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평등'의 달]
하나님은 우리를 평등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인류는 다 하나님의 동등한 사랑을 입은 자녀임을 믿으며 그 누구도 성별, 학력, 빈부, 종교, 국적 등으로 인해 차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폭력적 차별을 거부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절 제3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15주일입니다. 공평과 정의, 사랑과 자비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 땅위에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코로나19 감염확산으로 인하여 예배가 비대면으로 전환되어 주일 오전 10시에 유튜브를 통하여 예배 및 설교 영상을 공유하오니 가정에서 상황에 따라 경건하게 예배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다음주일 예배는 오전 10시에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실시간 영상예배를 드리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주일에는 개인적 일정을 조정하여 예배 시간에 맞추도록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교우와 가정의 평화와 건강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 다음주일(9월 20일 . 왕국절 제4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남기평 목사 / 기도 : 함옥분 장로
봉헌위원 : 오호숙 권사 / 성찬보좌 : 윤성일 집사 / 안내 : 임정희 집사

목회서신
감독의 목회서신을 보면서
코로나가 교회와 우리의 일상을 많이 바꿔놓은 것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앞으로 일상이 될지도 모를 이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교회가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사랑제일교회(이 집단을 교회라고 부르기는 싫지만 고유명사이니…)로부터 시작된 코로나 집단 감염사태에 국민의 불만이 폭주하여 그 악영향이 개신교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교회 발 감염확산을 우려하여 예배 금지(물론 저도 금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조치를 내렸고 대다수 교회가 이에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감리교회 서울연회 감독 서신이 온라인으로 공지되었습니다. 서신에는 "주일 예배를 영상으로 계속해서 드리게 된다면… 교회들은 정부의 명령에 맹종하는 정부 하부기관으로 전락되고 말 것", "예배를 드려라, 드리지 말아라 명령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 "정부 당국자들은 교회를 '문제집단' 정도로 경시하는 어투로 '예배당 문을 닫으라'는 권한 밖의 명령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며 20일부터 정상적으로 대면예배를 드리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법적으로 공동 대처할 계획이라면서요.
네! 교회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이해는 갑니다만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는 너무 무감한 것 같습니다. 교회 밖의 이웃들과 공감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를 꺼리겠지요. 코로나 상황에서 대면예배가 열려도 미래의 주역이자 기둥이고 현재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청장년층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대면)예배가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주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교계 지도자들이 노년층이라 노년 세대의 의식과 성장 과정에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그 세대 중심으로만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자기 세대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주요 지도자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자는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가져야 할 테니까요. 코로나가 교회에 던지는 과제가 특히 더 많습니다.
이모저모
남기평 목사님과 데나리온뱅크를 응원합니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남기평 목사님 관련된 기사를 발견하였습니다. 남 목사님이 EYC(한국기독청년협의회) 총무로 계실 때 추진하신 데나리온뱅크 관련 기사였습니다. 지금은 총무를 사임하셨지만 여전히 데나리온뱅크의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네요.
기사에서 남 목사님은 “처음 데나리온뱅크를 설립하면서 교회 어른들에게 단체에 대해 설명하자 상당수의 반응은 ‘수익이 발생하지도 않는데 왜 하냐’는 식이었다. 그러나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보다는 교회 내 청년들끼리 직접 운영도 하고,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청년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청년자조금융 형태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때문에 교회가 장학금을 제공하기보단 자조금융 형태를 갖춰서 청년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고, 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0여명의 조합원이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경제문화’를 꿈꾸며 설립한 데나리온뱅크가 기독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2018년 12월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 중이던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와 롤러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로부터 641일, 만 2년도 되지 않은 9월 10일 오전에 태안화력본부 제1부두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마모된 스크류를 외부로 반출하려고 밧줄로 고정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65세 화물차 기사 이모 씨가 차량에서 떨어진 스크류에 깔려 숨졌습니다. 이 씨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시흥기공과 일일계약을 맺은 특수고용직이었습니다. 매년 한국의 노동자 2,400여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매일 7명이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한국의 산재 사망자 수는 OECD 국가 중 20년 넘게 1위입니다. 이중 비정규직, 계약직. 특수고용직 등 하청노동자의 사망률이 압도적입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에서는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 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와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경영계와 야당이 과잉 처벌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국민과 국가의 풍요를 위해 산업현장에서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 우리의 이웃이 하루에 일곱 명씩 목숨을 잃는 끔찍한 현실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기업의 이윤보다는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 문화가 정착되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무책임한 기업주들이 쫓겨나기를 기도합니다.

서른 명 정도의 승객이 탈 수 있는 작은 프로펠라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을 떠나 씨엥쿠왕으로 왔다. 씨엥쿠앙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같은 지역인데 고도가 1000미터 이상되는 고지대이기 때문인지 풍광이 남달랐고, 기온이 상당히 낮았다. 공항은 시엥쿠앙의 주도인 폰사반에 위치해 있었는데 주도라고는 하지만 건물도 별로 없고, 초록빛나무가 없어서 푸릇하기 보다는 약간 황량한 풍경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괜시리 움츠러든 마음을 달랬던 것이 폰사반을 만난 우리 부부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조나단 선생님께서 우리를 마중 나오셨다. 평신도 선교사인 조나단 선생님은 라오스에 오신지 10년 정도 되셨는데 비엔티안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년전 쯤 이 곳 시엥쿠앙에 오셨다고 한다. 조나단 선생님께서는 여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는데 특히 라오스의 농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계셨다. 폰사반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로 향한 행선지가 조나단 선생님이 최근 조성하신 밭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의 일상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작은 농장에서 2시간 남짓 간단한 농활을 하면서 척박하고, 지난하면서도, 가능성있는 라오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농장의 한 가운데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 있었는데 바닥재 하나 없는 이 투박한 나무집이 보통 라오스 서민들의 주거형태라고 하신다.
조나단 선생님은 밭을 일구는 사이사이에 시엥쿠앙의 농업환경에 대한 이야기 해주셨는데, 일단 이 곳은 기온이 낮아서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 참나무 등이 많고 농산물도 한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재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워낙 농경기술이 부족한 라오스에서 한국의 작물들을 재배해서 수출 할 수 있다는 점은 이 곳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미소를 한 가득 머금으셨다.
멀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즐거워하시는 조나단 선생님의 얼굴에서 라오스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뜬구름잡는 가치와 이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지난한 현실의 밭을 일구는 것이니까. 어떤 밭을 일구어야 할까. 또 그 밭에 무엇을 심어야 할까. 앞으로 최소 10년동안 우리는 이 현실의 밭 속에서 고민하며 땀흘려야 한다.

폰사반은 천국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농활을 마치고 폰사반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우리는 두 눈 가득 펼쳐진 폰사반의 풍광을 만날 수 있었다. 분지 형태의 폰사반은 마치 주변의 광활한 산들이 소박한 도시를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을 선사하고 있었다. 마침 검붉은 일몰과 겹쳐져 과연 천국의 언덕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보니 시엥쿠앙의 또 다른 표정을 마주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표정을 바라보며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 땅의 또 다른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우리가 이 곳 씨엥쿠앙에 온 이유는 사실 그 숨겨진 이야기 때문이다. 라오스 씨엥쿠왕 지역은 세계적인 UXO(불발탄) 오염지역으로 유명하다. 50년전 인도차이나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라오스의 전국토는 전쟁과 폭격으로 유린되었다. 특히 씨엥쿠앙은 라오스 공산주의자들의 본부가 있었던 곳으로 빨치산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 되었던 우리나라의 지리산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미군은 라오스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일념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이 지역에 폭탄을 쏟아부었고, 그 포탄의 잔해들이 지금까지 남아서 수많은 피해를 양산하고 있었다. 유엔이 지정한 세계 최대의 불발탄 오염지역 이 곳 씨엥쿠앙의 사람들은 반세기 가까운 지난 세월을 폭탄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불발탄을 제거해왔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불발탄을 제거한다면 앞으로도 200년이 족히 걸린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불발탄이 있단 말인가.
UXO문제 때문인지 세계 여러국가의 NGO가 활동하는 탓에 폰사반은 수도 비엔티안보다 외국인의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물론 도시 자체가 워낙 작아서 외국 사람이 눈에 더 잘 띄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되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역만리 폐쇄된 오지에서 만난 같은 외지인의 입장이어서 일까. 아마도 생소한 서양인들이 반가웠던 것은 이들과 우리가 이 곳에 발딛고 있는 이유가 같을 것이라는 막연한 동질감 때문이었으리라. 어떻게 보면 평화를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바다까지 건넌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곳에서 평화를 일구어 간다는 사실이 가슴을 뻐근하게 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씨엥쿠앙 폰사반에서의 첫날밤. 밤 하늘은 쏟아질 듯 반짝거리는 별들을 품고 있었다. 황량했던 풍광에 두려움을 품었던 우리의 첫인상을 수정해주기라도 하듯 폰사반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얼굴로 첫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2019년 12월 21~23일 라오스 씨엥쿠앙-
21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가 내 마땅히 법을 설한 바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그런 생각을 하지 말 것이니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가 법을 설한 바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부처를 헐뜯는 것이려니와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수보리여, 법을 설한다는 것은 어느 법도 설할 수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법을 설한다고 한 것이다.
須菩提여, 汝勿謂如來가 作是念하되 我當有所說法이라 하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若人이 言如來有所說法이면 卽爲謗佛이려니와 不能解我所說故니라. 須菩提여, 說法者는 無法可說을 是名說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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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은 흐르는가? 흐른다. 정말 흐르는가? 아니다. 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냥 물로 존재할 뿐이다. 물은 과연 존재하는가?
여래는 설법을 했는가? 했다. 정말 했는가? 아니다. 여래 스스로 법을 설한 바 없다고 했다. 그러면 여래는 과연 설법을 하지 않았는가?
지상에서 인간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가 있을 뿐이다. ‘…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아니다.’
“마음이 이미 깨끗하고 맑으니 말과 침묵이 다 같은 것이다. 인연을 만나면 곧 베풀고 인연이 흩어지면 곧 고요해질 뿐.”(李文會)
거울에 얼굴을 비쳐본다. 거울이 내 얼굴을 비친 것인가? 아니면 내 얼굴이 거울에 비쳐진 것인가? 어느 쪽을 말해도 되지만 어느 쪽만 말해서는 안 된다. 단정 자체가 본디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강경] 전체가 끊임없는 우상 부수기다. 생각도 굳어지면 얼마든지 우상이다.

어떤 아줌마가 택시를 탔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택시 운전사에게 택시를 타면서 어디로 가자고 말을 하긴 했는데 언니 집인 수유리로 가자고 했는지 동생 집인 망우리로 가자고 했는지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앞에 앉아서 운전하는 아저씨를 건드리면서 물었다.
“아저씨! 내가 수유리로 가자고 했습니까? 망우리로 가자고 했습니까?”
그 때 운전수가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손님, 언제 타고 계셨어요?”
날마다 기레기들이 쏟아내는 뉴스의 홍수에 밀려 우리는 건망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작년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사태는 그 진실이 무엇이지를 살펴보기도 전에 다시 추미애로 옮겨 붙고 있습니다. 나경원의 아들 특혜나 윤석열의 처가의 비리는 사람들이 잊어버린 듯합니다.
재벌과 적폐 세력에 복무하는 기레기들은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고 뉴스를 선별하여 쏟아붓고 있습니다. 침소봉대 하며 찌라시를 특별한 정보인냥 포장하여 제목뽑기를 합니다. 전체기독교인의 3%도 안되는 집단을 마치 기독교인 전체인냥 오도하며 전광훈을 어느새 기독교 목사의 대표 자리에 앉혀두었습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어디로 가는지 길을 잃어버립니다. 왜 검찰개혁, 언론개혁 하자는 사람들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일까요? 기레기들의 의도는 명약관화합니다. 국민의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이 정부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정부가 잘되야 대한민국이 잘 되는 것인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일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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