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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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사사기 9,12-15
12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3 그러나 포도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14 그래서 모든 나무들은 가시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5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

 제목 ; 지도자의 권세

들어가며 : 이 땅에 한국감리교회를 세우고 교회와 사회에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가 오늘 함께 예배하는 가운데 온전한 교회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모든 감리교회 성도들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한국감리교회의 역사는 1885년에 아펜젤로 선교사 내외가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미국감리교회 선교부로 시작된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는 이어 시병원과 보구여관 등의 의료시설과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의 교육시설을 통해 이 사회에 매우 중요한 근대화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후 1887년 정동제일교회의 모체인 벧엘 예배당이 설립되면서 비로소 한국감리교회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감리교회는 교회와 사회를 통해 큰 기여를 하였고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든 감리교인들의 자부심에 먹칠을 하는 부끄러운 일이 지난 10월 30일에 일어났습니다. 

들어가서 ; 감독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교회법으로나 사회법으로 처벌 받지 아니하고 25년 동안 무흠’한 이가 후보자의 자격이 있다는 조항이 감리교회 헌법인 ‘교리와 장정’에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마누엘 김국도 목사가 선거관리위원회와 총회실행위원회를 장악하고 불법적으로 선거에 출마하여 다득표를 얻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감독회장 당선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김국도 목사의 자격을 박탈한 것은 사회법정에서 감리교회법을 심의하여 내린 가처분 판결에 의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법에서는 아무 문제 없었고 사회법에서만 피선거권 박탈의 판결을 내렸다며 교회는 사회법이 아닌 교회법을 따라야 한다며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30일에 안산1대학에서 열린 제28회 행정총회에서 법의 판결에 따라 김국도 목사의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은 신경하 감독회장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법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이들을 폭력과 욕설로 협박하고 김국도 목사 지지자들을 세워 개회선언을 하는 등 회의를 진행하고 자신을 감독회장으로 선포하게 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소식은 이미 교계언론은 물론 사회언론에까지 보도돼 전국적으로 큰 망신과 부끄러움을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리교회 목사로써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매우 죄송스러우며 같은 목사로써 성직자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목사는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아는 이들도 있던데 그렇지 않고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유혹에 노출돼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명예와 관련된 탐욕에는 매우 취약합니다. 목사가 부를 쌓기는 좀 그래도 명예는 권력을 가져다주는 인정할만한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열심히 살려고는 하지만 종종 명예에 대한 탐욕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회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교회의 목사로써 갖는 흠결과 한 교단, 그것도 1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단의 수장이 갖는 흠결이 동일하게 인식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개인적 탐욕으로 한 교단의 현재와 미래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모든 구성원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죄악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실을 보면서 분노해야 하며 우리 안에 있는 반그리스도적, 반신앙적 도전들에 단호하게 맞서며 하나님의 정의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왕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라는 사람이 왕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돈으로 건달패를 사서 졸개로 삼고는 자기 형제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도자의 권위를 폭력으로부터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보자 요담은 우화로 아비멜렉을 비판하였습니다. 나무들이 왕을 세우고자 올리브나무와 무화과나무, 초도나무를 찾아가 요청하였으나 그들은 귀하고 좋은 열매를 내는 자리가 중요하다며 고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다못해 가시나무에게로 가서 요청을 하자 가시나무는 ‘내 그늘로 와서 피하라. 그렇지 않으면 레바논 백향목을 불살라 태워버리겠다’고 폭력적인 위협을 하였답니다.

수천 년 전에 떠돌던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지도자의 권위는 열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폭력과 술수, 모함과 협잡을 통해서라도 자리만 차지하면 권위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큰 착각을 합니다. 가시나무가 무슨 그늘이 있습니까(사기)? 가시나무에서 무슨 불이 나옵니까(협박)?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시로 찌르기나 해서(폭력) 가까이 갈 수도 없는 가시나무가 귀하디귀한 레바논 백향목을 태워버리겠다고 공갈을 하고 협박을 하고 또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그 결말은 어떨른지 조금만 상상을 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다고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 열매이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나쁜 나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사랑과 자비의 생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베어서 불쏘시개로나 쓰이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 역시 그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폭력을 쓰시거나 협박을 하고 사기를 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마땅히 예수님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권위인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맺으신 열매를 따라 맺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리 무리가 많고 아무리 규모가 크고 아무리 화려하고 그럴듯해보여도 예수님의 제자일 수 없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이 거부하셨던 길, 폭력으로 로마와 유대교 종교주의에 반대하고자 했던 많은 혁명가들의 길처럼 폭력에 의지하는 모습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무리를 모아 폭력투쟁의 길을 선택했던 유대교 민족주의자들은 주후 70년경에 마사다라는 곳에서 완전히 궤멸되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는 열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가며 :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지도자의 권위는 결코 폭력과 사기, 협박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섬김과 나눔, 정의와 진리에서 나옵니다. 그럼에도 손쉬운 길이고 상대자를 굴복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폭력과 사기에 의지하여 그 권위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권위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어떻게 지도자로써의 자리매김을 하며,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권사가 되는 것이 섬김을 받고 큰소리 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베풀기 위함입니다. 교회에서는 가장 많이 섬기는 이는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너무나도 명백한 이 가르침을 우리 마음에 새기며 폭력이 아닌 섬김으로 예수님의 권위, 지도자의 권위를 갖고 또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며 오늘날 우리가 처한 이 깊은 슬픔의 현장이 속회 은혜롭게 치유되기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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