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창세기 13,14-18
14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15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16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18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제목 ; 감사하는 삶
들어가며 :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삶에 기쁨과 복으로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와 머리를 숙인 성도들에게 더 귀한 사랑과 자비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주일의 의미가 아무래도 우리와 많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미국인도, 청교도도 아니고 농부들도 아니며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는 감사하고 기뻐하고 잔치를 벌일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할 것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감사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와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알아보고 진심으로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기쁜 일이 없거나 심지어는 슬픈 일이 있을 때에조차 감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이시고 또한 어머니시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세상에 어느 어머니 아버지가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기 자식을 돌보지 않고 외면하시겠습니까? 지금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는데 즉각적으로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은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일 것입니다. 부모는 반드시 나를 사랑하고 연약한 나를 구해주시고 힘을 줄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을 때에 그 인생은 낙관적이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11,22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이루어질 줄로 믿고 확신하는 사람은 받은 줄로 생각할 것이고 그러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곧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임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기보다는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것도 미리! 그러므로 감사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감사할 줄 알겠습니까? 지금 닥친 이 어려움과 고난이 언제 끝날 지도 모릅니다. 누가 와서 도와줄지 아닐지도 모릅니다. 확신하는 것은 물론 아는 것도 없습니다. 믿는 구석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 부모조차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어찌 감사가 그 입에서 나오겠습니까? 그저 한숨만 쉬고 신세타령만 하고 대상 없는 적개심만 가지게 될 뿐입니다. 돌아보십시오. 만사에 불평불만을 말하고 짜증을 내는 사람, 감사한 일을 만나도 감사할 줄 모르고 비꼬기나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은 말하는 대로 됩니다. 감사하다고 말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만사가 감사한 조건이니 하는 말마다 감사의 말이고 칭찬의 말이고 긍정의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이, 재수없게 입만 벌리면 감사타령이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면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싶고 작은 것 하나라도 베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도통 감사할 줄 모르는 이는 옆에만 있어도 도무지 불안하고 기분이 상합니다. 매사에 삐죽이고 불평불만이니 만약 그에게 커피라도 한 잔 뽑아주려고 해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무슨 흑심이 있는 거냐, 뭘 바라는 거냐’하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호의를 베풀기도 어렵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들어오던 복도 나갑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할 상황이 반복되고 악순환 됩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가 신앙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은 물론이고 신약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의 의로운 믿음은 바로 감사의 능력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어찌 보면 참 멍청하고 순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바닷가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자손, 하늘의 별보다도 더 많은 자손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식기능은 이미 멎었고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무지 마른 장작과 같은 자기 몸에서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였고 하나님이 큰 백성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을 때 믿음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에 가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 아직 이뤄지지도 않았고 솔직히 이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 약속에 감사하여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즉 감사의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감사한 일을 당하고 마음껏 감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큰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면서 제 몸뚱아리 하나만을 위해 삽니다. 그렇다면 아직 복을 받았다는 증거도 확신도 없을 때 감사하는 것이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직 눈에 보이지 않고 기미도 없을 때 이미 믿음으로 감사할 줄 아는 이는 하나님이 결단코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고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시되 크고 넘치게 이뤄주십니다.
믿음은 보이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믿음은 약속만으로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어머니 되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여 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물론 그것이 언제일런지는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 만으로도 믿고 감사할 줄 아는 이에게는 아브라함이 받은 것과 같은 복을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너무 상황이 안 좋다고 합니다. 내가 봐도 정말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주가폭락에 환율상승, 외환보유고 감소에 실물경기 붕괴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소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믿는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을 발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의 시력이 제일 좋은 경우 2.0인데 만일 5.0이라면 더 좋을 것 같습니까? 언젠가 TV를 통해 이런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집은 깨끗하고 실내도 청소가 잘 되었으므로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수 카메라를 갖다 대니 얼마나 많은 세균들과 벌레들이 집 안 구석구석에 우글거리는지 모릅니다. 카페트 위를 들여다 보자 사람의 몸에서 떨어진 피부 부스러기들을 먹느라고 얼마나 많은 세균과 벌레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여기 저기 알을 까놓기까지 했습니다. 소파와 침대 밑, 덮고 자는 이불 속은 세균들의 가장 좋은 번식처였습니다. 우리의 눈이 지금의 상태보다 더 밝아, 이런 미세한 것도 보면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눈을 조절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귀가 지금보다 두 배만 소리를 더 잘 듣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아마 사람들은 모두 신경쇠약증 환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시속 1,670Km로 날아가고 있답니다. 아이들이 세 발 자전거만 타도 삐걱 소리가 나는데 어찌 이 큰 지구 땅 덩어리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 소리가 나질 않겠습니까? 물론 어마 어마한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 커서 사람이 들을 수 없답니다. 사람의 귀는 초당 20회에서 2만회로 진동하는 음파만 듣는 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큰소리나 너무 작은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범위 밖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너무 귀가 밝아 아주 작은 개미들이 기어다니는 소리까지 듣고 산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만 듣게 된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박쥐는 5만 회로까지 듣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사람은 듣지 못하고 개만 듣고 달려올 수 있는 신호용 호루라기가 있답니다. 개가 듣는 청력의 범위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청력의 범위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라 합니다.
사람의 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구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질이 존재하는데 모든 물질은 고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려낼 수 있는 냄새는 10만가지 정도 된답니다. 그러나 개의 후각은 인간의 1백만 배라고 하는데 만약 우리가 진돗개나 세파트 처럼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면 맡지 않아도 될 온갖 냄새로 악취와 역겨움에 정신을 못 차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도, 귀도, 코도 적당하게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만 듣고, 맡을 수 있는 것만 맡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 줄 모릅니다.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가며 :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기뻐해야 할지 감사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더 많고 큰 감사의 조건을 주실 것입니다. 믿으므로 감사하여 복의 근원이 되시고 감사의 본보기가 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