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가져야 할 때가 아니라, 용기를 낼 때입니다.

by 좋은만남 posted Dec 16,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연말이 다가올수록 새해의 희망찬 미래보다는, 좋은 소식보다는, 암울한 소식들이 먼저 들리고, 무엇하나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볼 때, 가뜩이나 추운날씨가 더욱더 춥게만 느껴지게 됩니다. 저보다는 여러분들이 그리고 우리들보다는 지금 바깥에서 투쟁하고 있는 분들이 이번 겨울이 더 춥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겨울은 시간이 가면, 지나갑니다. 그리고 봄이 오겠지요. 그런데 마음의 겨울이 한 번 자리 잡게 되면, 손쉽게 봄이 오지 못합니다. 무언가의 계기가 있어야지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들에게 언제 봄이 올까요?
  얼마 전 한 주 동안 독일에 다녀왔습니다. 독일의 정치 및 사회 시스템, 독일 교회의 사회참여, 그리고 시민의식 등 우중충한 날씨 빼고는 모든 게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제 마음에 자리 잡았던 것은, “우리는 안 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왜 이러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될 수밖에 없는지는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어디서부터 고쳐야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부터라는 복잡한 생각이 오고갑니다. 이런 생각 끝에는 바로,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꼬리표가 붙게 됩니다. 무엇 때문 인지 몰라도 계속해서 자괴감 섞인 그리고 패배감 섞인 생각뿐입니다. 그러면서 나 그리고 내 주변에 공동체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반문하게 됩니다.


한 노동조합 대표가 자진출두 했습니다. 최후의 보루였던, 종교마저도 아무런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쓸쓸한 패배를 맛본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가 정부의 눈치를 본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상징성마저는 포기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징성마저도 잃어버렸습니다. 이젠 사회적으로 억울하게 탄압받는 이들의 최후의 울타리나 피신처가 되지 못하는 상황, 그렇다면 과연 존재해야 되는 의무나 정당성마저도 상실한 사건입니다. 이 와중에도 아무것도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종교인의 비애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무언가라도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그 무언가는 추상적일 수 있는데, 먼저, 용기를 내야합니다. 아직 이 싸움이나 민주주의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슴에 품고 무언가를 시작해야합니다. 무언가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어야 하며, 용기를 내는 이들과 함께 어려움을 나누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이 용기는 배가 되고, 바꿀 수 있는 단초가 발견됩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추상적이지만,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KakaoTalk_20151208_23530476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