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5일

by 좋은만남 posted Apr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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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자유'의 달]

인간에게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적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려 투쟁한 역사가 있으며 영혼의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잃어버린 참된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사순절 제6주일, 고난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리어 부활의 아침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2.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우려하여 주일 예배를 예배당에서 드리지 않으니 가정에서 경건하게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주일인 다음주일에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였는데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가 2주 더 연장되었습니다. 주중에 단체톡방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3. 교회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개인적인 건강상태나 특별히 기도할 일이 있으신 분은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 등으로 담임목사에게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4. 사순절 기간에는 묵상기도집으로 매일 묵상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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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코로나19는 인간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몇 주 동안 주보를 통해서 코로나 이야기만 계속한 것 같아서 자제하려고 하지만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세등등합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생활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궁금하던 차에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관련된 내용을 보았습니다.

바이러스는 단백질과 핵산의 결정체인데 생명체인지 무생물인지도 애매한 존재로 원래 동물들을 숙주로 삼아 생존한다고 합니다. 동물들은 이에 대한 면역이 있어서 바이러스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이러스들이 몸붙여 살 수 있는 동물들의 숫자가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인간이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동물들의 구역을 침범하고 파헤쳤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가 기생할 수 있는 동물들이 점차로 줄어들고 야생동물들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바이러스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숙주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게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없고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대로 인간을 숙주로 삼고자 돌연변이로 진화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천연두, 콜레라, 신종인플루엔자(H1N1), 중증급성호흡기중후근(SARS), 메르스(MERS) 등이 발병하게 됩니다. 

결국 바이러스성 질병의 감염과 확산은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자연 생태계를 인정하고 서로의 구역을 존중해야 함에도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의 탐욕으로 그 선을 넘고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함으로 오늘날과 같은 재난이 발생한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생명체인지 아닌지 애매하여 존중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역시 자연 생태계의 한 구성원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유지하는 균형이 일방에 의해 깨질 때 생태계는 파열되고 서로를 상처 입히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가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자연 생태계의 청지기 역할을 되새기게 됩니다. 인간은 물론 코끼리나 고래 같은 거대생물로부터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고 생명체인지도 애매한 바이러스까지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것들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기생하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조화이자 균형인데 인간이 이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불편하고 조금 부족해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또 공존이 아니라 탐욕과 독점에 눈이 먼 사람들과 기업에 대한 청지기의 경고와 투쟁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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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나 끌어온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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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 2015년 발생한 조직 내 성폭력 사건 감찰 및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로 고발된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사 9명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며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2015년 서울남부지검에서 발생한 김모 전 부장검사와 진모 전 검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제대로 벌이지 않고, 진 전 검사에 대한 감찰을 중단한 당시 검찰 간부들을 지난 2018년 5월 고발했었는데 검찰은 고발이 있은 지 무려 2년 가까이 이 사건 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불기소로 사건을 종결한 것입니다. 검찰은 “곧바로 사안의 진상 확인에 착수했으며, 이후 관련 업무지침과 피해자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상 확인을 종료하였고 위법한 지시나 직무 거부 사유나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검찰이 공정한 잣대로 범죄를 수사하지 않고 제 식구를 감싸면 국민은 검찰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은 특정 세력이나 집단을 위해 사사로이 남용돼서는 안 됩니다. 검찰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기준을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하고 신뢰를 회복하도록 정화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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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니,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29 예수께서는 그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21-23(새번역)

 

벌써 종려주일을 맞이합니다. 종려주일이지만 예년과 다르게 세계적인 전염병사태로 인하여 각 자의 집에서 주일예배를 드린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혹여나 교회력 절기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괜한 염려가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나 이번 한 주간, 우리는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루에 수천 명씩 목숨을 잃는 사상초유의 상황을 맞이한 지금이 하필 사순절기이고 고난주간이라는 사실을 우리 신앙인들은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고,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주변을 돌아보며 간절히 두 손을 모아야 하는 이번 고난주간에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어떠합니까? 병마 때문에 신음하고, 가족을 잃고 통곡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또 못할 것이 없다며 마치 바벨탑 쌓듯 하늘높은줄모르고 탐욕의 정치로 일관했던 자본과 권력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허둥대면서 소중한 생명들을 방치하는 세상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사재기와 혐오의 눈빛으로 온몸을 무장한 이기적인 우리 인간의 자화상을 뚜렷히 목도하게 됩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의 고난을 더욱 절절하게 공감하고,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기다립니다. 예수께서 마주했던 외로움과 불안함, 시대의 횡포로 인해 울부짖던 수많은 민중들과 함께 손잡고 걸었던 그 길을 뒤따르며 우리 또한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귀한 고난주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디 다가오는 부활의 절기에는 절망 속에 숨죽여온 이 땅의 생기들이 모두 함께 부활하기를.   

 

본문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집을 짓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설계를 하고, 땅을 고르고, 돌을 세우고, 기둥과 지붕을 올리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집이 완성되듯,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도 정확하고 꾸준한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많은 훈련 프로그램들을 시행하는 이유도, 훈련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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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신앙의 훈련을 열심히 해온 두 명의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겉으로는 두 사람 모두 번듯하고 흠잡을 곳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외부의 환경이 급변하는 순간 한 사람의 신앙이 무너져 내립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께서는 이것을 반석과 모래위에 세운 집이라는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훈련은 잘 쌓아왔으나, 애초부터 그 토대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입니다.  

 

훈련의 출발점이자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기반은 바로 ‘행함’이 되어야 합니다. 성서묵상과 기도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아무리 많이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말씀은 허공에 날리는 것일 뿐 나의 삶을 세워나가는 힘이 되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길었던 산상설교의 결론입니다. 설교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것을 실천할 삶의 구체적인 현장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무리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크게 놀란 이유가 무엇입니까? 율법학자들에게는 없는 예수의 ‘권위’란 무엇입니까? 출생지, 학벌, 사회적 위치, 재력 등에서 나오는 권위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가르친 것을 삶으로 살아내었고 무리들은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무리들을 놀라게 했던 예수의 권위는 그의 삶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설교는 끝났으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를 따라오지 않겠느냐고. 

 

설교에는 끝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절기에는 때가 있지만 우리의 신앙에는 때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도 분명히 끝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움츠려든 우리의 영혼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그리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신앙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영혼을 맑게 보듬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처음으로 만난 제자 마리아에게 이렇게 문안하셨습니다. “평안하냐?”

 

여러분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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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모든 상을 떠나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야 하니, 모양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소리, 냄새, 맛, 느낌,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면 머무는 게 아니다. 

 

是故로 須菩提여. 菩薩은 應離一切相하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不應住色生心하고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하여 應生無所住心이니라. 若心有住이면 卽爲非住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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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에 살면서 비싼 가구 쓰기를 좋아함은 모양(色)에 사로 잡혀 마음을 쓰는 것이요, 작은 집에서 싸구려 가구를 고집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모양에 붙잡혀 마음을 쓰는 것이다.

 

보살은 모든 상을 떠나 위없이 높은 지혜를 얻고자 마음을 낸 사람이니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붙잡혀서는 안 된다.

 

기독교인이 하느님께 붙잡힌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에도 붙잡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아무’ 속에는 물론 ‘하느님’도 포함된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하느님도 없기를 나는 바란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시방十方의 여러 부처님들 공양하는 것이 무심도인無心道人 한 사람 공양하느니만 못하다. 왜냐하면 무심無心이기 때문이다. 무심은 여여如如의 몸(體)이다. 안으로는 나무나 돌처럼 흔들리지도 움직이지도 아니하고 밖으로는 허공처럼 막히지도 엉키지도 아니하니 이를 이름하여 부처라 한다...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면 머무는 게 아니라는 말은, 진여眞如의 마음은 본디 머무는 데가 없는지라 이런저런 법상法相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도와 더불어 서로 응하는 것이요, 법에 머무르면 이는 바른 가르침(正敎)을 어기는 것이다. 바른 가르침을 어겼으면 이는 머물러야 할 바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黃蘗禪師)

 

부자로 살기를 고집하는 것이나 가난하게 살기로 고집하는 것이나 마음이 어디에 붙잡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자유는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나는 부자로 살 줄도 알고 가난뱅이로 살 줄도 안다”고 했다.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에 속아서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딴 데 가 있고 길을 가면서도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면 그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라 정신분열증 환자다.

 

요컨대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얘기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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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호퍼라는 사람은 한때 실업자로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러 아침마다 LA에 있는 무료 직업 소개소에 갔다. 직업 소개소에 가보니 같은 처지의 사람이 무려 500여 명이나 모여 있었다. 직장도 없고, 생활도 어려우니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같이 일그러져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와서 잔디 깎을 사람, 짐 옮길 사람들을 데려갔다. 호퍼는 이 많은 사람 중 자신이 어떻게 하면 뽑혀갈 수 있을 지를 생각했다. ‘다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데, 누가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가겠는가, 나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행복한 표정을 짓자. 그러면 틀림없이 나를 데려갈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웃음을 짓고 행복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더니 하루도 빠짐없이 호퍼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호퍼는 하루도 일자리가 없어서 쉬는 날이 없었다.

 

자존감을 잃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집니다. 자부심을 갖는 사람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흐릅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의 얼굴은 늘 웃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 웃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웃음은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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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유승배

 

오가는 발걸음

만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어둡다

나는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밝은 시를 쓰고 싶다

불황의 바람은

뿌리 내리고 서 있는 나무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이지만

흔들리는 것은 잔가지일 뿐

뿌리는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태풍도 지나가면

잔잔한 고요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위로해주고 싶다

내 자신에게도 속삭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