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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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고린도전서 12:12-14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14 몸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제목 ; 교회의 존재이유 1 

들어가며 : 하나님의 사랑이 온누리에 충만하고 아기 예수의 나심을 전심으로 기뻐하며 기다리는 이들에게 신의 자비가 충만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강절 둘째 주일을 맞아 아기 예수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과 구원의 갈망들이 더욱 깊어지기를 원합니다. 지난번 헙성대학교에서 열린 ‘오늘을 함께 하는 푸른 기도회’에 갔다가 말씀을 전하러 오신 장병용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장애인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목회를 하고 게셨습니다. 그가 장애인 목회에 투신하게 된 계기에는 한 장애인 예술가의 죽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 목회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때 예술적 재능이 많은 하반신 장애인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 장애인이 깊은 고뇌에 빠졌다가 결국 여주 남한강 다리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답니다. 장 목사님께 시신을 수습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말입니다. 이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후에 그 장애인에게 빚진 마음으로 장애인 목회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생명이라는 주제의 빛에서 전한 말씀이었는데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생명답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으로 그 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장 목사님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장애인 청년의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한 인간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목회에 뛰어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장 목사님과 그 가족의 생명을 건 열심과 헌신이 있기에 여러 장애인들이 예술적 재능을 활용하면서 생명다운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생명다운 생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으로 그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누리고 생명다운 생명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생명의 댓가가 반드시 지불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 예수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이 새삼스럽게 저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누리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며 심지어는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생명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속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명, 많은 이들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으니 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하며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다운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 생명과 생명력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생명을 누리게 하는 장이 바로 교회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생명을 댓가로 지불하고 누리게 된 우리의 생명의 집합체입니다. 즉 교회는 생명의 연합입니다.

그런데 생명은 홀로 있을 경우에는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만드신 것이 바로 생명의 속성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생명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할 때 우리는 참된 생명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신앙이라는 것이 홀로 깨달아 수행하면 되는 것이라면 교회라는 것이 굳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텔레비전이며 인터넷이며 원하는 정보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데 무엇 하러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설교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고 기독교 케이블 방송은 더 좋은 음질과 화질 각도로 설교자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기독교의 교리를 학습하고 교리를 배워 익히는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는 교회 안에서의 만남을 통해 생명을 생명 답게 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봐야 합니다. 교회는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남이 교회의 매우 중요한 존재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면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교회에 오면 방언도 하고 치유의 기적도 저절로 생기는 줄 압니다. 때로는 교회는 이상한 사람들의 집합체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생명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있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말입니다.

기독교교리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도무지 말이 안 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때로는 교리가 심한 거부감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교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교리를 배우고 지키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만남을 위해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우리교회에도 마지못해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물론 있습니다. 어느 교회나 다 마지 못해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에도 그저 둔감하게 앉았다가 갑니다. 전혀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생의 중요한 위기가 닥쳤을 때 극적인 경험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꼭 무슨 죽을 병에 걸리거나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경험한 사람들만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독교라는 틀 안에서 신앙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만남에서 교회와 신앙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전국 방방곡곡 그것도 모자라 다른 땅, 이방 땅이라고 하는 곳까지도 두루 돌아다니셨을까요? 전도를 위해서라고요? 예수님은 기독교가 뭔지도 모르셨고 기독교를 만들 생각도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풍성한 생명의 누림을 알려주고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남에 이미 신앙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바로 만남의 장인 것입니다.

마지못해 오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바에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시거나 취미생활 혹은 자기계발을 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물론 그래봤자 별거 아니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왕 오실꺼면 만남을 위해 오십시오. 아내와 남편을 만나고 목사라는 직함을 가진 종교인을 만나고 전혀 핏줄도 공동적인 관심사도 별로 없지만 참된 생명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오십시오. 만남을 통해서 생명을 생명답게 하십시오.

마지못해 끌려 나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는 아내 혹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나오십시오. 또 그런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만남으로 만드십시오. 별로 잘난 것은 없지만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고 상식적으로 만드는 일에 인생을 건 정신 나간 목사와 만나러 오십시오. 나와 전혀 다른 관심사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알고 타인을 위해 소원의 마음을 품고 기도할 줄 아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을 만나러 왔다고 생각하십시오. 그 만남에 분명히 하나님의 가르침과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만남이 없습니다. 일을 통한 만남, 사업적 비즈니스적 만남, 술자리에서의 만남, 한판 싸우기 위한 대결만남, 무엇인가를 매매하기 위한 만남… 그저그런 많은 만남들 속에서 잠시 서로의 생명을 엿보거나 스쳐가는 만남으로는 우리는 결코 참된 신앙인이 될 수도 없고 참된 생명의 기운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오늘 말씀처럼 서로가 서로를 한 몸에 붙은 지체와 같은 존재로써 받아들이는 그런 만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보면 당신 없이 내가 없고 내가 없이 당신이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베이징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미국에서는 태풍이 온다는 나비효과 이론이 있습니다. 자연세계도 이런데 하물며 인간사회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왕 나오신 것, 만남을 기쁘게 누리시고 만남을 통해 서로를 다시 새삼스레 보시고 만남을 더욱 깊게 하는 중에 서로가 서로의 지체됨을 확인하십시오. 어떤 이는 유대인이고 어떤 이는 그리스인, 어떤 이는 한국 사람, 어떤 이는 베트남 사람입니다. 어떤 이는 자유인, 종, 직장인, 종교인, 주부, 베이비시터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를 중요한 지체로 인식하고 더 나아가 모든 인류를 다 나의 지체로 인식하고 만날 때에 우리 삶은 비로소 교회다운 삶, 교회를 통해 주신 예수님의 생명이 충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나가며 : 지난번에 7080이라는 프로그램을 잠시 보니까 노사연씨의 만남이라는 노래가 애창곡 순위 상위권에 있더군요. 만남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만남이 없다면 변화가 없고 또한 신앙이 없습니다. 교회가 참다운 생명을 위한 만남의 장이 되지 못한다면 교회는 존재의미를 잃는 것입니다. 만남의 장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마음을 바꾸시고 헌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가야할 길이 멉니다. 바로 만남의 광장을 만들기 위한 길입니다. 내년에는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여러분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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