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그렇다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인생의 난제라는 큰 벽을 만났을 때, 오르지 못하는 높은 산을 만났을 때, 인생의 방향이 오리무중일 때, 그래서 해답이 간절히 필요할 때, 하나님의 뜻을 간구 혹은 간청하지요. 해답을 얻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만, 인생의 괴로운 시련 중이나 납득하기 힘든 일을 당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당연한 귀결일 수 있습니다. 침묵이라는 답이 말이지요. 이 침묵을 우리들을 답답하게 그리고 절망스럽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라고 무의식적으로 훈련되어지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지요.
웨슬리 웨더헤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뜻을 3가지로 잘 파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상황적인 뜻, 의도적인 뜻 그리고 궁극적인 뜻을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악용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이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싶게 사용하고 통용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 해나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아쉽게도 하나님나라를 이룩하는데,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생활에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의 유지와 성장에만 관심이 있는 제한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가두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위해 존재하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웨슬리 웨더헤드는 하나님의 뜻을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애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곧,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은 상황적으로 힘든 상황에 몰려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를 받아드려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웨더헤드는 부활사건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십자가를 질 수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이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의 잘 짜여진-결론을 아는 드라마로만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으로 들어간다면, 이는 드라마가 아니라 실재이지요. 그리고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십자가를 질 것인가 말 것인가로 말이지요. 십자가는 곧 고난을 의미합니다. 우리네 삶에 있어서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