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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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2,22-25

22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23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25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들어가며 :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민족의 큰 명절을 맞아 하나님을 모시고 기쁨으로 둘러앉은 성도들과 그 가정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나이 사십인데 연세 드신 분들이 들으시면 웃을만한 우스갯소리 좀 하겠습니다. 이제 사는 것이 조금 정리되고 연륜도 사십이나 되니까 조금씩 내 삶이 보입니다. 얼마나 바람이 들었는지, 얼마나 힘겨웠는지, 얼마나 돌아왔는지... 그리고 보니 가족이 보입니다. 가족, 언제라도 등 돌리면 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정작 등 돌리지 못하고 지겨워하면서도 사는 것이 가족이려니, 그러니 결국 남는 것은 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삼스레 가족의 소중함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의 가족은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맺어진 신앙의 가족도 포함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기독교인으로써, 친 혈육보다도 이웃을 사랑하고 이 땅의 여린 자들로 가족을 삼으신 예수님을 닮아 모든 인류를 가족으로 삼을 수 있는 넓은 마음까지 가지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 복된 날에 모든 인류, 한 해의 수확으로 기뻐하며 감사하고 한 가족이 둘러앉은 이 땅의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위로와 사랑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추석이면 제사를 지내고 오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 중요한 것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나 조상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자신의 존재가 갖는 의미를 깨닫는가 하는 것입니다.

 

들어가서 ;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야 하는 과일이 세 가지 있답니다. 다시 한 번 전해드리면 밤, 감, 대추입니다. 밤은 아무리 나무가 커져도 그 뿌리에 씨앗이 되었던 밤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뿌리가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제사를 지내는 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뿌리를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것입니다.

감은 묘목을 심어서 키우는 법보다는 접붙이기를 해서 감나무를 키웁니다. 접붙이기는 인간관계, 교우관계입니다. 성장에 부실한 감나무 가지가 견실하게 성장하는 나무에 접을 붙여서 감나무가 되어 가을이면 새빨간 홍시를 주렁주렁 열어 매달리게 합니다. 이처럼 인생에 있어 좋은 인간관계, 교우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후손들에게 알게 하려 함입니다.

대추나무는 다산, 풍요를 상징합니다. 대추나무에 대추가 말 그대로 주렁주렁 달리듯이 후손들도 그처럼 자녀들을 잘 보고 자녀들로 인한 기쁨을 잘 누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 혹은 한 자녀만 낳아 키움으로서 생기는 문제 등을 잘 짚어볼만한 가르침입니다.

아들 학교에서 제사상 어떻게 차리는 건지 알아오라고 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더니만 제상을 차리는 것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정말 이처럼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걸 정말로 조상귀신이 와서 먹을까 하고 물으면 난 당연히 아니라고 해야겠지요. 그 제상은 결국 절 한 번씩 하고 난 후에 후손이 친교의 마당을 벌이라는 준비물인 것 같습니다. 살림살이가 쉽지 않은 집안이라도 제사상은 제대로 차립니다. 죽은 조상 핑계로 그렇게나마 맛있고 기름진 음식 먹을 기회가 없다면 그 몸이 어떻게 견뎌내겠습니까! 핑계 김에 영양보충도 하니 당연히 조상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후손이 잘 되어서 우글우글 모여 조상에게 감사하고, 우리 식으로 하면 조상을 통해 이 땅에 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상다리 휘어지게 차린 음식을 웃으며 떠들며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하나님 신앙을 가진 이들의 명절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제사 문제로 갈등 겪는 분들도 많이 있던데 그러지 말고 기쁨으로 참여하고 가족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좀 힘들어도 웃으면서 제사상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음식 준비하는 여자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그것마저도 기쁨으로 오히려 콧노래를 부르면서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 안에 참된 하나님 신앙의 정신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들어 놓고 보니 눈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으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남자에게 돕는 배필, 돕는 사람,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필을 만들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남자와 여자의 창조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순간 또한 가정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아니, 아직 이때는 남자 여자의 구분이 없었으니까 사람이 또다른 한 사람을 보는 순간에 ‘이 사람, 뼈도 내 뼈, 살도 내 살!’하고 불렀으니 그것은 소유권이나 주권, 헤게모니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은 사랑의 고백을 전제합니다. 옆의 가족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또, 진정한 가족, 아름다운 가족은 자기 자신을 꾸며대지 않아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또한 상대방을 받아주는, 무엇이든지 받아줄 수 있는 관계를 전제합니다. 첫 남자와 여자는 둘 다 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완벽한 조화와 완벽한 개방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합니다.

우리는 요즘 얼마나 많은 담을 쌓으며 살아갑니까? 나는 남자, 너는 여자! 남자 대 여자, 전라도 대 경상도, 노동자 대 자본가, 남한 대 북한, 진보 대 보수 등등. 또 얼마나 많은 치장을 하고 얼마나 많은 구별과 차별의 옷을 입고 우리 자신과 가족, 이웃을 속이고 있습니까? 학벌이 어떻고, 자동차는 뭘 타고, 집이 몇 평이고, 직원이 몇 명이고 등등. 우리는 더 많은 옷을 껴입은 채로 더 높은 담을 쌓은 집에 들어가서 살면서 행복하다고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같은 집 안에서도 강 방 간의 벽을 높이 쌓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기관리, 인관관계 관리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뿌듯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까지도 헷갈려할 때가 있습니다. 적당히 자기를 가리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다 보니 종종 ‘오늘 내가 그 사람에게 너무 많은 말, 안 해도 될 말을 했구나’ 하고 후회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나 주의 도움 받고자’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는 주님, 이 부분은 부를 때마다 뭉클합니다. 내가 목사라고 해서 그렇지 참 허물 많고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몇 번을 목회를 하는 것이 부끄럽고 죄스럽다고 생각해서 소위 말해 때려치울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내 아내 정도만이 아는 부분이고 때로는 아내에게조차 말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님과 이처럼 완전히 개방적이고 완전히 열린 관계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런 관계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 삶은 매우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전적으로 받아주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힘을 얻고 큰 위로자를 얻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관계가 이와 같은 전적으로서 서로에게 열린 관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관계의 중심이며 핵심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비밀이 있고 부자, 모자, 모녀 사이에도 비밀이 있다. ‘내 모습 이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영화에서도 많이 보지만 누군가 먼저 자기 마음을 열고 가족 앞에 섰을 때 그동안의 상처가 미움이 봄눈 녹듯이 녹아내리더라는 것입니다. 이 때 진정으로 아름다운 가족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전적으로 열린 관계는 가족과의 관계로 발전됩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의 관계로도 발전됩니다. 여기에 바로 낙원인 에덴동산의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학력, 재산, 사상, 고향, 등등의 많은 차이가 있지만 배타성을 거부하고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가족과 공동체,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다름없게 됩니다. 여기에 ‘빛 가운데의 사귐’이 있습니다.

 

나가며 : 요일 1,7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고 전합니다. 각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것으로 인해 부끄러움이 되거나 누구를 정죄하지 않는 가족과 공동체, 숨길 필요도 없고 숨기지도 않는 ‘빛 가운데의 사귐’이 이루어지는 가족과 공동체가 바로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가족이요 공동체입니다. 이제 귀하고 복된 민족의 명절에 우리를 아름다운 가족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사랑과 포용, 이해로 완벽해지는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만드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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