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6일

by 좋은만남 posted Jul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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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해방'의 달]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에서 놓여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사적으로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사회 인권의 측면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억누르고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는 관습과 제도가 많습니다. 다양한 억압으로부터 놓여 하나님 자녀의 존엄을 누리며 살게 하십시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8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 평화의 길을 걷는 삶을 사시기를 당부합니다.
2.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어 지역감염 예방을 위한 노력에 교회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예배 참여시 체온 측정과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지난 24일부터 종교시설에 대한 방역강화 조치가 해제됨에 따라 다시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리며 성만찬과 공동식사도 진행하겠습니다.
4. 8월 둘째 주일(9일) 오후에는 그동안 하지 못한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꼭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5. 교우들과 가정, 직장의 행복과 평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6. 옥바라지선교센터가 노량진수산시장 강제이전 반대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을 준비하며 8월 21일까지 기부물품을 받고 있습니다. 뜻 있으신 분들의 기부를 부탁합니다.
 
■  다음주일(8월 2일 . 성령강림 후 제9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목회기도 
봉헌위원 : 안주영 성도 / 성찬보좌 : 윤재민 청년 / 안내 : 방정혁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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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코로나도 있고 해서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는데 강화에 계신 이필완 목사님이 어디론가 같이 휴가를 가고 싶으시다고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갑작스레 휴가날을 잡고 행선지를 찾다가, 이 목사님의 연로하신 장모님을 생각하여 그냥 이 목사님 댁에서 사흘을 지내기로 하고 지난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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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가 오래도록 내릴꺼라는 예보와는 달리 월요일 오전에만 잠깐 온 후 대체로 흐려서 무덥지도 않게 휴가를 잘 보냈습니다. 밤에는 모닥불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엔 늦잠도 자고 또 낮에는 드라이브 삼아 동명항, 연미정, 교동을 한 바퀴 돌며 사진도 찍고, 평화로운 일상을 사흘동안 보내고 왔습니다. 북적대는 휴양지보다 한적하고 훨씬 좋았습니다. 마지막 밤인 화요일 밤에는 강화에 계시는 선배 목사님 부부들과 대북사업을 하는 친구 목사님이 오셔서 늦은 시간까지 도란도란 목회 이야기, 코로나 이후 이야기, 사는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동안 뭔가 좀 어색했던 선배 목사님 한 분과는 마음을 활짝 터놓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는 관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코로나 때문에, 예기치 않게 어긋나는 관계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했던 좋은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모닥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니 비로소 제가 서 있는 자리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삶의 장애, 코로나19, 목회와 가정의 위기, 고독… 이것을 이기는 힘은 결국 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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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부지방에 장마 폭우가 쏟아져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재산피해를 보았습니다. 장마전선은 동해안 지역에 400mm이상의 폭우를 쏟아부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특히 부산은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고 313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최근의 폭우는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 남아시아에도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중국은 6월부터 폭우가 쏟아져 14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으며 4,5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일본도 70여 명이 사망하였고 주택 14,000여 채가 침수되었습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에도 6월부터 현재까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기상청은 동아시아를 강타한 이번 폭우가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이번과 같은 북극 찬공기 남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 기온이 높아지며 생긴 현상이다. 북극의 해빙 등이 정말 많이 녹는 등 온난화 현상이 심각하다. 지구온난화가 해결이 안 되는 이상 올해 7월과 같은 비 피해는 여름마다 반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재해입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아시아 일대의 폭우로 인하여 아픔을 겪는 이웃을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편리와 무한소유를 추구한 인간의 탐욕이 결국 지구온난화라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 이례적인 폭우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깨닫고 공생을 위한 실천적 선택을 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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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우리 부부가 함께한 3박4일의 울릉도 여행을 다녀온 지 어느새 두 달이나 지났다. 돌아보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뒤꽁무니만 쫓아가는 것 같아 늘 아쉬운 발걸음이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이도저도 못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대부분은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시간자체를 뭉개고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못내 아쉽고, 괜시리 흘러가는 시계만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나마 위안이라고 하면 6월부터 시작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쏟아지는 장대비는 귀찮은 존재이지만 나의 시공간을 오롯하게 감싸고 있다는 편안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이 비가 계속 오는 한 ‘이 시간’은 내 곁에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 특히 후두둑하는 빗소리는 내 안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영혼의 감성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신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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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니 울릉도의 빗소리가 생각난다. 울릉도의 마지막 날 밤에도 비가 내렸다. 숙소가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파도소리, 바람소리, 뒷산의 시냇물 소리와 섞여 들리는 후두둑한 소리. 울릉도는 빗소리마저 특유의 숨결을 전달하고 있었다. 
 
다행히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쨍한 날씨 가운데 아름다운 울릉도의 풍광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울릉도에 도착하고 첫 번째로 발걸음 한 곳은 <관음도>였다. 관음도는 도보다리로 이어져 있어 걸어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섬이다. 특히 관음도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부채처럼 펼쳐진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주변 섬들의 표면이 오랜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인해 깎여져서 형성된 울릉도의 주상절리는 정말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 바다는 왜 그렇게 파란지. 하늘과 경계가 모호한 관음도의 바다는 펼쳐진 주상절리와 파란들에 봉곳 솟은 것 같은 작은 섬들의 향연으로 광활한 오케스트라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표현이 조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풍경이 아름다워서 마치 눈으로 음악을 듣는 것 같은 황홀함 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음도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온 섬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갈매기들의 존재였다. 일단 갈매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는 점. 그리고 그 갈매기들이 울어대는 작은 굉음이 시종일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점이 눈으로 펼쳐진 오케스트라 같은 풍경과는 조금 이질적이었지만 나름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갈매기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그 곳에서 울릉도에 오고 싶었던 진짜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몇 달 전인가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남태평양의 어느 섬의 이야기를 접했는데 푸른 해안가에 발 딛을 틈 없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하얀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섬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섬이지만 왠지 가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 여행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의 말미에 우리나라에도 그 섬과 비슷한 곳이 있었고 그 섬이 바로 울릉도였다는 것이다. 평소 여행에 별 관심이 없던 아버지가 그토록 울릉도에 가야겠다고 노래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 갈매기들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시끄러운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도, 사방을 하얗게 메우고 있는 갈매기 똥도 좋아하지 않으셨다. 또 나름의 등산 탐방로인 관음로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힘들다는 볼멘소리를 내셨다. 로망이 현실이 되었지만, 설레임의 존재는 실상 상상했던 것만큼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칠십 인생을 살아오신 아버지께서는 관음도에서 다시 한 번 삶의 새삼스러운 진리를 확인하신 듯하다. 
 
둘째 날은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에 갔다. 온통 산으로 뒤덮여 있는 섬에서 평지를 찾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다. 엄청난 고바위 경사로를 자동차로 30여 분간 올라가니 세찬 바람이 부는 나리분지를 만날 수 있었는데 겨우 동서의 폭이 1.5km 남북의 길이는 2km가 채 안 되는 작은 평지였다. 그 곳에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울릉도 ‘너와집’이 있었다. 울릉도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볏단으로 만드는 초가집보다는 갈대로 만든 투막집이 일반적인데, 그 투막집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나무를 기와처럼 쌓아올린 너와집이다. 아무래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나리분지의 특성 때문인지 지붕을 튼실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 같은데 지붕에 올려진 너와들은 나름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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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분지에서 독특하게 생각된 것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씨앗을 가득품은 민들레 같은 식물이었다. 민들레라고 하기에는 조금 크고, 밭에 군락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재배를 하는 것 같기도 하였는데 정체를 알 수 없어 상당히 답답했다. 심지어 주변에 농사를 하고 있는 분에게 물어보았는데도 대답을 안해줘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나중에 식당에 가서 그 해답을 알게 되었는데 지천에 널려있는 그 민들레 같은 식물이 바로 ‘명이나물’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요즘 우리가 삼겹살 먹을 때 주로 싸먹는 명이나물의 원산지가 바로 울릉도라는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 먹는 명이나물의 대다수는 중국산이어서 울릉도산 명이나물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제서야 아까 우리의 질문을 무시했던 분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울릉도에 여행 온 사람들이 명이나물을 무단으로 채취해가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같은 한국인데도 울릉도는 여행자에게 참 생경한 느낌을 많이 선물해주는구나. 신비로움을 간직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리분지를 내려왔다.
 
후두둑한 비가 내리는 마지막 밤을 보내고 드디어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당초 계획에 없던 독도에 가기로 했다. 지난 이틀간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결과 계획했던 일정을 대부분 소화했던 점도 있었고, 또 아버지께서 여기까지 왔는데 독도는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셔서 결국 독도행 배에 올랐다. 첫날 비싸디 비싼 독도새우가 우리를 조금 실망시켰기 때문에 실물 ‘독도’만큼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면서 떠난 뱃길 여행.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를 1시간 30분에 걸쳐 가는 동안 배 안에서는 끊임없이 독도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일본과의 관계, 독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숭고한 곳인지에 대한 감성적인 이야기들이었다. 함께 배에 탄 사람들은 저마다 태극기와 ‘아이러브독도’같은 국뽕코스튬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평소 애국주의에 대해 나름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적응이 안 되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내 안에 알 수 없는 엘리트주의가 있는지 뜨거운 마음을 안고 독도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과 공감하기 보다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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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독도는 독도였다. 맑은 하늘이 독도 주변에 이르니 갑자기 흐려지더니 파도가 높아졌다. 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휘청거리니 독도에 입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해보였고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지르며 안타까워했다. 사실 독도에 입도할 수 있는 확률은 원래가 절반이하이기 때문에 굉장히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돌아간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나도 어느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창가에 비춰진 독도의 모습을 보면서 저 땅을 두 발로 밟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우리를 태운 배는 15분여 동안 파도의 출렁임과 싸웠던 것 같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는 독도에 입도 할 수 있었다. 

사실 대단한 것은 없었다. 한 가지 눈으로 확인한 것은 독도는 ‘외로운 섬하나’가 아니라는 점. 독도는 동도와 서도의 큰 두 개의 섬과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때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독도에 직접 와서 저마다의 기도와 응원을 하고 있지 않은가. 또 거기에는 새들이 있었다. 독도는 진정한 ‘새들의 고향’이다. 관음도에서 그렇게 많은 갈매기를 보았는데 독도는 또 다른 별천지였다. 초록풀 하나 없는 이 돌섬에서의 갈매기들이 어쩌면 더욱 용감하고, 대단해보였으니 독도는 진정 ‘새들의 고향’이라 부를 만 하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셀레는 발걸음으로 독도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독도경비대분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밝게 웃으신 것을 참 오랜만에 보았던 것 같다.  
 
두서없는 울릉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숨결이 이 땅 곳곳 모든 만물 가운데 함께하고 계시다는 생각을 절감하게 된다. 사람을 통하여, 자연을 통하여, 낯섬과 생경함을 통하여, 편견과 어려움을 통하여, 간절함과 그리움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다음에는 또 어디로 인도하실지. 머뭇거리고 비틀거리며 조금은 게으른 나의 발걸음을 통하여 또 어떤 설레이는 이들을 만나게 하시고, 신비로운 광경을 듣게 하실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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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만약에 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부처님 땅을 아름답게 꾸미라고 한다면 그를 보살이라고 부를 수 없다.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가 설하기를, 부처의 땅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요 아름답게 꾸민다고 이름 지은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須菩提 若菩薩이 作是言하기를 我當藏嚴佛土면 是不名菩薩이니라. 何以故오, 如來가 說하기를 藏嚴佛土者는 卽非藏嚴이요 是名藏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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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부처님(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횃불을 밝게 해도 그 빛으로 태양 빛을 더욱 밝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사람은 마땅히 부처님(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려야 한다. 자식이 상을 받으면 그 아비가 빛나듯이, 아름답고 진실한 행동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사람이 햇빛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투명한 존재로 되어 그늘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무아의 경지에 오르는 것, 그것이 모든 인간의 마지막 목표다.(그가 그것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정혜定慧의 보寶로서 마음의 불토佛土를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이 보살이다. 그는 자기의 공功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 자취를 보지 못한다. 금주金珠의 보寶로써 세간의 불토를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은 범부다. 언제나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서 자기의 공을 스스로 떠들어댄다. [문수반야경文殊般若經]에 이르기를, 일체 중생을 위하여 대장엄大莊嚴을 내되 마음으로 장엄의 상相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살이 이와 같으니 어찌 그 공을 스스로 말하랴? 만약에 내가 부처님 땅을 아름답게 꾸민다고 말한다면 이는 네 가지 상(四相)이 아직 없어지지 않은 것이므로 범부의 견해일 뿐이다. 어떻게 그를 보살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陣雄)
 
 
수보리여, 만약에 보살이 ‘나’ 없는 법에 통달하면 여래가 저를 참된 보살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須菩提여,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면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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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다(無我)는 말은 전체에서 분리된 독자적 자아라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서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인데 어디에 독립된 실체가 있겠는가?
 
이 진실을 깨쳐 통달한 사람,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보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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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임금이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 백방으로 약을 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사람이 찾아와서 말했다. “임금님의 병은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벗겨다가 입으면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임금은 즉시 병사들을 전국에 파견하여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모두 행복의 기쁨이 안 보였다. 임금의 병세는 더욱 더 악화되어갔다. 나중에 왕자가 직접 찾아 나섰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어느날 왕자가 어느 오두막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에서 기쁨에 넘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감사의 기도를 마치고 기쁨에 넘쳐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순간 왕자는 이 집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집이라 생각하고 들어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속옷을 벗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지 않자 칼로 위협하고 겉옷을 벗겼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너무 가난해서 속옷을 입지 못했던 것이다.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자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속옷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에서 나옵니다. 감사가 곧 행복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환경과 조건이 맞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게 될 때 행복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칼 힐티의 <행복론>에 행복의 첫째 조건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감사할 때 기쁨이 찾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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