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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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0일 성령강림절 제4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광야 한 가운데 서면'

이관택

본문: 신명기 1장 29~33절

29 그 때에 내가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오. 30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들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하신 것과 같이, 이제도 당신들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오. 31 또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과 같이, 당신들이 이 곳에 이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당신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을, 광야에서 직접 보았소.' 32 그런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33 당신들이 진 칠 곳을 찾아 주시려고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그리고 당신들이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서의 내용은 이집트에서 출애굽하여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혹시 요즘 매일 성서읽기 하고 계신가요? 매일성서읽기에서 이번 주까지는 민수기를 읽었고, 다음 주부터는 신명기에 접어듭니다.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를 꾸준히 읽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지요. 왜냐하면 정말 자세하고 까다로운 율법과 규레들, 그리고 각 지파와 수많은 인물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마도 66권의 성서중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에 이끌려 오랜 이집트 노예의 생활로부터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들은 목적지인 요단강 건너 저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 야말로 40년간의 광야생활이 시작된 것이지요. 말 그대로 사막 한 가운데 놓여져서, 낮이면 뜨거운 햇빛 때문에, 밤이면 급격히 떨어지는 온도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한 드넓은 광야, 너무나 힘겨운 여정! 남자 어른만 60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인구의 대이동! 이 엄청난 민족 대이동의 모습은 실상 하나님과의 동행이 아니면 가히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이 40년 동안 그 광야를 여행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능한 일이냐? 라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어리석을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의 광야는 역사적 사실 보다 더 크고 깊은 신앙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40년 광야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의 인생과 신앙여정이 어떠한지를,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율법과 규레로,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자체로, 정확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능력이 뛰어날 필요도 없고요, 잘생길 필요도 없고요, 싸움을 잘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또 지금 내가 하나님과 함께 가고 있다라는 그 사실을 잊지만 않으면 됩니다. 신명기 6장 12절에는 주님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렵죠. 왜냐하면 광야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적인 조건이 너무나 여락하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000님께서 다시 한 번 읽어 주실까요?

29 그 때에 내가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오. 30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들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하신 것과 같이, 이제도 당신들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오. 31 또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과 같이, 당신들이 이 곳에 이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당신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을, 광야에서 직접 보았소.' 32 그런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33 당신들이 진 칠 곳을 찾아 주시려고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그리고 당신들이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아직도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답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탄식하며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기나긴 광야40년의 여정을 살펴보면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너무나 답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나님의 그 많은 이적을 체험하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불평하고 불만이 가득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세는 너무나 답답해 합니다. 10가지 재앙을 경험하고,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고,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않았습니까? 저기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민족을 인도해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왜 어째서? 계속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십니까?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한 번 보면요. 이들의 인생은 어떠합니까? 나면서부터 이집트의 종살이를 합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부모, 형제가 사람취급 받지 못하고, 개 돼지처럼 살아온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 존중감 자체가 없습니다. 내가 누군지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믿음과 신뢰 자체가 없지요. 그저 하루하루 매 맞지 않기 위해, 그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노예들은 어느 날 혜성같이 등장한 모세라는 사람으로 인해 자신들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조금씩 알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이 거대한 제국 이집트를 향해서 항거하게 됩니다. 10가지 재앙을 지나면서 이들에게는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만 가면 이 지겨운 노예 생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니 그 어떤 것도 겁나지 않는다! 비로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목숨도 걸 수 있습니다. 그리곤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그런데 가나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 딛었는데 그들이 만나게 되는 상황이 무엇입니까? 바로 ‘광야’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고, 먹을 거라고, 마실 거라고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죽하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제대로 된 길도, 없습니다. 매뉴얼도 없고요. 저 앞에 산이 보이는 듯 하다가도 어느새 하룻밤 지나면 지형이 바뀌어 버립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할 때에도 사막을 경험했었지요. 그 때 사막은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는 것 아닙니까? 그 곳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으니까 목숨을 걸고 도망간 것이지요. 광야에 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 살지언정 광야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 곳에 가면 죽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을 따라 이집트를 빠져 나오고 그들이 만난 것이 바로 그토록 무서운 광야입니다. 그 곳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도 한달 두달이 아닙니다. 40년 동안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한 가운데에서 그 ‘광야’에도 삶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아니 광야이기 때문에 삶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 했습니다. 그 광야 한 가운데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요. 십계명을 받고, 하나님과 관계 맺는 여러 가지 규레들을 배우고 지켜 나가는 그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은 몰랐습니다. 지금 몇십 년 간 살고 있는, 알고 보면 자신들의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 광야에서 보내고 있는데 그저 지나치려고만 했습니다. 지금 맺고 있는 하나님과의 소중한 관계를 애써 무시하려고만 했습니다. 또 그들은 그 어딘가에 있을 가나안땅 만을 꿈꾸며, 그 시일이 언제냐고 투정만 부리는 모습이지요.

사실 이러한 광야 한 가운데에서 어디로 갈 지 몰라 방황하는 모습은 저희의 인생길과 비슷합니다. 스티브 도나휴라는 사람이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라는 책에서 도나휴는 우리는 대부분 인생의 목적지를 정해 놓고 그 목적지를 향해 가려는 성향이 있답니다. 마치 산을 등반하듯이 움직이지 않는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하나 하나 정복해 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을 가려하고, 대학을 나오면 직장에 가려하지요 그리곤 결혼을 해야 하고요. 뭐 이런 식이지요. 갈 길이 보이죠. 하지만 과연 인생이 그러한가? 도나휴는 젊은 시절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면서 인생길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구나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구체적으로 하게 되는데, 사막의 특징은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기후, 지형, 방향감각의 상실, 광활함 가운데 느끼는 외로움 등인데 이것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행들이 가득한 것이 우리네 인생길입니다. 사실 요즘 행복하냐는 질문에 선뜻 행복합니다. 얘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불교에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찌보면 너무나 힘겨운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하지만 광야 40년은 이러한 인생길, 광야와 같은 그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알려주는 길잡이가 됩니다. 모세는 신명기 4장 32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이제까지, 지나간 때를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를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이런 큰 일을 본 적이 있는지, 들은 적이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사실 세심히 돌이켜 보면 광야 같은 이 곳에서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십니까?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들은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말씀해 주고 계신 것 아닙니까? 하루도 살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간이나 스스로 살 수 있도록 항상 동행해 주신 것 아닙니까? 자세히 보면 그 곳 광야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아시스도 있고요 여러 생명체들도 어울려 살아가는 곳입니다. 자신들이 딛고선 금빛 모래가 얼마나 찬란한지 그들은 한 번이라도 봤을지 궁금합니다. 석양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저 역시 축구를 직접 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일 밤, 작은 공 하나를 두고 22명의 젊은이들이 만들어 내는 흥분과 감동의 드라마를 애청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에는 무려 20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길거리응원을 펼쳤다지요. 또 붉은 악마 응원단은 남아공에 응원하러 가기 위해 4년간 적금을 부었다는 이야기도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월드컵이 무엇이길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 하나의 움직임 때문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해맑게 웃기도 하고, 혹은 세상 짐 다 떠안은 사람인양 울기도 하는 모습들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대표팀의 모습이 웃다가 울고 있는 모습이지요. 사실 월드컵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리는 냉혹한 세계입니다. 지난 아르헨티나전 때 박주영 선수가 그만 실수로 자살골을 넣게 되었는데, 그의 얼굴 표정을 보셨습니까? 얼마나 안타깝던지 모릅니다. 자막에는 안 써 있었지만 실.패.자라는 큰 글씨가 그의 얼굴 정면에 써있는 듯한 인상을 저는 강하게 받았습니다.

혹자는 ‘축구 안에 인생이 들어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축구를 인생여정에 비유합니다. 저는 이 말이 축구가 인생만큼 위대하다라는 건지, 아니면 인생이 축구 게임과 같이 숨 막히는 승부의 세계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승자 아니면 패자가 된다고 하면서 인생을 결과론적으로 바라보는 그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또 여러분 스스로는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축구를 볼 때 어떤 사람은 “축구90분 그 긴 시간 뭐하러 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스포츠 뉴스에서 하는 하이라이트 보면서 누가 이겼는지 하고 골장면만 보면되지’ 하는 분들 있지요. 하지만 과연 결과만으로 그 경기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몇 대 몇, 누가 이겼는지, 누가 그 경기의 MVP인지만 안다고 해서 그 경기에 대해 아는 것 아닙니다. 진짜 축구를 보려면 보여지는 결과에 덮여서 보이지 않은 부분들. 눈에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열심히 상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수비수의 모습, 선수들의 땀 냄새, 그들의 훈련과정, 감독과 선수들의 교감, 응원하는 사람의 표정, 심판의 제스츄어 등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승부를 가리는 것이 주목적인 축구를 볼 때도 그와 같이 숨겨진 이야기들을 봐야 하건만, 하물며 나의 인생여정을 돌아볼 때 어떠해야겠습니까? 마치 내 인생을 하이라이트 스포츠 뉴스에서 접하듯이 이력서에 씌여질 만한 목록으로 평가받는다면,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집은 몇 평인지, 차는 무엇을 끌로 다니는지, 자식은 지금 뭘 하는지 등등으로 내 인생이 평가 받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특히나 신앙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또한 존경합니다. 너무나 성실한 분들이시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저희 집안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이유로 부모님께서는 너무나 쉽게 본인들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한 2주전 쯤에 아버지께서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훌륭하게 사시고, 또 열심히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한 인생을 ‘실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때, 아들인 저로서는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나 두 분 모두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하나님 뜻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시는데, 그리고 다른 어려운 사람들도 넉넉히 보시며 베푸시는 데에도 열심인데요. 자신들의 삶의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나 인색하시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지요.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거의 다 지켜 행하지 않았습니까? 나름 40년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본인들이 처한 상황을 끝없이 비관합니다. 문제는 하나님 뜻에 따라 살기도 살아야겠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이제까지, 지나간 때를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를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이런 큰 일을 본 적이 있는지, 들은 적이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여기서 큰일 이라 함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 자를 향해 어루만져주신 그러한 큰 일들이 있으시지요?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이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소소하지만 엄청난 하나님의 큰일을 잘 캐취해 내는 것입니다. 사실은 산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큰일 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혹시 청계천8가라는 노래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지를 노래하고 있는데 제가 한 절만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저희교회에 소그룹모임이 많지는 않습니다. 작년부터 청장년 속회가 진행이 되고 있고요. 올해에는 청년모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청년모임을 담당하고 있는데, 솔직히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요. 그러던 중 지난 주에 청년 모임에서 이름을 함께 새로 짓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면서 저 개인적으로 매우 큰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는 청년 모임뿐만 아니라 우리 좋은만남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도 어울리는 것 같아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청년모임의 새 이름은 ‘오아시스’입니다. 이름 지을 때는 조금 뜬금없게, 큰 고민 없이 지었는데, 짓고 나니, 정말 많은 의미들을 내포한 이름이더군요. ‘오아시스’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목마른 자는 마실 물을 얻고, 배고픈 자는 먹을 양식을 얻습니다. 낙타를 쉬게 할 수도 있고, 하룻밤 편히 잘 수도 있습니다. 오아시스 모임이 정말 갈급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요소를 채워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부분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확신을 얻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지적인 영역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관계적인 부분에서도 서로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알아차려주는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오아시스는 어떤 곳입니까? 목적지는 다르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인생의 목적지는 다 다르죠. 처지와 오아시스까지 오게 된 여정도 각 기 다릅니다. 하지만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아닙니까? 만나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는 장소가 바로 오아시스입니다.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처지이니 만큼, 저마다 험난한 사막을 헤쳐왔기에 넘 피로하고 지쳐있는 상황이니만큼, 서로를 진심으로 의지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모임이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아시스의 가장 큰 매력은 궁극적으로 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또 절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서도 안 된다는 거죠. 우리 신앙의 여정 가운데 우리가 만나는 모임은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모임입니다. 힘겨운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열심히 살아내기 위해서 활력과 영감을 주는 모임이기 때문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더욱 근본적인 터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청년모임뿐 만 아니라 좋은만남교회가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 되길 바랍니다. 사막 같은 광야를 횡단하는 우리의 인생길 가운데 진정으로 좋은만남이 이뤄지는 오아시스, 뭔가 나를 집어 삼킬 듯 한 갈증이 상쾌하게 해결되는 오아시스, 나의 일상에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치열하게 살아내기 위해 신앙여정의 동반자들을 만날 수 있는 오아시스! 그런 오아시스 같은 교회를 기대합니다. 또 오아시스 모임은 청년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 관심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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