 약속했던 자들이 권력을 쥐었다.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해.” 언젠가 이명박이가 지껄인 소리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어느 별장에서 누군가가 개흘레질을 하면서 부르던 노랫소리다. 지난 주일, 대한문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이 “흘러”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아픈 청춘이다. 꿈틀대는 청춘이다.
흘러 흘러 어느새 예까지 왔느냐 기름때 쩔은 작업복 속에 초라한 내 몸뚱아리여
흘러 흘러 지랄같이 눈물이 흘러 기막힌 내 청춘 어데로 갔나 하늘아 말해 다오
살다 살다 개 같은 꼴 한두번이냐 땜빵 노동자 하청 노동자 비정규직 설운 인생아
흘러 흘러 개엿 같은 세상도 흘러 노동자 잘사는 그런 세상은 꿈속에 일렁거리나
무얼 위해 하루 하루 죽어가느냐 일거리 생각 새끼들 생각 천금 같은 몸뚱아리야
돌고 돌아 기계 따라 돌고 또 돌아 멈춰 선 이곳은 어디메더냐 세상의 시작이더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