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6일

by 좋은만남 posted Apr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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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자유'의 달]

인간에게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적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려 투쟁한 역사가 있으며 영혼의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잃어버린 참된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부활절 제3주일 및 종교화합주일입니다. 이웃 종교를 존중하고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서로 화합하고 인정하는 열린 교회, 평화를 이루는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코로나19로 인하여 그동안 예배당에서 예배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이번주일부터 시범적으로 예배를 재개합니다. 참석하시는 분은 입당 시 체온을 측정하고 손을 소독하겠습니다. 또 예배 중에도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는 등 방역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예방을 위한 절차에 잘 따라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3.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어린이들의 감염 우려로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 교우들을 기억하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다음주일로 계획된 어린이주일은 학교 등교와 맞춰서 진행하는 것으로 연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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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설레는 마음으로 주일 준비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10명 수준으로 떨어진데다 천주교와 불교가 미사와 법회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가슴이 설렙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번 주일부터 조심스럽게 예배를 재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관공서에서 '5월 5일까지 예배, 집회, 미사 등 집회활동 자제'를 권고한다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오랫동안 꽉 잠긴 예배당의 문을 활짝 열고 여러분을 맞이하고픈 마음이 더 큰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봅니다.

예배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참석자들 명단과 연락처도 적어야 하고 입장 시 체온도 재서 기록해야 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로 소독을 하는 절차를 다 진행해야 합니다만 그것은 코로나가 다시 창궐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민의 당연한 자세이자 우리 자신과 이웃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신앙적 책임일 것입니다.

솔직히 대형교회는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중형도 아닌, 초소형 교회인 우리가 굳이 예배를 중단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예배를 중단하지 않은 작은 교회들이 주위에 적지 않았고,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안 오고 교우들이 알아서 할꺼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를 향한 우려 가득한 이웃들의 불안 해소를 위해서라도 의미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설렘으로 교우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당 곳곳을 청소하고 쌓인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또 반길 이 없어 덩그러니 방치됐던 화분들에 꽃을 사다 심었고 작동이 안됐던 주방 레인지 후드도 새것으로 교체해 달았습니다. 아직 모든 교우들을 다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곧 다시 만날 희망이 보이니 행복하고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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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정치활동 금지 위헌 판결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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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헌법재판소가 ·중등 교육공무원이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하는 행위를 금지한 법조항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헌재는 현직 교사들이 '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고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65조 1항 등에 대해서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의 공무 외 집단 행위를 금지한 법 조항은 합헌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정치기본권 보장을 향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이라 평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던 교사들의 모임인 교육민주화동지회가 교사 천오백여 명을 비정상적으로 해직한 것은 국가폭력이자 기본권과 인권, 교권을 침해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고 소송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대를 양육하는 교사들이 건강한 민주시민 의식을 갖고 모범적 실천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현대사회의 모든 행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이기 때문에 민주적 시민의식과 관심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적극 권장해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도 제한되거나 침해될 수 없습니다. 교원의 정치활동을 불온하게 매도한 교육현장의 잘못된 관행이 바로 잡히고 민주적 교육풍토가 조성되기를 기도합니다. 

 

 

(33) 온라인 개학? 개교!

 

1

 

2020년 4월 9일,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 16일 고등학교 1, 2학년, 중학교 1, 2학년, 초등학교 4, 5, 6학년이 개학했고 4월20일에는 나머지 초등학교 1, 2, 3학년 모두가 온라인 개학을 합니다.

몇 년 전 ‘랜선친구’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단순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친구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 과학 기술이 발달하니 만남의 방법도 바뀔 수 있고 예전 전화선을 이용하던 채팅 ‘천리안’도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변화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 한글워드에서 ‘랜선친구’에 맞춤법 밑줄이 가는 걸 보며 낯선 나를 안도합니다.

드디어 ‘랜선학교’가 개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변화라면 개학이라는 말보다는 개교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〇〇대학교에서 〇〇사이버대학교를 만들었을 때 개교라는 말이 더 적절했듯이.

 

2

 

담임선생님들은 인터넷 온라인학교 플랫폼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노트북 화면 오른쪽, 서른여덟 개로 쪼개져 메운 자그만 네모들에는 아이들의 얼굴이 꼼꼼히 박혀 있습니다. 왼쪽 위 창에는 아이들의 아이디가 접속 순으로 그 아래는 채팅창입니다. 중간중간의 네모에는 검은 네모가 있는데 영상 카메라가 없는 아이입니다. 이제 선생님 차례입니다.

“반갑다. 또 이렇게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출석 부른다. 고영준.”

목소리가 채팅창에 오릅니다. 

“네.” 고양이와 함께.

“고양이는 이름이 뭐니?”

“야옹이요.”

채팅창에는 “ㅋ.”가. “야옹이래.” “ㅋ”, “ㅋ,” “ㅋ.”가 쭈욱 흐릅니다.

예쁜 누나가 뒤통수를 때리며 지나가고, 방금 일어난 듯한 어머니의 모습도 카메라를 스칩니다. 물론 다른 조그만 네모에는 당연히 강아지 한 마리도 있습니다. 흰털이 길고 귀를 늘어뜨린 강아지.

“개판이네. 이게 무슨 학교야.”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단정한 교복에 정렬한 책상 줄을 믿는 선생님들. “차렷. 경례.” 이게 정상이라면 학교가 비정상 수준을 넘어간 게 맞습니다.

 

3

 

교육청은 온라인 수의 방법으로 크게 네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 콘텐츠 중심 수업, 과제수행중심 수업, 그리고 앞서 세 방법을 혼합하거나 학교장이 인정하는 수업방식입니다. 

첫째, 실시간 쌍방향 수업은 실시간으로 교사와 학생이 화상을 통해 강의, 토론, 소통하는 수업입니다. 아이들 모두가 동시에 인터넷에 접속해야 하고 아이들 모두가 화상 통화가 가능한 상태이어야 합니다. 실시간으로 진행을 하니 고양이, 개의 등장, 컴퓨터, 인터넷 상태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하고 또 쌍방향이라 하지만 대화를 주고받는 속도가 지연되어 자연스러운 진행은 아닙니다.

둘째, 콘텐츠 중심 수업은 아이들이 녹화 강의, 학습자료 등 학습 콘텐츠를 공부하고 이후 선생님이 아이들의 학습을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형태입니다. 선생님들은 20~30분 정도의 수업을 녹화합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두려운데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카메라와 대치해 팽팽한 긴장감 속 눈싸움입니다. 그리고 영상 편집. 녹음한 목소리도 불편하지만 녹화된 얼굴은 더욱 불편합니다. 젊은 선생님께 더빙을 부탁하는 귀여움.

셋째, 과제수행중심 수업은 온라인에서 선생님이 제시한 과제를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하는 형태입니다. 선생님들은 자신의 과제 하나를 아이들에게 바라지만 그 선생님들이 여덟 과목으로 모이고 매 시간으로 나누면 아이들 과제의 개수는 화수분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모델을 상황에 따라 혼합하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4

 

아이들 모두가 스마트 기기를 가질 수 있는가? 아이들이 수업 시간 채팅 등 딴짓을 한다. 과제가 너무 많다.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리다. 인터넷 접속 장애가 많다. 수업 부담에 비해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 수업 자료 제작이 엉망이다. EBS 수업을 보게 하고 자신의 수업이라 우기는 건 좀 난감합니다. 

많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교육부를 향한 질책이 대다수입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알 수 없는 변화에 대해 이해 가능한 방법으로 누군가 대답해 주길 원하는데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불만입니다.

 

그런데 정말 불편한 건 있습니다. 조금더 철학적으로 ‘주체subject’입니다. 주체임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면 위를 바라보겠지만 이 세계의 속성이 부정할 수 없는 ‘변화’이고 따라서 모든 것이 예측불가라면 집단지성이 필요하고 세계의 주체 오늘 상황이라면 교육의 주체 모두의 지혜가 모여야 합니다.

교육에는 적어도 세 주체를 말합니다. 교사, 학부모, 학생. 확장한다면 지역 사회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나 오늘 변화에 있어 결정의 수용자일 뿐 결정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에 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 이 모든 결정에 주체로서 참여할 시간과 공간에 그들은 없습니다. 교육 변화에 가장 우려하는 문제입니다.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독일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인간을 ‘상황 속에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 순응할 수도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주체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서지 못한 주체들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그의 해석을 온라인 학교로 옮겨 봅니다. 필요한 것은 온라인도 온라인 수업 방식의 다양화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고 변화하는 상황을 개조할 수 있는 ‘주체’입니다. ‘주체로서 서는 일’입니다.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은 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보아야 하고 그 자리를 개조해야 합니다. 그 자리를 나누어야 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개학이 있는 것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면 개교는 없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주체들은 이렇게 학교를 개학할 것이 아니라 개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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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물러 널리 베풀면 사람이 어둠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널리 베풀면 사람에게 눈이 있고 햇빛이 밝게 비추어 가지가지 모양을 다 보는 것과 같다.

 

須菩提여. 若菩薩心이 住於法하여 而行布施면 如人入暗하여 卽無所見이요 若菩薩心이 不住法하여 而行布施면 如人有目하고 日光明照에 見種種色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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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말하는 보시布施는, 중생을 교화하는 법시法施를 뜻하는 것으로 읽는다.”(王日休)

 

사람 눈을 뜨게 해 준다면서 법에 마음이 머물러 있으면, 다시 말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법에 얽매여 있으면, 그것은 본인이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것이므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格이다. 둘 다 어둠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상을 해방시키겠다는 자여, 그대는 과연 해방되었는가? 빛이 저를 먼저 드러내지 않고서 다른 것들을 드러낼 수는 없는 법.

 

 

수보리여. 오는 세상에서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가 이 경經을 받아 지니고 읽으면 곧 여래가 부처님의 지혜로써 그 사람을 낱낱이 알고 그 사람을 속속들이 보리니 모두 가없는 공덕을 이룰 것이다.

 

須菩提여. 當來之世에 若有善男子善女人이 能於此經을 受持讀誦하면 卽爲如來가 以佛智慧로 悉知是人하고 悉見是人하리니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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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經을 읽는 것은 경이 나를 읽는 것이다. 경은 부처님 말씀이다. 내가 경을 읽으면 부처님이 나를 읽는다. 불경이든 성경이든 경을 읽으면서 본인의 실상實相을 보지 못한다면, 경을 헛읽은 것이다.

 

자기의 실상을 읽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은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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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귀가 부하 귀신들과 함께 걷는데 저 앞에서 한 사람이 뭔가를 발견한 것처럼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 귀신이 물었다. 

“대장님! 저 친구가 뭘 발견했어요?” 

마귀가 대답했다. 

“음. 진리의 한 조각을 발견했구먼.”  

그때 귀신이 다시 물었다. 

“대장님! 저 친구가 진리의 한 조각을 발견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그때 마귀가 말했다. 

“아니!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 이제 저 친구가 자신이 발견한 그 작은 진리로 교회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냥 지켜보면 돼! 우리는 저 친구만 이용하면 많은 영혼들을 망칠 수 있네.”

 

내가 다른 사람이 모르는 무엇인가 특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길 때가 조심할 때입니다. 균형을 잃어버리고 극단에 치우친 진리는 결국 진리가 아닙니다. 말씀에서 이탈한 체험은 성경적인 체험이 아니고 말씀에서 이탈한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특별히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관념적인 깨달음은 지나가는 몽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깨달음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이루어질 줄 믿는 종교입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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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해인

 

사랑하는 친구에게 처음 받은

시집의 첫 장을 열듯

오늘도 아침을 엽니다.

 

나에겐 오늘이 새날이듯

당신도 언제나 새사람이고

당신을 느끼는 내 마음도

언제나 새마음입니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던 날의

설레임으로

나의 하루는 눈을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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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향해

출렁이는 안타까운 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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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은 

그냥 오는 법이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 옵니다.

 

하루를 치열하게 산 자들은

제 모양의 꽃을 피우고

시대의 아침을 열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하루

신성한 아침을 맞습니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습니다.

오늘도 희망하며

당신을 향한 순례를 이어갑니다.

설레임으로...

 

 가재울에서 지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