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by 좋은만남 posted Jul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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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해방'의 달]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에서 놓여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사적으로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사회 인권의 측면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억누르고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는 관습과 제도가 많습니다. 다양한 억압으로부터 놓여 하나님 자녀의 존엄을 누리며 살게 하십시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7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을 경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공동설교를 해주신 방정혁 학생에게 감사드립니다.

2. 오늘 공동식사 후에는 평화통일기도주일 연합예배 특송 연습을 하겠습니다. 연습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십시오. 

3. 이번 토요일(3일)부터 1박2일로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가 열립니다. 수고하실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을 응원해주시고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4. 다음주일 오후에는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 수영장 물놀이를 합니다.

5.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작은교회 연합소풍예배가 8월 둘째주일(11일) 임진각에서 열립니다. 개인 일정을 조정하시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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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휴가, 한 여름밤의 꿈을 잘 마쳤습니다.”

 

지난 20~21일에 친교문화부가 제안한 이번 공동휴가는 강원도 철원일대와 포천에서 하루를 다니는 일정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온다고 하여 걱정을 많이 하였지만 오히려 너무 덥지 않은 좋은 날씨였습니다. 철원으로 가는 길에 재인폭포 이정표가 보여 잠깐 들렀습니다. 먼저 가신 윤 집사님 일행도 되돌아와 합류하셨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많이 가물어 다들 안타까워 하셨네요. 

노동당사를 둘러보고 소이산에 올랐습니다. 곧바로 전망대로 올라가는 코스가 아니라 소이산 둘레 생태숲길을 걸었는데 아름답고 운치 있었지만 습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 지치신 분들이 속출하였습니다. 소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너른 철원평야의 풍광이 정말 장관이었는데, 지쳐서 정상에 함께 오르지 못한 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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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려던 철원오대쌀 정식 식당에 예약이 다 찼다고 하여 급하게 막국수집을 알아봐 식사를 하였는데, 연못과 꽃밭, 정원을 잘 가꾸어 놓은 식당이었습니다. 맛도 있고 비용도 절감이 된 덕분에 한국의 작은 그랜드캐년이라는 고석정에서 통통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고석정이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인줄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소이산에서 까먹었던 점수를 통통배로 만회하였습니다.

철원을 뒤로 하고 포천의 산사원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산사원에는 술을 주제로한 배상면주가의 전시관과 술독 정원이 있습니다. 가는비가 내려 정원은 대충 둘러보고 전시관과 체험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관람객이 많아서 북적였지만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인들을 위한 선물도 한 꾸러미씩 사셨습니다. 저녁식사는 원당에서 푸짐한 조개전골과 칼국수를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저녁 8시쯤 교회에 도착하여 잠깐 쉬는 동안 공동휴가에 함께하지 못한 분들도 몇 합류하셔서 8시 30분부터 '한여름밤의 꿈'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나의 장례식'이라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매장으로 할 것인지 화장으로 할 것인지, 꼭 초대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자신에 대한 회고를 부탁할 사람은 누구인지, 함께 나누고 싶은 생전의 순간과 장면은 무엇인지 등등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그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삶과 죽음은 결국 동전의 양면!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고, 잘 준비한 죽음이 잘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고 부활의 새로운 시작, 관계의 연속성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시간이 삶과 죽음,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더 성실히 살고자 하는 계기가 되기 바랬는데...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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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서로 공식일정을 마치고 비공식 친교의 시간을 가진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낮의 일정이 빡빡하고 고되었는지 다들 곤하게 잠들었습니다.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해주신 분들과 섬겨주신 분들, 운전해주신 윤성일 집사님, 찬조해주신 마정애 권사님 등 두루두루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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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노동 탄압에 대해 김용희 노동자에게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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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번화한 강남역 사거리의 CCTV 철탑 위, 한 평도 되지 않을 좁은 공간에서 삼성 해직 노동자 김용희(60세)씨가 고공 단식투쟁을 벌인지 56일이 되었습니다. 김씨는 삼성 재직 중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납치, 폭행을 당하였고 가족도 풍비박산 되었습니다. 삼성은 강압적 분위기와 임금 차별에 항의해 1990년에 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김용희씨를 납치 폭행하였고 이후 여직원을 강압해 거짓 자백을 하게 하여 성추행 혐의를 씌워 징계해고하였습니다. 또 강제로 러시아에 2년 출장을 보낸 후에는 3년간 대기발령을 시켰습니다. 김용희씨는 삼성의 사과와 복직, 부당해고 기간의 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6월 2일부터 단식을 시작하다가 철탑에 올랐습니다. 현재 그는 물도 마시지 않고 의료 진료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는 '삼성과 정부가 나서 김용희씨를 살려야 한다'며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삼성은 국내 최대기업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무시하고 폭력과 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 삼성이 있기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피땀이 있었습니다. 삼성이 김용희씨와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과 탄압을 반성하고 존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부끄러음'

 

1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친하다’는 것은 사타구니와 사타구니가 서로 친하듯하는 뭐 그런 것도 있어야만 할 것인데 내게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으니 말씀이다.//‘부일파(附日派)’란 말도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안다./일본에 바짝 다붙어 사는 걸로 이익을 노리자면 끈적끈적 잘 다붙는 무얼 가졌어야 했을 것인데 나는 내가 해준 일이 싼 월급을 받은 외에 그런 끈끈한 걸로 다붙어 보려고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나는 이때 그저 다만, 좀 구식의 표현을 하자면―‘이것은 하늘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이 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

- 서정주, 「종천순일파」 , 『미당 서정주 전집 4 시: 노래·팔할이 바람』 (은행나무, 2015), 235쪽.

 

친일이라는 건 사타구니들의 만남 같은 건데 아무리 가까워도 사타구니까지는 아니다. 부일이라는 건 바짝 붙은 끈적거림인데 싼 월급 그것이 붙으려는 것이랄 수는 없다. 그저 팔자로 생각했을 뿐이다. 종천순일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거 아닌 사람이 있었겠는가? 

미당 서정주 자신의 친일에 대한 변론입니다. 국화 옆에서//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의 서정에 마냥 빠질 수만 없는 이유입니다.

 

2

 

Shout it out / What you want for the world / Money Honor Beauty / Everything you want / Play with a mask to hide the truth / People cheat each other right?

외쳐봐 / 네가 세상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 돈, 명예, 아름다움 / 네가 원하는 모든 것 . 진실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지 / 사람들은 서로를 속이지. 그렇지?

 

2018~2019년 20부작으로 유현미 극본, 조현탁, 김도형 연출, JTBC 제작·방영한 『SKY 캐슬』의 주제곡입니다.

자신들만의 하늘(Sky) 위 성(城, Castle)을 살아가는 상위 0.1%의 사람들의 이야기. 돈, 명예, 아름다움을 모두 소유한 이들, 소유하기 위한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본질적 거짓을 폭로한 드라마입니다. 제목은 여러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Sky’(하늘), 우리나라 상위 세 대학,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닿을 수 없음, ‘Castle’(성), 경계선 그러나 그것이 쌓아진 것이라면 무너져 버릴 것.

 

“과거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소년이 꿈꾼 상승의 사다리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것은 계층을 더욱더 공고히 하고 있다. 더 이상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이례는 불가능하다. 교육은 금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계층과 교육에 대한 소감입니다.

 

3

 

어쩔 수 없는 하나. 특별 자율학습실

학교에는 교실 외에 학생들을 위한 학습공간이 있습니다. 자율학습실입니다. 그런데 자율학습을 신청하는 모든 학생에게 같은 시설의 학습실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은 자율학습이지만 자율 반, 타율 반이니 배정해야 할 인원이 많습니다. 묘안이 필요합니다. 학교 성적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특별 우수반을 편성·배정합니다. 좀 길게 기억해야 합니다. 학교에는 우수반 학생을 위한 특별 자율학습실이 존재합니다.

어쩔 수 없는 둘. 입시 설명회

학교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을 위해 입시 설명회를 준비합니다. 여러 대학에서 학교를 방문해 홍보 및 입시에 대해 안내합니다. 그런데 모든 대학은 할 수는 없고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참여 학생도 제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우수반입니다. 우수반 학생에게 특화된 입시 설명회가 존재합니다. 모든 학생을 위한 진학 지도가 불가능하다면 누군가만을 위한 진학 지도가 이루어집니다.

어쩔 수 없는 셋. 시상

좋은 고등학교를 정하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는 논술대회, 토론대회, 발명대회, 독서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입니다. 주요 대학에 진학할 때 필요한 것은 성적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경우, 이 프로그램에서의 입상 그리고 결과의 생활기록부 기록 사항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학은 이를 보고 학생의 우수성을 평가합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한다. 수시 전형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 프로그램에 입상할 경우 분명 진학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프로그램에만 입상한 경우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등장합니다. 우수반, 그리고 상 몰아 주기.

 

“어쩔 수 없는 것 아니에요?” 일제 강점기, 독재, 그리고 군부 독재를 거쳐 살아남는 가방끈들의 변명입니다. 그런데 이 변명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적폐 청산을 외치지만 그 칼을 거꾸로 세우지는 않습니다. 교육 가방끈들의 반칙(?)입니다. “진학 결과를 빼고 고등학교를 말할 수 있나요? 교육은 미담도 서정도 아닙니다.”

“얘야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용감한 부모, 더 용감한 선생이 말했습니다. 

“정말요?”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묻습니다.

 

4

 

나는 무서워서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순간 내 내부의 부끄러움을 타는 여린 감수성이 영영 두터운 딱지를 붙이고 말았을 게다. 제 딸을 양갈보 짓 시키지 못해 눈이 뒤집힌 여자를 어머니로 가진 여자. 그 가슴의 그 징그러운 젖을 빨고 자란 여자가 어떻게 감히 부끄럽다는 사치스러운 감정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인가.

-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대범한 밥상 박완서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2014), 58쪽.

 

살기 위해 양갈보 짓을 하는 어머니, 양갈보 짓을 요구하는 어머니, 양갈보 짓을 거부하는 딸, 그러나 그 어머니의 젖을 물었던 딸.

 

나는 각종 학원이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69쪽.

 

어쩔 수 없다는 교육은 부끄러움 앞에 서정주와 박완서 사이, 갈팡질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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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중생과 불성이 본디 다른 게 아니건만 네 가지 상이 있어서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이것들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없으면 곧 부처다. 어두우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달으면 중생이 부처인 것이다. 어두운 사람이 재물과 학문과 가문을 뽐내며 다른 모든 사람을 깔보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비록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행하나 자기는 높은 뜻을 지녔다고 스스로 우쭐거리고 널리 모든 사람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내가 인의예지신을 알고 행한다고 말하면서 남을 공경하지 아니함을 인상이라 하고, 좋은 일은 자기한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베푸는 것을 중생상이라 하니, 이는 이른바 보통 사람의 네 가지 상相이요, 수행하는 사람에게도 또한 네 가지 상이 있으니 마음에 주와 객이 따로 있어서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계戒 지키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레 여겨 파계한 자 가벼이 여김을 인상이라 하고, 삼악도三惡塗의 괴로움을 싫어하여 제천諸天에 나고자 소원하는 것이 중생상이요, 마음으로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여 복업福業을 부지런히 닦고 여러 집착을 잊지 못함이 수자상이니, 이 네 가지 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없으면 곧 부처인 것이다.”(六祖)​

 

모든 것이 아상(我相)에서 나온다. 아상 하나 없으면 다른 모든 상도 없다.

“육체가 곧 나라는 그릇된 생각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며 이 그릇된 생각이 사라지면 깨달음이 드러난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어떤 것을 얻는 것도 아니고 질이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그릇된 것들이 사라지면 깨달음이 절로 드러날 뿐이다. 궁극적 진리란 지극히 단순하다. 그것은 원래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며 이 이상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다.”(라마나 마하리쉬)

결국, 다시금, 아상이 문제다. 내가 나인 줄로 알고 있는 ‘나’. 그것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예수님도 당신을 따르려면 누구든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죽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아상을 여의고 나서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이다. 그분이 제자들에게 그것을 요구한 까닭은 당신이 그렇게 길을 가신 분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고서 아무도 당신한테 제도받지 않았다고 하신다. 이미 아상이 없으신 분일진대, 그렇게밖에 달리 어찌 말할 것인가? 제도를 한 쪽도 그러려니와 제도를 받은 쪽도 아상 없기는 일반이니, 그도 또한 제도받은 바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아름다운 보물이 있다. 언제부터 내게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보물이 내게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날마다 만지작거리면서도 보물인 줄을 몰랐다. 그러니 나에게는 보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있지만 없는 보물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스승을 만나 그것이 보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보물을 지니게 되었다. 있지만 없던 보물이 있으면서 있는 보물로 되었다. 스승이 내게 그 보물을 준 셈이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나 또한 그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건너간다느니 얻는다느니 하는 ‘말’에 속아서 자꾸만 헷갈리는 것이다. 저 건너 언덕도, 바다도, 그 위를 건너는 나도, 모두가 진여(眞如)의 출현일 따름이다. 눈 한번 번쩍 뜨면 그만이라고, 번뇌도 망상도 습기(習氣)도 그것으로 고통받는 ‘나’도 더 이상 없다고, 그렇게들 말씀하신다. 모두 믿을 만한 이들의 증언이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말씀이 그러하시다니 다만 그런 줄 믿고 살아갈 따름이다.

 

그런데… 어떻게 산다? 아무래도 좀 더 친절하고 비근한 가르침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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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을에 말을 잘 타기로 소문이 난 마부가 있었다. 소문을 듣고 어느 날 젊은 무사가 그를 찾아와 자신과 말 타기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다. 마부는 그 청을 거절했으나 젊은 무사가 어찌나 끈질 나게 청을 하는지, 결국 말 타기 경주를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말 타기 시합을 하였지만 모두 마부가 승리를 했다. 젊은 무사는 크게 실망하고 돌아가려고 마부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마부가 그를 불러 앉혀 놓고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말을 잘 타려면  내가 지금 말을 타고 있다거나, 말이 또한 나를 태우고 있다거나 하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하네. 그렇게 해야 사람과 말이 하나가 될 수 있네. 그리고 승리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네. 말 경주를 하다 보면 내가 앞설 수도 있고 때론 뒤로 처질 수도 있는 것이라네. 그런데 항상 말에게 앞설 것 만을 요구하면 어찌 말과 내가 하나 되어 물 흐르듯 달릴 수가 있겠는가?” 

젊은 무사는 이 말을 듣고 다시 마부에게 절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집착이 내 능력보다 앞서가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자 골프 선수 김지현양은 프로 골프 데뷔 7년 만에 그리고 125개 대회 만에 생애 첫 승을 얻게 되었을 때 인터뷰에서 “우승을 쫓아다녔더니 우승이 달아났다.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첫 우승이 내게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우승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의 실력을 즐길 때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승패를 버리면 집착도 버릴 수 있습니다.  집착을 버리면 생각이 숨을 쉴 수 있고 또한 영혼도 촉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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