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십시오] 좋은 종교 - 깨닫지 못함의 정반대 2

by 좋은만남 posted Apr 13,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1015-0411

좋은 종교 - 깨닫지 못함의 정반대 2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나무토막, 바위 덩어리, 혹은 말하고 걷고 생각하는 기계죠. 사람답지 않아요. 주위의 온갖 것들에 의해 꿈틀거리는 꼭두각시죠. 단추 하나 누르면 한 가지 반응이 나타나는 거죠. 이 사람은 이런 행동에 이렇게 반응할 거라고 거의 예측할 수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을 연구한다면 그 사람이 나타낼 반응들을 족집게처럼 꼬집어낼 수도 있는 겁니다. 내 치료 그룹을 두고 나는 종종 종이에다가 아무개는 치료과정을 이렇게 시작하게 되고 아무개는 저렇게 응수할 것이다 라고 적습니다. 나쁜 일이라고요? 글쎄요, “너 자신을 잊어라!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사람들 말을 듣지 마십시오. 당치 않은 소리! 돕겠다고 남들에게로 나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입니다.

 이것은 여러 해 전에 내가 시카고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 대단히 강력하게 내게 다가온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신부들을 위한 상담 과정을 거치고 있었는데, 실제로 상담에 종사하고 있고 상담 사례를 녹음해서 강의 시간에 가져오기로 동의한 신부들에게만 개방된 과정이었죠. 스무 명쯤이었을 겁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한 젊은 여성과의 면담을 녹음한 테이프를 가져왔습니다. 지도 선생이 녹음을 틀었고 우리 모두 듣기 시작했습니다. 오 분 후에 관례대로 지도 선생은 테이프를 중지시키고 비평할 게 있느냐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묻더군요. “왜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했지요?” “나는 질문을 한 기억이 없는데요. 사실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던 걸로 믿습니다.”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나는 인간 중심적이고 비지시적인 칼 로저스의 상담법을 의식하며 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어요. 아무튼 우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도 선생이 “테이프를 다시 들어 볼까요?” 했고, 우리는 테이프를 다시 들었는데, 뜻밖에도 엄청나게 큰 질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만큼이나 거대한 질문이 하나 들어 있지 뭡니까. 내 흥미를 자극한 건 내가 그 질문을 이미 세 차례나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는 질문을 하면서, 두 번째는 내방에서 테이프를 들으면서 (수업에 녹임이 잘 된 테이프를 가져가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세 번째는 강의실에서. 그런데도 기억을 못하다니! 나는 자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 일은 나의 치료 과정이나 나의 영성 지도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는 면접 과정을 녹음하는데, 내담자에게 그걸 들려주면 이렇게 말하죠. “저, 면담 동안 난 신부님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못했어요. 테이프를 듣고서야 비로소 신부님 말씀을 들은 거죠.” 더 흥미로운 건 면담 동안 내가 말한 것도 내가 듣지 못했다는 겁니다. 내가 행하는 치료 과정에서 나 자신도 자각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발견한다는 건 기가 막힐 노릇이죠. 한 보따리 늘어 놓았던 게 나중에야 아 그랬던가 싶단 말예요. 그게 인간답다고요? “너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라”고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