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평화'의 달]
민족 상잔 비극의 역사로 얼룩진 6월입니다. 70년전에 일어났던 이 비극이 현재에도 한 맺힌 이산가족의 마음으로, 적대적 대결정책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로 세뇌되고 정치적으로 억압 받은 민중의 삶으로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증오와 대결이 여전한 이 땅에 평화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걷고 생명 평화의 삶을 사시기를 당부합니다.
2. 수도권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역감염 예방을 위한 노력에 교회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예배 참여시 체온 측정과 손소독제 사용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교우들과 가정의 행복과 평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6월 생일 축하]
방인웅 장로님(3), 박순용집사님(7), 이관택 목사님(10), 김영순 권사님(21), 방현섭 목사님(25), 김희수 어린이, 남기평 목사님(28)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목회서신
포기하면 안 될 세대 간 소통의 노력
지난 주일에 주보 이야기 마당에 썼던 성차별적 언어 사건이 저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내내 생각이 꽤 많이 납니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좀더 조심하지 않은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가 가장 뼈아픕니다만 못지 않게 '과연 어떻게 인간 관계를 형성해야 할까, 세대 간이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을 맴돕니다.
우선 그날 제가 한 말을 들었던 후배들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설령 다시 만나게 된다 한들 저에 대한 선입견 없이 저를 알아가거나 자기를 알려주려는 마음이 들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먼저 듭니다. 연령과 생활 반경의 차이가 있으니 어쩌면 다시 만나서 오해를 풀거나 사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나도 '아, 저 사람은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역할을 규정하는 꼰대니까 같이 이야기할 필요 없어!' 하고 마음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선입견이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에게 전해질 수도 있겠고요. 물론 저에게도 선입견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 혹은 그들 세대와 저는 다시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 오해와 선입견을 버리고 보다 진지하게 서를 알아가려는 관계의 노력은 하지 않게 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듭니다.
사람이 한 번 혹은 두 번 보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라면 단 한 번의 만남이 주는 선입견이 관계의 전부를 결정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단단히 말 조심을 하고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또한 한두 번의 만남으로 상대방을 규정하려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첫 인상과는 다른 긍정적 혹은 부정적 모습을 상대방에게 발견하면서 종종 놀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에는 어쩔 수 없는 시간과 문화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 역시 선배 세대와의 갈등과 이해부족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절에는 그 간격이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럼에도 이 간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또 쉽게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겪는 것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높았던 담을 십자가의 보혈로 허무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담을 허무려는 노력을 하는지 여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증하게 될 것입니다.
이모저모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지난 주일 저녁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교우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요양병원에 계신 임정희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요양병원의 환자라고 하기엔 매우 건장하고 건강해 보이는 집사님을 만나니 안심이 되었습니다만… 역시 암 수술을 받은 환자였습니다. 병원 앞 장어집에서 몸보신을 잘 시켜드렸습니다. 병원에서 집과 아이들 걱정이 많은데 어서 퇴원하게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재원, 고수정 성도님 부부의 만두가게에도 들렀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장사도 안 되는데 빌라 아래층에 사는 남자가 층간소음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줘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부부만 사는 집에서 무슨 쿵쾅거릴 일이 있다고 그러는지… 그래도 건강한 얼굴 오랜만에 뵈니 감사했습니다.
인종차별적 공권력에 의한 플로이드 씨의 사망을 애도합니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위조지폐로 물건을 산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조지 플로이드 씨가 경찰의 인종차별적 과잉진합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플로이드 씨는 당시 비무장 상태였으나 데릭 쇼빈 경관은 땅에 엎드려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하는 플로이드 씨의 목을 10여분 간 무릎으로 눌렀고 결국 사망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전세계에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 중에 약탈과 방화, 폭력이 발생하였지만 이도 역시 흑인들이 처한 빈곤한 일상의 현실이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탈자들에 대한 총격을 위협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국민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인종만이 아니라 성별, 성소수자, 민족, 종교 등 모든 종류의 차별은 부당합니다. 무릎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지만 올바로 사용될 때 약자들과의 연대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세상에 자신의 피부색깔이나 성별, 민족과 가문을 선택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차이로 인하여 차별 받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어야 하는 억울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귀한 존재임을 믿고 모든 차별을 반대하며 살겠습니다.
지난 주간 울릉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달 칠순을 맞이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몇 가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계획이 취소되었고, 그 대안으로 평소 아버지의 로망이었던 ‘울릉도 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아쉽게도 요양원 간호사로 일하고 계신 어머니는 코로나주의보로 여행불가의 몸(경기도 지자체에서 관내 모든 요양원에 이동자제령을 내렸다고 하네요.)이 되셔서 아버지와 우리 부부, 세 사람의 단출한 여정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 없이 아버지만을 모시고 가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더군요.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3박 4일의 울렁울렁 울릉도 여행. 예상치 못한 여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뜻하지 않은 행복이 가득했던 시간,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여유있게 나눌 수 있었던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먼저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는 여정’으로 정했습니다. 아버지의 로망이 가득 담긴 울릉도라는 공간 속에서 아버지의 칠십 평생의 인생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하고, 기록함으로써 ‘아버지의 인생시간’을 면밀하게 느껴보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습니다. ‘70세’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완연한 노년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생의 자연스러운 전환점의 과정 가운데 가족들이 함께 서로의 역사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특히 노년의 회한이 가득한 시기일수록 자신의 입으로 과거의 기억을 발화해보는 일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정말 의미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서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니까요.
이번 3박4일의 여행을 통해 먼저는 생경하고 아름다운 울릉도의 풍광에 감탄했습니다. 제주도와 같은 화산섬인 울릉도는 예상보다 더욱 척박하고 험준한 지형을 가지고 있더군요. 덕분에 비포장도로와 경사 70도가 넘는 고바위 길을 달려야 했던 렌터카가 힘들어 하긴 했지만 그만큼 육지에서는 절대 만나기 어려운 절경을 섬의 곳곳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 그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화산지형의 절벽과 산의 형세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또한 여정의 중간 중간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빛나고 특별했던 아버지의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시간이 참 가슴 절절한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진행하듯 아버지의 지나온 인생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는 시간이 참 특별했습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아버지의 삶 속에는 웬만한 사람 못지않은 열정과 낭만의 순간이 가득했고, 반대로 굽이굽이마다 좌절과 어려움도 만만치 않게 등장했는데, 쉽지 않은 세월의 무거움을 어찌 그리 묵묵하게 이겨내셨을까요.
1951년생이신 아버지 이구상님은 한국전쟁의 한 복판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용산에 위치한 미군부대에서 일하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밥은 굶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20대 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모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순탄치 않은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아버지는 70, 80년대 엄혹한 군부독재시절에도 남들 하는 단발머리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며 캠핑도 즐겼던 젊은이였습니다. 친구와 술을 워낙 좋아해서 가끔 통금시간에 걸려 파출소에 끌려갔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아버지 역시 경제 호황기에 누렸던 석재 사업성공도 잠시, IMF의 충격을 온몸으로 떠안고 깊은 슬픔 속에 중년시절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빚더미를 떠안은 채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했던 시간들. 자신의 평생을 바쳐온 경력과 능력 그리고 성실과 부지런함의 노력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절망의 시간은 사람의 자존감과 존재감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지 마치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삶을 몰아쳐갔습니다. 그 당시 제가 청소년이었기에 아버지의 심경을 자세히 헤아리진 못했을 지라도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가는 가세를 절절하게 느끼긴 했습니다.
아버지는 몰아쳐오는 세월의 폭풍에 저항하기도 하고, 또 굴복하기도 했던 수많은 날을 지내왔고 그렇게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간을 마주하고 계십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서로 민망할까봐 묻지 못한 말들도 많았고, 또 어떤 질문에는 아버지께서 한숨으로, 침묵으로 답하기도 하셨습니다. 사실 말이 중요하기보다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 시간자체만으로 참 값지다고 생각했던 울룽도의 밤.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슴이 몽골몽골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동해까지 차로 3시간, 동해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 배로 3시간. 이래저래 울릉도 오가는 길은 웬만한 외국여행보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웬만한 해외여행보다 생경한 울룽도의 여행 이야기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수보리여. 내가 생각해보니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아승지겁에 연등 부처님 앞서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부처님을 만나 그분들을 모두 공양하고 섬기는데 그냥 지나간 적이 없었거니와,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있어 나중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어 왼다면 그가 얻는 공덕이 내가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여 얻은 공덕으로는 백에 하나도 미치지 못하고 천만억분 내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칠 수 없다.
須菩提여.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에 於然燈佛前得値入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하여 悉皆供養承事하되 無空過者였거니와 若復有人이 於後末世에 能受持讀誦此經하면 所得功德이 於我所供養諸佛功德으로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로도 所不能及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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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토록 공양을 하지만 이는 복전福田을 구하는 것이지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게 아니다. 자성自性이 어두울진대 복을 구한들 무엇에 쓰리.”(五祖)
“부처를 공양함은 재물을 보시하는 것인데 재물 보시로 얻는 보상은 세월과 함께 적어져서 드디어 바닥이 나고 만다. 경을 읽는 것은 좋은 뿌리(善根)을 심는 것인데 좋은 뿌리를 심으면 날마다 자나라 마침내 성불成佛에 이른다. 그러므로 끝이 없다. 바닥이 있는 것(有盡)으로 끝이 없는 것(無窮)에 견주니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王日休)
“양무제梁武帝가 절 짓고 부처님 공양하고 재齋 올리는 보시를 하고서 달마 조사達磨祖師께 묻기를 어떤 공덕이 있겠느냐 하자 대답하되 實無功德이라 하였다. 훗날 사람들이 그 뜻을 깨닫지 못하더니, 소주韶州 위사군衛使君이 육조六祖께 여쭈었다. 육조께서 비로소 드러내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절 짓고 부처님 공양하고 재 올리는 보시는 이름하여 수복修福이라고 하는데 복을 가지고서는 공덕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지 수복에 있는 게 아니라 하셨고, 또 이르시기를 공덕은 자성自性에 있는 것으로서 보시와 공양으로 구할 바가 아니니, 그래서 복으로는 공덕에 미치지 못하고 부처님 공양함이 경經을 모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셨다.”(陳雄)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복음 16:26)
실직 당한 아버지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이 보였다. 평상시 같으면 “너는 왜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느냐”고 잔소리를 했겠지만, 그날은 잔소리를 할 의욕도 없었다. 그저 게임하고 있는 아들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조금 이상했다. 게임에서 져서 ‘fail’(실패)이란 단어가 화면에 떠오르는데 아들은 오히려 더 신나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아버지가 물었다. “너 fail이 무슨 뜻인지 모르니?” 아들이 아버지를 쳐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실패라는 뜻 아니에요?” 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기뻐하니? 실패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라?”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 아빠도! 게임에서 실패란 ‘다시 한 번 더 해보라’는 뜻이잖아요! 새로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아들을 보면서 아빠는 그만 눈물을 울컥 쏟아졌다. ‘그래, 네가 나보다 낫구나. 실패란 네 말처럼 끝이라는 소리가 아니로구나. 다시 한 번 해보라는 뜻이구나.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니 오히려 신나는 일이 맞구나.’
아빠는 다시 일어났다. 다른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주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미래를 정하는 방향이 됩니다. 두려움과 근심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두려움과 근심을 평안으로 바꾸는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막막하고 어려운 현실 속, 극심한 경쟁 구도에 지쳐 있는 오늘, 문제 앞에 포기하지 말고, 문제 뒤에 감추어진 가능성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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