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이관택 전도사

by 좋은만남 posted Aug 16,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무더위, 이 또한 지나가리라?
- 꿈의 공장 콜트콜텍, 꿈꾸는 노동자들의 2000일-
                    

글: 이관택 전도사


 살인적인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어제 시청 앞 쌍용자동차 농성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님을 만났다. 벌써 투쟁 1700일이 다 되어가는 장기투쟁사업장을 이끌고 있는 놀라운 내공의 소유자이시지만, 더위 앞엔 어쩔 수 없는지, 천진난만한 울상을 보여주신다. 특히 어제 아침부터 여름휴가를 받았지만, 휴가기간 중 중요한 회의가 두 개요, 다른 연대투쟁 사업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해서 별로 휴가같지 않다는 이야기에 급 공감(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여름행사들의 고충은 만만치 않기에), 또 재능 농성장의 천막 안이 그야말로 고구마 찜통이라며 손서레를 치시는데, 다시 한 번 공감이 되어 할렐루야로 화답할 뻔했다.(내가 생활하는 기연이네라는 공동체가 거의 지옥을 방불케 하는 찜통의 도가니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순간에 나에게 전해진 것은 우연적인 만남과 유쾌한 대화 속에 느껴진 단순한 동질감의 차원만은 아니다.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바캉스 안가시냐는 나의 농담 섞인 질문에 유명자 지부장님은 바캉스는 무슨 바캉스냐며, 편안한 집에서 며칠만 등부비고 누워보는 것이 소원이라신다. 어찌 이 고단하고, 견고한 삶을 쉽사리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요. 그저 이러한 삶이 온당하다고 믿는 신념과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순수한 소망, 그리고 ‘더 이상은 안 된다’라는 절박함이 그녀를 이 자리로 이끌었으리라. 이야기 하는 짧은 시간에도 우리 서로의 이마엔 땀이 송글 송글, 그늘 막 아래 있었는데도, 태양광선은 그것을 뚫고 우리의 얼굴을 공격하고 있었는지, 너무 너무 너무 더웠다. 하지만 비단 이 한복 더위는 내 피부가 느끼는 온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본의 찜통, 경쟁의 찜통, 차별의 찜통 같은 세상이야 말로 진짜 살인적이다. 숨이 막히도록 무더운 여름 날, 더욱 숨이 턱턱 막히는 이유이다. 

 

20120729_130136.jpg

 

 

살인적인 무더위,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을 생각하면 ‘공장’이 하나 떠오른다. ‘꿈의 공장’이라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이 되었던 콜트콜텍 기타공장 말이다. 지난 7월 24일, “고난함께”를 비롯한 여러 기독교 단체들이 소속되어 있는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에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꿈의 공장에 방문하여 함께 기도회를 진행하였다. 왜 ‘꿈의 공장’인가? 그 동안의 현장방문 기도회는 대부분 길거리나, 거대한 사업장의 정문 앞, 또는 협소하고, 소박한 천막 앞에서 진행되었는데,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있었고, 그 공장은 그야말로 하나의 아름다운 해방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측에서 공장폐쇄를 선언한 2007년 이후, 그 공장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그 곳에서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다. 기계와 설비들이 사라진 텅 빈 공장, 그와 함께 뚱땅거리던 기타선율도 사라져버린 침묵의 공장! 그 곳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예전처럼 그 공장에서 기타를 만드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다시금 아름다운 기타선율이 울려 퍼지게 되길 간절히 꿈꾸고 있다. 그렇게도 간절히 꿈꾸며 투쟁해온 시간이 벌써 2000일을 넘겼다.

 

 부평 갈산동의 한 소박한 동네에 위치한 콜트콜텍 공장은 그 초입부터 여러 예술가들이 창조한 화려하고, 의미 있는 작품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타를 만드는 공장이었던 만큼 한 쪽에서는 다양한 모양의 기타를 직접 만드는 워크샵도 진행되고 있었고, 공장 외벽은 물론이고, 울타리 안 곳곳에 멋진 그림과 전시물들이 우리의 눈을 잡아끌었다.  

 

ssba-logo20090714-400x350.jpg

 

 

2000일 넘게 폐쇄당한 공장에서 힘겹게 투쟁하는 사업장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희망과 역동이 넘치고, 발랄했으며, 유쾌했다. 하지만 역동적이고 화사한 공장외부에 비해 막상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어두침침했으며, 무엇보다 ‘텅’ 비어 있었다. 공장 안은 그 밖과 완전하게 단절된 느낌이며, 공간의 느낌만으로 2000일 넘게 투쟁해온 노동자들의 텅 빈 가슴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벌써 2000일! 그만큼 힘겹고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다.

 

20120729_154535.jpg

 

 

꿈의 공장이라 불리는 콜트콜텍! 하지만 이 '꿈의 공장'의 꿈은 실상 2007년에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2007년 콜트악기가 경영위기와 노사갈등을 이유로 부평의 콜트 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1973년 창립하여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단시간에 고도로 성장한 콜트악기는 2004년 한 해 이익만 200억원에 달하고, 국내 영업이익만 50억원에 육박하는 소위 잘나가는 기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게 산재하나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았으며, 몇 십 년간 임금인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악덕기업이기도 하였다. 세계 3대 기타제조 기업이라는 자랑스러운 과업은 실상 기타를 손수 만드는 노동자들의 몫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악의 노동여건 속에 있었으며, 결국엔 2007년, 기업의 더 큰 이득(해외현지공장 설립)을 위한 불법적 공장폐쇄로 인해 정리해고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저 콜트악기에 충성하며, 열심히 일한 결과가 가져온 엄청난 비극은 콜트콜텍 노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하였다. 폐쇄된 공장을 지켜내는 꿈이며, 멈춰버린 기타선율을 다시 살려내는 꿈이었다. 수 만대의 최고급 기타를 손수 만들면서도 기본코드 하나 잡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그 때부터 직접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지금 노동현장에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콜밴”(콜트콜텍 노동자 밴드)은 그렇게 하여 만들어졌다. 폐쇄된 공장을 점거하고, 그 곳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홍대의 인디 밴드들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콜트악기의 만행을 목도하면서, 기타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몇 년 간이나 릴레이 정기공연으로 연대하였고, 미술가, 조각가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버려진 공장을 예술과 저항문화의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이제 꿈의 공장은 기계가 멈춘 자리에 사람의 영혼이 춤추고, 기타소리가 멈춘 자리에 더욱 풍성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찜통같은 공장안에 들어가면서 눈에 띄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No Worker, No Music! No Music, No Life!”

 

제목 없음.jpg

 


 기도회를 드리는 내내 나는 이 문구가 굉장히 신앙적이라고 생각했다. 평상시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내겐 음악이 하나님의 음성이다.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없으면 내 삶도 없다는 결론은 결국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신앙고백 앞에 우리를 서있게 만든다. 이 무더운 여름 더욱 뜨겁게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 멀리 제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40도를 오르내리는 이 폭염을 뚫고 평화 대행진을 진행 중이다. 각지의 장기 투쟁 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쉬지 않고 더욱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타오르는 길 위에서 살아가는 노숙인들도 마찬가지며, 행정 대집행을 코앞에 두고 있는 두물머리의 농민들도 자신들의 열기로 오히려 태양을 집어삼킬 기세이다. 

 

 8월 콜트콜텍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콜트악기 측에서 공장을 다른 이에게 팔아넘겼으며, 공장을 비워줘야 하는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콜트악기 본사로 상경 투쟁을 가야 할지, 아님 공장을 계속하여 지켜내야 할지, 지난 2000일간 희망의 꿈을 꾸던 노동자들은 다시 한 번 큰 결단의 시간 앞에 놓여있다.      

   

제목 없음3.jpg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남들은 올림픽이라고 떠들썩하게 축제를 벌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사람들, 이들에겐 올 여름만 살인적인 것이 아니다. 임재범의 최신곡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노래제목처럼 여름은 지나가겠지만, 다가오는 가을에도, 겨울에도, 이 타는 목마름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기도하며, 그 꿈을 함께 꿀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무더운 시간이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제목 없음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