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 마자 우리의 의사와 관계 없이 두 동강 나 대결과 갈등의 상처를 입은지 벌써 75년이나 되었습니다. 민족의 하나됨은 양자가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함에도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외국의 간섭을 벗어나 이 민족이 통일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1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 평화의 길을 걷는 삶을 사시기를 당부합니다.
2. 오늘 오후로 예정된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는 코로나 감염확산 우려에 대한 지침에 따라 연기하겠습니다.
3. 교우들과 가정, 직장의 행복과 평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옥바라지선교센터가 노량진수산시장 강제이전 반대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을 준비하며 8월 28일까지 기부물품을 받고 있습니다. 뜻 있으신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 다음주일(8월 23일 . 성령강림 후 제12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윤재민 청년
봉헌위원 : 안주영 성도 / 성찬보좌 : 윤재민 청년 / 안내 : 방정혁 학생
이모저모
강원도에서 가져오신 옥수수 한 상자
금요일에 교회 사무실에서 주일 준비를 하는 중에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강원도 인제에 계신 방인웅 장로님이 서울로 올라오시는 중이시라고 합니다. 갑자기 웬일로 오시냐고 여쭈었더니 옥수수를 갖다 주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택배기사의 날'이라 택배 발송을 할 수 없다고 직접 가져오신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보내시면 되지 않냐니까 그때는 맛이 없어진다고 하시고, 굳이 서울까지 차 끌고 오실 필요 없다고 만류했지만… 기어이 오셨습니다. 교우들과 주일에 나눠 먹으라는 것입니다. 옥수수 한 상자를 내려놓으시더니 금방 다시 가버리셨습니다.
지난 임시 야외예배로 갔을 때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온 데다 옥수수, 복숭아, 포도 등이 아직 여물지 않아서 맛보여주시지 못한 게 아쉬우셨었나 봅니다. 오가는 길 다섯 시간 동안 운전하시면서 갖다 주신 옥수수,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가슴 한켠은 찡해집니다. 옥수수 한 상자에 담긴 마음과 정성, 사랑에 감사합니다. 교우들도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목회서신
작은 변화로 만드는 생활의 풍요
예배당 건축을 시작한 것이 2005년 가을이고 이듬해인 2006년 봄에 입당하였습니다. 예배당 건축이 벌써 1년 모자란 20년 전 일이라니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세월이 그렇게 흐르다 보니 가전제품이나 인테리어가 슬슬 낡고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냉장고를 바꿨지요.
사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자꾸 주방을 고쳐달라고 조릅니다. 싱크대도 바꿀 때가 됐고 조리공간도 너무 비좁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짠돌이인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물론 마음 한켠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꼭 필요한 몇 가지만 바꿔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식탁 위치를 옮겨 놓고 싱크대 스테인리스 개수대와 가스레인지, 싱크대와 세면기의 수도꼭지(수전)를 바꿔주기로 대타협(?)을 하였습니다.
인터넷으로 개수대와 가스레인지 주문을 하고 고남곤 권사님께 수도꼭지를 부탁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직접 교체작업을 하였습니다. 식탁 위에 저렴하지만 아기자기한 이케아 산 펜던트 등도 하나 달았습니다. 싸고 얄팍한 개수대였지만 새거라고 번쩍번쩍하는 게 분위기가 싹 바뀌었습니다. 수도꼭지들도 광이 납니다. 덕분에 불필요한 잡동사니 정리도 하게 되었고요. 겨우 몇 가지 바꿨지만 아내는 만족한다면서 신혼부부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혼 때처럼 살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신혼은 새 가구도 없는 열 평 반지하 빌라였는데???
아주 작은 변화들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느낍니다. 바쁘게 쫓기듯 사는 인생에는 변화가 불편합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고정된 틀이 더 빠르고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삶이 우리의 시간을 깊고 넓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코로나로 갇힌 듯한 생활에서 교우들이 작은 변화를 만들며 활력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수도권의 코로나19 재유행을 방역강화로 극복해 나갑시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가 수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8월 15일 0시 기준으로 전날에 비해 확진자가 166명이 늘었고 검사진행자 수는 1,486명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평에서는 복날을 맞아 어르신 복달임을 위한 모임에서 31명이 확진을 받았고 용인에서는 산사태 예방 순찰을 하는 기간제 노동자 4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패스트푸드점 롯데리아에서도 점장 모임과 관련하여 최소 8개 매장의 직원 11명이 확진되었습니다. 문제는 교회발 감염입니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는 신규 44명, 용인 우리제일교회는 73명의 추가 확진자가 나왔고 여의도 순복음교회 교인 중에서도 확진자가 나와 관계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핸과 소비를 장려하는 등 패착을 저질렀으며 '이미 수도권에 코로나가 광범위하게 퍼졌고 여름휴가 기간동안 표면화한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감염확산 방지를 위해 긴장을 높여야 할 때입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장기간 방역과 거리두기로 지치고 지루해진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있고 교회가 수칙을 지키지 않아 더욱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이 높아졌지만 안일한 인식과 방심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게 인도해주십시오.
제2화 일탈과 방황(2)
초등학교 시절 교회는 꼭 가야 했기에 의무적으로 교회를 다녔던 나는 고등학교 시절 가출을 했어도 교회는 갔었다(나도 참 아이러니하다). 교회에서 차별을 참 많이 받았다.
어렵게 사는 애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교회를 꾸역꾸역 나갔다. 오래된 교회일수록 가족 위주의 성도집단이 만들어진다. 부모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교회에서 하는 전교인체육대회도 참여하지 못했다. 따라간다고 해도 밥도 간식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다. 앉을 자리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내가 다녔던 교회가 조금 이상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상했던 것일까?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외면받아야 했었다. 무엇인가 없어지면 먼저 의심을 했고,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럴수록 나는 보란 듯이 사고를 쳤다. 결국 당시 유초등부 전도사님께 싸다구를 맞고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런 경험 얘기하면 다들 놀란다. 교회에서 전도사가 초등학생을 싸다구를 때린다는 것! 상상도 못 한다고들 말한다. 아마 우리 부모가 교회에 집사, 권사, 장로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그래도 됐었나??~ 씁쓸하네...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장기를 좌우한다는 말을 증명하듯 살면서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가정에서는 방치되고, 학교에서는 포기하고, 교회에서는 외면받는 한 아이는 계속해서 삐뚤어져 갔다. 물론 모든 문제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라는 틀이 너무 비좁고 숨 막히는 공간이었던 한 사람은 결국 가정, 마을, 학교, 종교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양한 인생의 삶들 중에 나의 삶은 어느 정도 극단적이라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네 삶 속에 작게 녹아져 스며든 일들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사회는 자주 배신을 한다. 때론 함께 하는 것 같지만 외톨이로 만들어버리고, 그리고 때론 위로하는 것 같지만 거절하고 있다. 그리고 단위를 묶어 이기적이게 만들기도 한다. 전체와 다르면 분리되어버리는 것은 다반사일 것이다. 완전한척하지만 불완전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꽃 피우기 위해 그렇게 타협하고 인정하며 전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이 과정을 잘 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사회성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게 나는 사회성 없는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뭐 대단하다고 그러겠냐마는 이러한 이력들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따라다녔다. 중학교에 진학을 했더니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주변 몇 개 학교에서 잘 나간다던 애들이 옆에 붙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경찰에 붙잡혀 신분 조회를 당하였다. 서울역 인근 파출소에 끌려가서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벌을 서던 일들이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후 경찰들과는 친분이 있는 관계가 되었다. 오죽하면 봉사활동으로 파출소 청소를 했을까...
중학교 시절은 그래도 조용히 살아보려고 노력도 했고, 학업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운동(육상부)에 집중하느라 별 탈이 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더욱이 그 시절은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예전에 다니던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 교회에서 행사도 열심히 하고 교회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었다. 겨울이면 암모나이트나, 시조새쯤 되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문학의 밤(당시 행사명: 밀알잔치)’ 무대도 만들고 연극, 노래, 꽁트 등 이 시절 쌓았던 교회 활동들은 시간이 지나 전도사를 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 중학교 3학년 말쯤 되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돈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분명히 겨울이었다. 어느 날 교회 친구들(교회친구들)이 이상한 도깨비라는 성인용품 전단지를 가지고 교회에 왔다. 그때 비로소 세상이 어떤지 눈을 떴다. 세상에 이런 물건도 나오기 시작했구나~~ 친구들은 전단지를 자동차 앞 유리창에 끼워 넣으면 돈을 준다고 했다. 그 친구들에게 나도 할 수 없느냐고 했더니 치사하게 내가 할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친구를 꼬드겨서 벽보 붙이는 알바를 구하러 다녔다. 그 친구와 안국동에 있는 한 사무실을 찾아갔다. 현대건설 바로 옆에 이상한 검은색 벽돌로 된 4,5층 되는 건물 같은데 몇 층인지는 기억이 없지만 그 친구와 들어간 곳은 氣(기), 風(풍) 이런 강의를 하는 곳이었다. 얼마 후 알게 된 것이지만 ‘증산도’ 광고 벽보였다. 당시 증산도가 부흥을 하고 있던 때라 그런 벽보가 이곳저곳에 많았던 때이다. 일급이 꽤나 많았던 것 같다. 당시 패스트푸드점의 시급이 1,500원정도 했던 것 같은데 벽보 알바는 100장에 5천원 200장에 만원을 벌 수 있었다. 2시간이면 끝나기 때문에 알바 가성비로는 정말 최고였다.
벽보는 속전속결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노하우가 속도를 좌우한다. 우선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면장갑을 준비한다. 엄지와 검지는 필수적으로 잘라내야 한다. 그리고 스카치테이프만 있으면 장비는 준비 완료가 된다. 그 다음 속도가 중요하다.
왼손은 포스터와 테이프를 잡고 오른손은 사정없이 테이프를 끊어 ‘딱딱딱딱’ 붙이고 바로 철수한다. 아마추어는 2인 1조가 조금 수월하지만 한 달 이상 해본 프로경험자는 혼자가 편하다. 이 알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벽면이 재질이 중요하다. 까칠한 곳은 피해야 한다. 두 번째 잘 보이는 곳에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자가 있는데 차로 다니면서 잘 붙이고 있는지, 잘 붙였는지 감시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좁은 골목길은 감독자가 확인을 못한다. 그러므로 대로변에는 왕창 붙여야 한다. 창피하다고 해서 안 붙이면 일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수가 있다.
이 일을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넉넉한 용돈을 만들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번 돈으로 프로스펙스 가방을 샀었다. 난 지금도 증산도가 내 가방을 사게 해준 고마운 종교라고 생각한다. 혹 내가 붙인 벽보를 보고 많은 사람이 현혹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일을 경험으로 시작해 그해 겨울은 여러 벽보를 붙이며 다녔다. ‘나미’, ‘전람회’, ‘패닉’등등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전봇대는 모조리 붙였다. 그러다 걸려서 파출소에도 끌려가기를 수없이 반복했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수보리여. 지난날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지금 있는 마음을 얻을 수 없고 오지 않은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所以者何오, 須菩提여. 過去心을 不可得이요 現在心을 不可得이요 未來心을 不可得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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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공간으로도 나뉠 수 없고 시간으로도 나뉠 수 없다. 나뉠 마음도, 나눌 공간·시간도 따로 없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마음을 구하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고
두 눈이 두 눈으로 두 눈을 마주 본다.
칼을 물에 빠뜨리고
배에다가 그 빠뜨린 곳을 새겨 두지 말지니
눈·달·바람·꽃이 언제나
그 얼굴을 드러내는도다.
三際求心心不見 兩眼依然對兩眼
不須遺劒刻舟尋 雪月風花常見面-川禪師
사람마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로 품는 마음들이 그게 모두 헛된 마음(妄心)이다. 인연 따라 있다가 없어지는 물거품과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마음을 있게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그 마음도 사실은 없는 마음이다. 모든 것을 있게 하면서 저는 없다.
문물이 그 ‘없이 있는’ 마음의 얼굴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있지도 않은 마음에 사로잡혀 꺼들리지 말라는 얘긴가?
“언제나 참마음(眞心)에 머물면 그것이 곧 참된 성품(眞性) 이다. 이로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이 오고 오지만 언제나 일정하여 변동이 없으니 과거·미래·현재가 어찌 있으랴? 만약 과거·미래·현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헛된 생각(妄心)이다. 앞에 말한 세 마음(과거심, 미래심, 현재심)이 바로 그것이다.
배불리 먹어서 먹고 싶지 않으면 이는 먹고 싶은 마음이 아직 오지 않은(未來) 것이요, 배가 고파서 먹고 싶으면 이는 먹고 싶은 마음이 지금 있는(現在) 것이요, 식사를 끝내고 수저를 놓으면 이는 먹고 싶은 마음이 지나간(過去) 것이다. 이 모든 마음이 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가 일이 지나가면 사라지니 그래서 헛된 생각인 것이다.
얻을 수 없다는 말은 그게 본디 없다는 말이다. 이 세 마음이 본디부터 없고 다만 일로 말미암아 있을 따름임을 말한 것이다.” (王日休)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한 남자가 화가 잔뜩 나서 술집에 들어왔다.
그는 맥주를 한 잔 주문하며 말했다.
“국회의원들은 다 거지같은 놈들이야.”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 말 취소하세요.”
남자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요? 당신 국회의원이요?”
옆에 있던 남자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나는 거지요.”
정치인들은 상식적인 일을 정략적으로 만들어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잘 하는 일은 잘한다 못하는 일은 못한다고 말해야 하나 잘 하는 일조차 흠을 찾으려고 들고 못하는 일은 침소봉대하여 곧 나라가 망할 것 같이 선동합니다. 모든 잘못이 정부에 있는 것 같이 탓하게 만들고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고소를 남발합니다. 어제까지 자기가 망친 일을 오늘은 상대방이 망치고 있다고 적반하장 꼬장을 피웁니다. 언제나 자기 견해를 국민의 이름으로 말하고 국민은 모두 자기 편인 것처럼 호기를 부립니다. 자기 잘못에 대해 반성할 줄을 모릅니다. 고개는 숙이지만 눈을 내려깔지는 않습니다. 그런 정치인의 말에 건망증이 많은 이 백성은 일희일비합니다. 나는 이런 정치인을 의지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밥빌어 먹는 깨어있는 거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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