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행이 ‘정치’로부터 시작된다구?
-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와 그 날의 아픔 -
글: 이관택 전도사
실로 안타깝고 비통한 일이 벌어졌다. 설마 설마 했건만, 지난 2011년 11월 22일 오후 3시경,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국가 간의 통상조약에 관한 비준안이 여.야간 합의도 없이 집권여당에 의해 기습적으로 날치기 통과된 이 사건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체의 언론 취재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본회의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졸속 추진하였다.
법과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정신을 훼손한 이번 사안은 그 탈법성에도 분노를 느끼게 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한미 FTA비준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들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의약, 교육, 방송, 영화, 무역, 제조업, 대중교통 및 공공부문 등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둘러싼 전 방위적인 영역에서 한미 FTA가 몰고 올 변화의 바람은 실로 엄청나다.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변화의 바람이라는 것이 엄청난 피눈물을 동반할 것이란 사실이다.
한미 FTA 비준안이 날치기로 통과되던 그 시각, 나는 홍대의 한 카페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더니 갑자기 문자와 트윗으로 날치기 법안 통과 소식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내 주변 사람들도 조금씩 분주해지는 모습이었고, 여기저기 FTA와 날치기 통과 이야기들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분노와 함께 주변 사람들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연대의식을 공유했던 것 같다. 어떤 분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FTA 규탄집회 가시냐며. 자신은 일이 있어 못 가기 때문에 대신 찻값을 내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나는 한걸음에 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를 규탄하는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에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모여서 “비준무효! 명박퇴진”이라는 구호와 함께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 시킨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었다. 집회는 다시 명동에서 밤늦게까지 계속 이어졌는데,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깃발을 들고 모여들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까지 다양한 이들이 명동 한복판을 가득 메운 채, 이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수많은 집회 인파보다 훨씬 더 많은 경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경찰들은 시위대의 앞길을 막아섰으며, 곧이어 물대포 사격을 시작했다. 단순히 불의를 목도하고 거리로 나온 많은 사람들은 겨울이 시작되었던 그 날, 그 추위 속에서 물대포 세례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였고, 그 사이 경찰은 19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연행하였다. 이 날 향린교회 부목사로 일하고 있는 임보라 목사님께서는 경찰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큰 부상을 당하였고, 내 친구인 박준수 전도사는 경찰에 연행되어 2박3일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벌금형을 받고 겨우 풀려났다.
불의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연대했던 그날 밤! 해방과 희망의 순간은 잠깐이었고, 결과는 참담했다. 시위대의 한 사람으로써 나는 물리적인 무력함을 느꼈고, 합법을 가장한 불법으로 온몸을 무장한 저들의 서슬퍼런 눈빛에 주눅이 들고야 말았다. 하지만 더욱 참담한 심정을 느낀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언론을 가득 메운 김선동 의원의 국회 최류탄 투척사건, FTA 찬성의견이 더 많다는 여론조사, FTA가 통과되면 물가가 싸진다는 장밋빛 전망 등에 불법적 날치기 통과와 FTA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될 대다수 국민의 실제적인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조차 왜 정치하는데, 사람들이 감 놔라 팥 놔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그뿐이지 왜들 빨갱이들 같이 데모질들을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노비 출신인 똘복이라는 주인공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는 것을 알고,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에게 그건 배부른 소리라며, 백성들은 윗분들이 멱살 잡고 싸우는 데는 관심 없다. 다만 밥 굶지 않고, 평안히 그럭저럭 살고 싶을 뿐, 백성들에게 글 따윈 필요가 없다고 소리친다. 이에 광평은 똘복에게 말한다. 백성들이 글을 알아야 산다고, 백성들은 양반들이 싸우는 주제가 자신들의 삶을 통째로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세종이 만드는 한글은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누군가가 좌지우지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알게 할 그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한미FTA가 어떤 조약인가? 이것은 전 세계가 금융 자본화되어가는 이 때, 양국가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법으로 보장하는 통상조약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계속 질주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에 봉착하자, 가서는 안 되는 곳에 억지로 새 길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는 최소한 지금보다 이 사회는 더욱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지옥으로 내몰릴 것이며,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더 많은 이들이 비인간화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돈이 없어 먹지 못하고, 병원도 갈 수 없고, 학교도 갈 수 없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대다수의 국민은 자신의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알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꼼수의 김어준은 이야기한다. 대부분 현대사회의 스트레스의 근원은 정치에서부터 온다고. 선거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실제적인 노력이라고 말이다. 한미FTA는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선다. 이것은 단순히 국회에서 멱살잡이하는 철없는 정치인들의 탁상머리 싸움이 아니라, 우리 삶과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한미 FTA문제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이 없더라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의 문제라고 동감하고, 동참하는 것으로부터 세상의 또 다른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