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4)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24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대해 말씀하실 때 주로 어떤 공간인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어떤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비유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서 우리는 농부의 상황, 여인의 상황, 부자와 상인의 상황 속에 담겨있는 천국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천국을 ‘마치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에 비유합니다. 종들과 왕이 셈을 가린다니까 복잡해 보이지만 이야기는 사뭇 단순합니다.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이 정작 자신이 친구에게 받을 돈 백달란트를 받지 못하자 친구를 감옥에 집어넣었고, 이 소식을 알게 된 왕이 종을 벌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빚의 액수입니다. 보통 1달란트는 순금 34kg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알기 쉽게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이는 20억에 해당합니다. 왕에게 빌린 종의 빚, 일만달란트는 자그마치 20조가 되는 겁니다. 이는 클릭 한 번이면 순식간에 숫자들이 날아가 다른 사람의 통장에 찍히는 현대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결국 ‘일만 달란트’라는 상징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뜻합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과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노예가 되어 수백 년을 살아도 다 갚지 못할 빚인 겁니다. 하지만 왕은 종을 불쌍히 여겨 이 빚을 탕감해주었고, 종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은혜 받은 종이 친구에게 빌려준 일백 데나리온은 얼마 정도의 금액일까요? 1데나리온이 하루 노동자의 품삯이라고 하니 8만원으로 계산하면 친구의 빚은 800만원 정도가 됩니다. 물론 이 빚도 적은 금액은 아닙니다. 하지만 20조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겨우 800만원에 혈안이 되어 친구를 감옥에 집어넣는 이 모습이 얼마나 불의합니까.
오늘의 비유는 예수님과 베드로가 주고받은 ‘용서’에 관한 대화 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천국비유에는 ‘용서’라는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빚의 탕감이라는 ‘구원’의 주제로 이어지고, 또 다시 종의 불의함을 왕이 처벌하는 ‘심판’의 주제로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명확해집니다. 천국은 진정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됩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는 예수의 말이 실천되는 그 마음가짐과 발걸음 위에 천국은 발견됩니다. 반대로 지옥은 용서받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 채 정처 없이 살아가는 서글픈 이들의 몫이겠지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고, 받은 은혜를 나누며 은혜가운데 주어진 각자 천국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나 스스로는 반드시 누군가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꼭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