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나이 서른셋. 오일팔도 삼십삼 주기를 맞았다. 나의 나이가 된 이들 중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리라. 삼십삼 년 전 광주에서 어떤 이는 부모를 잃고 어떤 이는 자매를 형제를 잃고 어떤 이는 친구를 잃었다. 망월동 묘지에서 만난 오월지기께서 우리에게 이야기 하나를 해주셨다. 만삭의 아내가 남편을 찾으러 갔다가 죽음을 당하였다고 뱃속의 아이는 바로 죽지 않아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지 많은 사람들이 심장이 뛰는 듯한 배를 볼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아이의 심장이 뛰는 것을 볼수는 없었다 한다. 그것을 보고 어느 누가 분노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어느 누가 거리로 나가지 아니할 수 있었겠는가? 망월동 구 묘역을 돌아보며 묘비에 쓰여 있는 글들을 보며 눈물이 참고 또 참았다.
그 애절한 그리움과 슬픔. ‘5월 그 청청한 햇살만큼이나 저희들 가슴에 간절한 그리움으로 살아계시는 아버님 당신은 평화의 고향에 잠들어 계십니다.’ 금남로를 걸었다. 골목 구석 구석 투쟁의 현장이었던 장소들을 걸었다. 뜨거운 햇살... 흘러내리는 땀... 그냥 걸었을 뿐인데 지쳤다. 그 당시에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을 피해 얼마나 이리저리 뛰어다녔을까?
금남로 중앙에 서서 전남도청을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화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차 있었을 1980년 오일팔 광주시민들을 생각하니 비통할 뿐이다.
푸르른 오월 청청한 햇살 가운데 역사의 비극 일어났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시대의 비극이 그네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우리 삶에 여전히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나의 삶에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날의 비극을 바라보고 잊지 말며 또 다른 비극이 오지 않기를 위하여 살아가리라. ‘오늘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내 안에서 네가 살고 네 안에서 내가 뜨겁게 숨 쉰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뜨겁던 피를.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