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창세기 2,18-23
18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19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20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21 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23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제목 ;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권리
들어가며 :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며 우리의 삶의 방향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사랑하는 자녀들 위에 충만하게 임하셔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기쁨과 감사의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을 열고 세상의 염려와 걱정, 재물에 대한 탐욕이 이 시간 우리를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여 듣고 우리 삶이 변화하는 체험으로 주님 앞에 서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들어가서 ;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인간 창조를 보면 인간만 덩그러니 만들어놓으신 것이 아닙다. 삶에 필요한 것들을 동시에 만드셨습니다. 동산을 만드시고 양식으로 삼을 과일, 그리고 해야 할 일과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모든 것의 완결 혹은 총체로써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인간 자체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 의식주, 일꺼리, 공동체와 관계 등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에라야 비로소 인간창조의 완성 혹은 완료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허락하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천부인권, 인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권이 정치적으로 짓밟히지 않을 권리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권리는 그렇게 단순하고 일면적이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돈권은 있지만 인권은 없다고도 합니다. 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돈 없는 이는 사람대우도 못 받습니다. 의식주의 권리는 인간에게 있어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러나 먹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발장은 빵 한 덩이를 훔친 죄로 빵에서 십구 년을 썩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인권보다 더 위에 있는 돈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신명기 23:24-25는 ‘당신들이 이웃 사람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먹을 만큼 실컷 따먹는 것은 괜찮지만, 그릇에 담아가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 이웃 사람의 곡식밭에 들어가 이삭을 손으로 잘라서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면 안 됩니다.’고 가르칩니다.
낫을 대서 가져가거나 그릇, 자루를 가져가서 담아오면 안되지만 배고픈 사람이 먹는 것은 죄로 보지 않습니다. 밭의 소출은 밭주인의 것이지만 그럼에도 배고픈 사람이 아무 밭에라도 들어가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권리까지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혁명적입니다. 이 세상 곡식의 가장 우선적인 주인은 배고픈 사람이라는 엄청난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의 권리, 생존을 위해, 사람다운 물질적 필요를 누릴 권리를 인정하시고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시절 학교에서 도덕이나 윤리 시간에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인간이 존엄하고 내 자신이 그처럼 귀하게 대접 받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입니다. 말로는 존엄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를 대하는 세상이나 세상 사람들의 태도는 도무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땅히 누려야할 물질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해도 물질적인 것을 전혀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먹고 입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은 소유 보다는 필요를 더욱 중요한 것임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의식주를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거나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일생을 악착같이 일해도 자기 집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주거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악착같이 아껴서 매년 오르는 전세보증금을 마련해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 돈권이 있는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부동산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웃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도 않는 세상의 모습, 노아의 홍수 때에 모두 물에 쳐박어 넣고 싶어하셨을 바로 그 모습과 진배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인간의 권리라는 것이 모두 허황된 옛날 이야기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없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슬프게도!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호주머니를 검사하고는 우리에게 권리를 줄까 말까 판단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우리의 권리를 심사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권리는 단순한 인권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 3,17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춘향전을 볼 때마가 가슴 졸이면서 기다리는 장면이 무엇입니까? 거렁뱅이 꼴을 하고 나타난 이몽룡이 언제 손에 마패를 꺼내들고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것이 춘향전의 클라이맥스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거지꼴일지 모르지만 그는 암행어사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 썩 내새울 만한 것 없는 평범한 보통 소시민일지 모르지만 우리도 때가 되면 하나님이 “얘가 내 사랑하는 아들, 딸이야”하시면서 우리 정체를 밝히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소중함과 존귀함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권리를 지닌 존재인지를 확신함으로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권리를 무시하려고 하는 세력들에 대해 단호하게 믿음으로 대처하고 요구하는 영적 투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려고 하는 인간적 탐욕에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신 인간으로써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신앙적인 운동인 것입니다.
인권보다 돈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무리들은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소유한 물질로 판단하려고 하며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하려고 하지만 주눅 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을 때 당당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기죽고 주눅든다면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박탈하고자 하는 이들이 더욱 큰 위력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무시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은평뉴타운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36년 동안 그린벨트라는 이유로 비가 새도 제대로 증개축을 하지 못하면서 지켜온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뉴타운 건설한다고 지난 수십 년간 살았던 곳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보상을 잘 쳐주는 것 같더니만 그래도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와 살 수 있는 사람은 20%밖에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수십 년간 살던 터전에서 쫓겨난 것이고 결국 변두리에나 가야 예전 같이 살만한 공간을 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단순하게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인권을 무시하고 돈권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는 처사요 도전인 것입니다. 어찌 우리가 그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나가며 :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의 권리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돈과 금력과 결탁한 권력, 정치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고 권리를 부여받았지만 그것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의 신분은 드러나고 우리의 존귀함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머리 숙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권리에 대해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권을 압살하고 무시하는 모든 처사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며 인간으로써의 권리를 무시당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 참다운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음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알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께 받은 인간의 권리를 소중하게 지키고 또한 소중하게 인간을 대하는 심성을 갖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