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2일

by 좋은만남 posted Mar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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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생명'의 달]

긴 겨울을 마치고 만물에 생명력이 감도는 봄을 맞이하였습니다. 새싹들이 꽁꽁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려야 할 계절에 코로나19로 인하여 여전히 겨울을 지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충만한 생명력이 우리와 자연, 우주에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기도합시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사순절 제4주일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고난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신비와 감동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2.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우려하여 주일 예배를 예배당에서 드리지 않으니 가정에서 경건하게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큰 상황의 변화가 없다면 중고교 개학에 맞춰 4월 첫 주일(5일)에 예배를 재개할 예정입니다.

3. 교회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건강상태나 특별히 기도할 일이 있으신 분은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 등으로 담임목사에게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4. 사순절 기간에는 묵상기도집으로 매일 묵상해 주십시오.

5. 예배 중단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헌금을 하실 분은 아래의 계좌로 송금하신 후 한효균 재정부장님에게 내역과 금액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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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조금만 더 견뎌냅시다.

 

카카오톡의 단체톡방을 통해서 교우들과 연락을 주고받다가 오랜만에 여러분께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특별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단지 그동안 수십 년을 살아온 삶의 패턴과 일상이 뒤틀려 걱정하시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주일 아침에 예배당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를 한 달 동안이나 하지 못하게 되어 많이 불편하고 어색한데 혹시 이런 비정상이 정상으로 몸에 밸까봐 걱정이 되고 있으니까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의 생활은 그 일정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할 과정이 벌써부터 큰 부담과 위협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역동적이고 정력적으로 사시던 교우들이 집 밖에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가볍게 운동하는 것도 위험하게 느껴지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지루함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통화를 하면서 그런 마음과 기분들이 잘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최전선에서 희생과 헌신하는 이웃과 완전히 멈춰버린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생계를 걱정하는 이웃을 생각하면  우리의 불편은 아주 작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긴급재난기본소득을 거론하고 있지만 우리 사는 세상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이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만 국민들이 겪는 실제적인 고통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살던 세상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이었는지 깨닫고, 그래서 어떤 모양과 방식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할지를 생각하고 새로운 틀을 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런 시도들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그리고 이 세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상이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앞에 쓴 글을 읽어보니 제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혼란스럽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역사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나선형으로 상승 진보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지루한 시절을 잘 견뎌내 하나님의 뜻을 향해 상승 진보하는 우리와 우리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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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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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차가 오가는

좁은 시장길가에 비닐을 깔고

파, 부추, 풋고추, 돌미나리, 상추를 팔던

노파가

싸온 찬 점심을 무릎에 올려놓고

흙물 풀물 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목숨을 놓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손

찬 점심을 감사하는

저승꽃 핀 여윈 손

눈물이 핑 도는 손

꽃 손

무릎 끓고 절하고 싶은 손

 

나는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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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볼모로 잡은 미국의 방위비 인상 요구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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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은 지난 17~19일, 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7차 회의를 열었으나, 미국은 지난해 타결한 1조389억원에서 대폭 인상한 40억 달러 안팎의 금액을 제시하였고 한국은 10% 안팎 인상으로 맞서다가 결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 9,000여 명에 대해 4월 1일부로 무급휴직을 시행한다고 통보하였습니다. 한국은 노동자들의 인건비만이라도 먼저 해결하자고 제안하였으나 미국은 원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지급하지 않을 시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임금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은 20일 주한 미국대사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 국무부에 의해 짓밟혔다”며 ‘무급 휴직’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출근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자들의 생계를 볼모로 잡고 벌이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강도 행각과 다름이 없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초강대국 미국이 한국인 노동자들의 생계를 볼모로 잡고 비상식적인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혈맹이라고 떠벌이고 있으나 실상은 깽패들의 삥뜯기나 강도행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결연한 의지로 맞서게 힘을 주시고 국제적 지도력을 악용하는 트럼프의 탐욕을 심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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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태복음 7:21-23(새번역)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이어진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이제 그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마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역설했던 야고보서 만큼이나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한참을 이어온 설교가 단지 말잔치로 끝나거나, 그저 청중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도구로 전락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는 ‘행함의 여부’를 구원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며, 사람들에게 듣는 것과 아는 것을 넘어 ‘살아 주기’를 강력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행함’은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상 ‘말씀’의 죽고 사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주옥같은 설교를 했을지언정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말씀은 천리가 아니라 단 한 걸음도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씀을 살아내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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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씀을 살아내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조차 

‘주님, 주님’을 연호하며,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이루는 사람들을 오히려 예수께서 책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올바른 ‘행함’과 종교적 ‘율법’ 사이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참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고, 걷고, 구르고, 넘어지더라도 결국 우리의 몸부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조금씩이라도 확장되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사태로 여리고 더딘 우리의 발걸음조차 차단되어 있는 시절입니다. 한 마디 말도, 한걸음의 발자욱도 점점 흐릿해지고 무력해지는 이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말씀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매주일 각자의 가정에서 드리는 작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로운 지혜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이라는 고백이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잃고, 사회와 격리되어 신음하는 방방곡곡의 생명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는 좋은만남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도 발도 내딛지 못하지만 전심으로 집중하는 기도의 발걸음은 분명 세상을 진동시킬 것입니다. 그 때에야 이 땅을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이 천릿길을 넘어 세상의 끝까지 전달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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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그 사람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기 때문이니 이는 아상이 곧 상이 아닌 것이요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상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일체 모든 상을 여읜 분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何以故오. 此人이 無我相하고 無人相하고 無衆生相하고 無壽者相함이니, 所以者는 何오, 我相卽是非相이요 人相衆生相壽者相卽是非相이니이다. 何以故오, 離一切諸相을 卽名諸佛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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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을 듣고 믿고 알고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경을 살아가는 사람은 네 가지 상(四相)을 여읜 사람이다.

 

“아상我相은 너와 다른 ‘나’가 따로 있다는 것이요, 인상人相은 식물이나 짐승, 벌레 따위와 다른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요, 중생상衆生相은 무생물과 다른 ‘생물’이 따로 있다는 것이요, 수자상壽者相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수명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이다.”(틱낫한)

 

네 가지 상은 분별심의 열매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분별심을 키운다. 불보살佛菩薩은 이 순환 고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일체제상一切諸相을 여읜 분을 이름하여 제불諸佛이라고 한 것은, 실상實相을 깨친 사람은 다른 아무것에도 견주어질 수 없으니 그 사람이야말로 두 가장자리(二邊)에 붙잡히지 않으면서 중도中道에 처하지도 않아 어디서도 머물지 않으니 이름하여 부처님이라고 한다는 것을 마땅히 알라는 말이다.”(李文會)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기를, 그러하다, 그러하다.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서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아주 드문 사람인 줄 마땅히 알아라.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여. 여래가, 첫 번째 바라밀이 첫 번째 바라밀이 아니요 그 이름이 바라밀임을 설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욕됨을 참는 바라밀도 여래가 욕됨을 참는 바라밀이 아니요 그 이름이 욕됨을 참는 바라밀이라고 설한 것이다.

 

佛이 告須菩提하기를 如是如是로다.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不驚不怖不畏면 當知어다. 是人은 甚爲希有니 何以故오, 須菩提여. 如來가 說第一波羅蜜卽非第一波羅蜜이요 是名第一波羅蜜이니라. 須菩提여, 忍辱波羅蜜도 如來가 說非忍辱波羅蜜이요 是名忍辱波羅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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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본디 나에게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본디 지니고 있는 것을 지니게 되었는데 놀라고 겁내고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무엇’과 아직 하나가 되지 못해서다. 그 ‘무엇’과 아직 하나로 되지 못했다면 그 ‘무엇’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나 겁냄도 있을 수 없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도 물론이다.

 

바라밀波羅蜜은 도피안到彼岸이라고 번역하는데 보통 고해苦海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수행 방편을 가리킨다. 여섯 가지 또는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여섯 바라밀은, 보시布施(자비를 널리 베풂), 지계持戒(계율을 지킴), 인욕忍辱(욕됨을 참고 견딤), 정진精進(게으르지 않고 수행에 힘씀), 선정禪定(마음을 고요히 통일함), 지혜智慧(나쁜 생각을 버리고 참지혜를 얻음)를 가리킨다. 여기에 방편方便, 원願, 역力, 지智를 보태면 열 가지 바라밀이다. 사람에 따라서 자慈, 비悲, 방편方便, 불퇴不退를 보태기도 한다.

 

제일 바라밀은 보시 바라밀布施波羅蜜이다.

 

보시라는 것이,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주고받는 물건도 모두가 공空이니 실實은 없는 것이요 그 이름만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놀라고 겁내고 두려워하겠는가? 인욕도 마찬가지다. 욕을 주는 자도 받는 자도 따로 없고 그놈이 그놈인데 누가 무엇을 참고 견딘단 말인가?

 

그래도 주고받음을 통하여 주고받음이 없는 경지로 가고 욕됨을 참고 견딤으로써 욕됨을 참고 견딤이 없는 경지로 간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가볍게 처신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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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益者三友 損者三友라고 했다. 좋은 친구가 셋이면 해를 끼치는 친구도 셋이 있다는 뜻이다. 만일 주위에 있는 친구가 모두 나쁜 친구라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 좋은 친구는 우량 주식 같아서 많을 수록 나의 미래를 복 되게 만들지만 나쁜 친구는 악성 부채여서 나의 삶을 송두리채 망가뜨리기도 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라도 나쁜 친구를 정리해야 한다.

1. 좋을 때만 찾아오는 사람을 조심하라. 의리란 눈꼽만큼도 없는 자다.

2. 충고에 적개심갖는 사람은 상종말라.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3. 소식없다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위험인물. 당신을 이용하려는 자다.

4. 친구의 비밀을 소문내는 사람을 경계하라. 입이 가벼운 사람은 구설을 면치 못한다.

5. 입만 살아있는 사람을 경계하라. 입은 천국에 가고 몸은 지옥 간다.

6. 배타적인 사람은 만나지 말라. 언젠가 나도 적으로 몰리게 된다.

7.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독불장군. 번번히 기회를 놓친다.

8. 우울증걸린 사람과 가까히 말라. 나도 우울증 걸리니 정신과 의사에게 맡겨라.

9. 버릇없는 사람을 피하라. 애비 에미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10.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과는 가까히 말라. 하늘도 경계한다.

 

사람은 가까운 친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되어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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