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쇄살인범의 몽타쥬
글: 이관택 전도사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60년만의 혹한이다. 100년만의 강추위다.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었던 시절이었지만, 어느새 그 혹독했던 날씨도 시나브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오랜만에 비도 내렸습니다. 그 만큼 날이 많이 풀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가운 신호일 텐데, 어째 아직도 우리 삶의 온도는 올라갈 줄 모르고, 꽁꽁 얼어버린 우리네 시린 마음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비온 뒤, 다음 날 아침 길을 걷다 보니까, 도로 곳곳이 움푹 패여서 길이 엉망이 되어 있더군요. 여기저기 그 움푹 패인 흔적들을 메우는 공사도 분주하게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마도 겨우내 얼었던 도로에 빗물이 스며들자 그 지반이 약해져서 폭삭 주저앉고 말았던 모양인가 봅니다. 도로의 여기 저기 구멍 난 모습들이 참 황량해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도로의 모습이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아 있던지요.
지난 1월 28일에 또 한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기아 자동차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3년 전 해고당했던 故윤주형님. 이제 겨우 35세인 그는 해고 된 뒤에도 멈추지 않고, 노동운동에 투신하며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왔던 노동자였습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을까요? 아마도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다가 갑작스레 맞이한 빗물에 폭삭 주저 앉아버린 도로처럼 해고자의 삶을 살아내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비가 오는데, 그 비를 스스로 견뎌 낼만한 힘도,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제도적 장치나 주변의 손길도, 앞으로 나아질 거란 한줌의 희망도 없는 것이 지금 한국의 노동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사태 이 후 지난 3년간 사망한 노동자와 그의 가족이 23명이란 소리에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단일 사업장에서 한두 달 건너 한 명씩, 한 명씩 쓰러져간 연쇄죽음! 많은 이들이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소리치며, ‘함께 살자’를 외쳤습니다. 대선 후보들은 앞 다투어 국정조사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지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리 기다려 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23명의 죽음도 점점 잊혀져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난 대선 이 후 한 달 남짓, 벌써 6명의 또 다른 노동자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한주가 멀다하고 죽음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가장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믿었던 동료가 삶을 포기합니다.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동료들의 비보를 접할 때마다, 슬픔을 뛰어넘는 분노와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과연 다음은 누구일까?’
마치 추위와 비 때문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려버린 황량한 도로처럼,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주저앉아버린 생명들이 보여주는 이 살풍경을 여러분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30명에 육박하는 노동자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이 연쇄살인의 범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어제 2000일 넘게 공장을 지키며 투쟁하던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전원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사업주가 불법으로 공장을 폐쇄하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옥에 갇혀있는 것은 노동자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대형마트체인인 이마트에서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사찰하고, 그것도 모자라 노동자들에게 등급을 매겨서 교묘하게 불법 해고한 사실들도 밝혀졌습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지만 그 후속 조치가 없습니다. 부당하게 징계당한 노동자들이 현장에 복귀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 가을부터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철탑농성을 하고 있는 현장에는 얼마 전 고3학생까지 용역으로 투입하여 무리한 강제진압을 시도하였습니다. 시청 환구단에 위치한 재능교육 천막에는 또다시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습니다. 핵폭탄 같은 수십억의 손배 가압류는 또 다시 노동자들의 목을 조여 옵니다.
어떤 이들은 노동자들이 “왜 죽느냐”고 비아냥거립니다. 하지만 어떻게 삽니까? 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고, 경쟁과 차별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이 땅에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은 패배감과 절망감의 삶을 살아갈 것이며,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과 정권은 서로 담합하여 노동조합을 탄압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체제입니다. 결국 이 사탄의 체제는 우리 삶 전체를 통제하고, 탄압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을 살해할 것입니다. 원칙 없는 폭력이 사람을 얼마나 공포스럽게 만드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앞을 알 수 없는 절망, 희망이 부재한 시대, 이 기막힌 죽음의 행렬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노동자 연쇄살인범의 몽타쥬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칫 타인의 문제라고 외면하는 순간, 미소 짓고 있을 사탄의 얼굴이 바로 그 몽타쥬의 실체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절실할 때입니다. 이 사탄의 체제 속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하여, 먼저 간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에 직면한 이들과 함께하며, 우리 모두의 희망을 위해 기도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