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의 이름을 회복하는 교회
성서본문 ; 사도행전 11:23-26
23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25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들어가며 : 스테이텀 아일랜드라는 동네에 “미스 에바”라는 여인이 90세의 나이로 굶어 죽었습니다. 이 여인은 약 50만 달러의 재산을 남겼는데, 그중 27만 5천 달러는 그녀의 침실에서 발견되었고, 20만 달러 이상은 은행에 예치되어 있었으며, 수백 주의 증권도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상점과 6개의 방이 딸린 “미스 에마”의 아파트는 먼지투성이인데다 창문에는 커튼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15센트 짜리 핫도그로 식사를 대신했고, 핫도그를 먹고 남은 나무젓가락과 폐지를 모아서 난로에 불을 지피며 살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많은 돈이 있었음에도 굶어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미스 에마는 불쌍한 여자일까요, 아닐까요? 요즈음은 가난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보다 가난한 것처럼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여자도 부자였지만 가난스럽게 살았던 것입니다. 부자와 빈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코 소유한 물질이나 환경이 아니라 마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는 부자교회일까요, 가난한 교회일까요? 물질과 상급을 은행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하늘에 쌓음으로 부자교회, 부자들이 모인 교회인줄로 믿습니다. 창립 24주년을 맞은 우리 좋은만남교회에 크신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게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우리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지 어느덧 24년을 지냈습니다. 매년 창립주일을 지내면서 느끼는 것이 20, 21, 22 등등의 숫자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올해로 24년이지만 24년 중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래야 고작 길어야 10년, 11, 12년일 것입니다. 앞으로 이 교회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길어야 40년 혹은 50년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 숫자와 교회의 역사라는 것에 집착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숫자가 우리에게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지내온 시간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는 근거의 전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뿌리 없이 자라날 수 없고 시작 없이 오늘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 교회를 세워주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좋은만남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우리가 이 교회를 통해 만나서 함께 인생의 중요한 한 때를 보내며 참된 신앙의 목적을 추구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의 만남 안에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창립기념주일이 우리와 교회와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개신교회가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일까요? 불교와 가톨릭은 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개신교는 성장이 꺾이고 감소하는 추세로 진입하였습니다. 2008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860만 교세라고 합니다. 개신교자체에서 조사한 바로는 2002년에 1800만이었던 것이 2008년 들어 1200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어쨌건 감소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가톨릭은 지난 10년간 거의 두 배 가까이 성장하여 지금은 520만을 헤아립니다.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여의도광장에서 수백만을 모아놓고 집회를 하며 급속도로 교세를 확장하던 개신교회가 불과 20여년 만에 성장을 멈춘 것입니다. 아니 퇴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불행하게도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엄청난 사람들이 안티기독교사이트를 만들어서 기독교, 엄밀하게 말하면 개신교회를 씹어대고 있습니다. 기독교관련 기사가 나오면 달리는 댓글은 ‘기독교’라고 부르지도 않고 ‘개독교’라며 비아냥 거립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이 100% 정확한 것도 아니고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개신교인인 우리들도 많이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제 더 이상 교회라는 이름을 갖지 못하고 ‘개독교’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그런 모욕을 얻는 이유가 개신교가 갖고 있는 영원이라는 개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등등의 개념을 갖고 있다 보니 교회도 영원히 존재하고 영원히 군림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무제한 열려있다고 믿고 있으니 실수나 실패도 한 순간의 작은 일탈정도로 생각해버리기 일쑤입니다. 지금 꼭 변하지 않아도 언젠가 적당한 때가 오면 그때 하지, 세상이 바뀔 날이 올테니까 그때는 우리가 정당하게 인정받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교회는 수명을 정해놓으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사람이 한 80을 산다고 하니까 교회는 한 100년을 수명으로 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람이 그 인생을 정리하면서 적당한 대에 적당한 일을 하는 것은 그의 수명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열정적으로 살아도 언젠가는 삶이 끝나는 순간이 있을 것임을 알기에 그 때가 다가올수록 자신의 삶을 정리합니다. 20대에는 20대의 열정으로 살고 40대는 40대의 노련함으로 살고 60이 되어서는 반성과 성찰의 삶을 살면서 말년을 준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계획적이고 정리되며 마지막을 준비할 여유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도 100년 정도를 수명으로 생각하고 운영된다면 어떨까요? 개척기나 자립기는 아마도 유년기, 청소년기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30년쯤 되면 성장을 위해 몸부림칠 것이고 40년쯤 되면 교회를 분가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합니다. 50년쯤 되면 원숙미를 갖추고 교회의 존재목적에 대해 고민하면서 교회의 정체성을 찾아 실천하고자 하는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90년이 되면 마지막 10년을 어떻게 보내고 여러 교회와 성도들에게 의미를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면 장례식을 준비하겠지요. 100주년이 되면 100주년이 되었다고 성대하게 무슨 기념주일을 지키고 떠들어댈 것이 아니라 100년 동안 성과와 과오를 진단하면서 폐교식을 하는 모습이 낯설지만 한국교회에 중요한 의미를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정표를 갖고 있는 교회라면 함부로 그 일생을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의 대부분이 근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들입니다. 100년의 역사를 통해 모은 재산과 인원으로 재산다툼이나 하고 꼴보수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면서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100년의 역사에 걸맞는 풍채라기보다는 노쇠하고 고집스러우며 안하무인의 늙은이 모습을 하고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채 역사와 전통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름을 부끄러운 이름으로 욕먹고 손가락질 받는 이름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안티오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는 좋은 친구인 바울을 찾아 다소로 가서 그를 데리고 함께 사역하기 위해 안티오크로 데려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아름다운 만남의 동역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티오크에 머물면서 모임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하면서 굳센 마음으로 주임을 의지하라며 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은혜가 넘쳤고 사람들의 공감을 샀으며 감사와 위로, 격려가 넘쳤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오늘날의 경멸스러운 개독교인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느낌이 다릅니다. 긍정적이며 용납적이고 인정적입니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는 기쁘고 감사하고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름을 부여받고 정체성을 갖게 되는 순간입니다.
반면 우리는 이름을 모욕적으로 빼앗겼고 정체성을 상실하였으며 거부되고 미움 받으며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은 땅에 떨어졌고 교회는 반사회적 단체의 표상이 되었으며 시대를 거꾸로 가려는 이상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스물 네 살을 먹은 우리 좋은만남교회가 이 세상에서 교회의 이름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물 네 살이면 진지한 사랑을 배우게 되는 나이일 것입니다. 연인을 만나고 연애의 감정으로 가슴 뛸 나이입니다. 그리고 혈기왕성함으로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 나이입니다. 그런 혈기왕성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사랑하는 교회가 될 때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소중한 이름인 교회의 이름이, 그러나 지금은 땅바닥에 떨어져 뭍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비웃음을 사는 이 이름이 다시금 회복되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치유하고 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법을 익혀가는 일을 감당해야 할 나이일 것입니다. 그런 결단으로 이 24주년 창립기념주일을 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가며 : 나이가 많은 것은 치욕스러운 것이 아닙니다만 나이를 먹고서도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무덤에 묻히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잇값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스물 네 살에 맞는 나잇값을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존재해야 합니다. 비록 작은 교회입니다만 처음 시작할 때 해드렸던 이야기처럼 마음과 믿음이 부자라면 그 무엇도 부럽고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교회가 땅바닥에 떨어진 한국교회의 이름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비웃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런 결단과 결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마음을 바치기 원합니다. 그러면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듯이 우리의 이 결단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열매를 맺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오늘이 좋은만남교회의 역사에, 그리고 한국교회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며 또 될 줄로 믿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격려가 충만하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