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참된 노동의 복을! / 이사야 65:20-22

by 좋은만남 posted Aug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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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 땅에 참된 노동의 복을!

성경 : 이사야 65,20-22

20 거기에는 몇 날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할 것이며, 백 살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받은 자로 여길 것이다. 21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22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

 

들어가며 :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워싱턴 시를 지나가다가 한 흑인 청소부 청년이 있는 대로 욕설을 퍼붓고 짜증을 부리면서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곁에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하나님이 자네에게 맡기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가 없소?” 그러면서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청소를 할 때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괴테가 작품을 쓰듯.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시오.”

그 일을 하는 동기가 선할 때. 그리고 올바른 목표 앞에 우리의 삶의 초점을 맞출 수가 있을 때. 우리가 하는 그 일은 갑자기 보람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오늘 아침도 일어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된 노동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이 땅의 노동형제들과 성도들에게 큰 자비와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8월은 통일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는 여기에 노동이라는 주제를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휴가를 보내고 삶의 여유를 누리는 계절에 오히려 무겁고 딱딱한 주제를 나누게 되어 죄송합니다. 노동이라는 주제가 우리와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동, 노동현장은 여러분들도 매일 아침마다 마주치게 되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영업을 하는 이나, 아이들 돌보는 일을 하는 이나, 병원 혹은 아파트, 학교에 있는 이나 모두가 노동을 통해 사회와 이웃에 봉사하고 이 땅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흙을 조물락거리면서 동물과 사람을 빚으시며 천지창조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일도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노동이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이라는 단어를 특히 부정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는 한 번도 복, 축복으로써의 노동의 모습과 의미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짜증스럽게 일하는 흑인 청소부 청년에게 한 말은 정말 주옥같고 아름다우며 교훈적인 이야기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과서에나 실릴법한 예화라는 것 이외에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까 되새겨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하나님이 맡기신 지구 한 모퉁이의 어떤 역할을 감당한다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는 아픈 마음으로 미안해하면서 지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량해고로 인한 점거파업과 국가공권력의 진압작전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진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지속되면서 가슴을 졸였습니다. 결국 도장 공장 옥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진압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볼 때는 심장이 벌렁벌렁거렸습니다. 세 명이 옥상에서 추락했다는 자막이 나올 때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노동자들이 맥없이 노사합의를 이뤄냈다는 뉴스를 접할 때는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았습니다. 주동자를 색출하여 엄벌하겠다는 소식에는 제 눈앞도 막막하더군요.


저는 더 이상 이런 뉴스가 어떤 특별한 노동자, 소위 전투적인 강성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도 ‘재수 없으면’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재작년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사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기나긴 날을 모범적 투쟁으로 버텨냈던 것은 강성노조, 빨갱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창고형 매장에 가면 만나는 그 캐시어 아줌마들, 동네에서 매일 만나는 평범한 아줌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투쟁만 보도돼서 그렇지 중소기업에도 그런 경우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이 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고 또 실제로 닥치고 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즉 이 자리에 있는 우리도 어느 날 갑자기 투사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가 막힌 일이지요.


문제는 노동자들이 투쟁적이고 노조가 강성이라는데 있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참된 노동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복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알지도 못하다보니 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참된 노동의 복이 충만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 중 일부입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특히 21절의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을 것이라는 구절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런 당연한 것이 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려야만 경험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좀 크고 세상을 보면 볼수록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뼈저리게 와 닿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새 하늘 새 땅,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2절처럼 내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살고, 내가 지은 농사를 나는 먹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먹게 되는 일이 일상적인 세상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노동이 나와 나의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와 괴리되고 분리되었으니 그것이 어찌 복이라고 느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조련사가 가져간다고, 열심히 일한 대가를 노동자가 챙기지 못하고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한 일터에서 노동자는 언제라도 배제되고 방출될 수 있는 존재로 내몰리고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커녕 하나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요즘 같이 고용안정이 어려운 시대에 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실업률도 높은데 직장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 것도 어디입니까? 비록 성격 더럽고 못된 상사가 있을지언정, 정말 쥐꼬리 같은 보수밖에 못 받는 직장일지언정, 출퇴근에 두세 시간씩 걸릴지언정, 하는 일이 너무 힘들고 야근이 잦을지언정, 지언정, 지언정 그래도 일할 수 있는 것이 어디냐는 감사는 물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개인적인 감사가 하나님께서 노동이라는 주제로 우리에게 받으시고자 하는 전부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팽배한 노동의 구조가 악의적이고 반신앙적인데 그것은 외면한 채로 개인적인 감사로만 드리는 제사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청춘을 바친 직장이 나를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무작정 해고하는 광경을 그리스도인이 목격하였다면 어떻게 반응하고 이해해야 하겠는가 말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배운 바에 의하면 직업을 통한 노동은 인격을 도야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노동은 단순하게 돈을 벌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력을 어떻게 배치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목적이고 동기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비전을 제시합니다. 건강하게 일자리를 얻고 그 일자리에서 노력한 결실을 누리면서 사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노동의 복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새 하늘 새 땅의 비전을 통해 제시하셨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여건으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지만 또한 이 땅에 참된 노동의 복이 임하고 그 노동의 복을 모든 노동자,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져야할 짐이면서 또한 은혜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나가며 : 하나님 나라가 죽은 다음에 가서 살게 될 어떤 세상이라면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이 땅, 광야 40년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우치고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가나안은 축복의 땅이 아니라 저주의 땅이 된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노동은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기업주가, 사장이, 혹은 정부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자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땅의 노동현실이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참된 노동의 복이 충만하도록 우리가 기도하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 나라, 새 하늘 새 땅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헌신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