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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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에 있다" 하였습니다.

법은 사회의 보편적인 정의의 기준을 제시하는 기능을 하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법은 어쩔 수 없이 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보듯이 법을 좀 아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법망을 피해 나갑니다. 그래서 그런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복잡해지고 그러다 보니 법이 앞뒤가 안 맞고 뒤엉키기도 합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계속 율법을 추가해 결국 600여 개의 조항을 만들었습니다만 달라진 시대에 맞춰 달라지는 법을 새로 만들고 또 그 법만 좇는다면 준법 시민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령의 은혜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공포를 조성해 통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구원의 기쁨에 이르게는 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오늘날 교리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교리는 구원의 기쁨에 이르게 하는 수단입니다.

† 과거 유대인들의 율법주의가 오늘날에는 교리주의가 된 것 같습니다. 암송하고 문답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될 수는 없고 더군다나 달라진 사회의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교리를 뛰어넘는 성령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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