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9일 성령강림절 제14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무엇을 바랄 것인가'
이관택
본문: 누가복음 14:17-21
17 잔치 시간이 되어, 그는 자기 종을 보내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핑계를 대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은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밭을 샀는데, 가서 보아야 하겠소.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 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오' 하고 말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내가 장가를 들어서, 아내를 맞이하였소. 그러니 가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1 그 종이 돌아와서, 이것을 그대로 자기 주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더러 말하기를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 하였다.
동영상 - 지식채널e “별볼일 없던 외톨이의 대성공” 상영
저는 소위 ‘잘난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외모가 아주 빼어나다거나, 운동을 아주 잘하는 그런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 옆에 있으면 좀 불편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잘하는 것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사람이 있음으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그런 분위기가 아주 싫습니다. 난 가만히 있으면 보통은 가는데, 꼭 그 사람이 옆에만 서면 웬지 작아지죠. 주변에 그 사람 칭찬하는 소리 한 마디씩 할 때 마다 한 번 더 작아집니다. 요즘 엄친아, 엄친딸 이라는 말이 있는데, 모든 면에서 가장 잘난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우리 엄마 친구 아들이라죠? 그런 면에서 저는 좋은만남교회가 너무 좋습니다. 여기에 오면 딱히 나 잘났다고 하시는 분이 별로 없어서 좋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놓고 가르치려한다거나, 혼자만 목소리를 크게 낸다거나 딱히 부자라고 떵떵 거리시는 분이 없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불만은 외모들은 다 뛰어나신 것 같아요. 그게 한 가지 불만입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칭찬을 잘 안하는 편이죠? 예 골고루 모두에게 평등하게 칭찬을 하지 않을 거라면, 지금 우리처럼 칭찬을 별로 안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위인전을 많이 읽고 자라납니다. TV에서 소위 성공한 사람들만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모두가 그 훌륭한 사람의 기준을 위인들에게 맞추거나 TV 스타에게 맞추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보면, 남자애들은 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 아니면 슈바이처 같은 의사고, 여자애들은 퀴리부인 아니면 신사임당입니다. 하여간 남보다 더욱 뛰어나고, 인류 역사에 크게 내 이름을 남겨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그렇습니까? 훌륭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유명해지는 것 아닙니다. 돈 잘 버는 것 아닙니다. 소위 이 사회에 이바지하고 인류의 공존공영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훌륭하다는 표현을 쓰게 되지요. 저는 잘난 사람들은 절대로 이 세상을 더 좋게, 더 멋지게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시스템에 너무 익숙하니까! 이 시스템에서 충분히 잘 할 수 있고 인정받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에겐 지금이 가장 멋진 세상이지요. 요즘 취업 할려면 남자나 여자나 기본적으로 성형수술 한 두 군데 정도는 한다고 합니다. 얼굴이 빼어나게 잘생긴 사람, 미모가 탁월한 사람이 이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분위기에 불만을 갖고 있겠습니까? 문제의식이 있겠어요? 오히려 잘되었다 싶지요. 지금이 천국이죠. 절대로 천국을 바랄수가 없지요. 지금과 같이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부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겠습니까? 과거로 돌아가서, 흑인들이 노예였던 시절에 백인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아마도 백인들은 흑인이 노예인 시대가 천년만년 지속되길 바랬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뭔가 좀 뒤처지고, 적응 잘 못하고, 아 세상이 왜 이러지, 난 왜 이러지 하고 고민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중심이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을 드리면 여러분은 어디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 아픈 곳, 그래서 집중하고 있는 곳이 바로 나의 중심입니다. 제가 중국 갔다 오면서 벼룩에게 잔뜩 물렸는데요. 100군데 정도 물린 것 같은데, 지난 일주일 동안 저의 중심은 바로 이 벼룩에게 물린 곳들이었습니다. 너무나 가려워서요. TV에 나오는 피부병 환자들이 남 같지가 않고, 모기 물린 사람들, 가렵다고 머리 긁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저 동지애가 느껴졌습니다. 하여간 마음이 아픈 사람, 다리가 아픈 사람. 사람은 그 아픈 곳에 집중하여 골똘해 하며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키 작아서 속상한 사람, 피부색이 까매서, 집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아픈 사람 그 곳에 집중하다 보면, 그러다 보면 해답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고요. 실제적으로 변화를 위해 살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남보다 아픈 곳이 더 많은 사람들일 겁니다. 진짜 훌륭한 사람들은 바로 좀 더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 지금의 현재에서 상실감과 절망감을 맛보고 있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십니까? 행복하세요?
오늘 말씀을 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큰 잔치에 비유하는 장면이지요. 잔치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시간되었으니 사람들을 부르라고 명령을 합니다. 종이 그 명령을 받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잔치에 참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 두 사람 핑계를 대기 시작하네요. 어떤 사람은 밭을 샀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소를 샀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장가를 간다고 합니다. 모두 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결국에 하나님 나라는 사실 거리로 내어 쫒겨서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요? 그냥 거리에 있는 사람들, 골목길에 즐비하게 앉아 DLJtEJS 사람들. 무슨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요? 사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들이 품은 ‘소망’이 그 해답입니다.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 잔치를 희망하는 그 자세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뒷부분에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잔치에 다 참여했는데도 자리가 많이 남아서 주인이 더욱 화가 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만큼 잔치를 소망하는 사람이 적었다는 겁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질문이 바로 “우리는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소망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성서에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향해 ‘소망’을 품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소위 잘나지 못했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이 ‘소망’ 하나 만큼은 확실히 부여잡은 이들이 바로 성서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이들입니다. 말을 잘 못하여 하나님께 몇 번이나 저는 입이 짧고 말씀의 권세가 없으니 하나님의 일을 못하겠다고 거절하는 모세, 우발적인 충동으로 사람을 살인했던 그 모세를 보십시오. 형을 속인 거짓말쟁이 야곱, 무식하고 다혈질적인 베드로, 의심이 많았던 도마, 하나님의 이적을 행하고도 이세벨이 무서워서 도망다닌 엘리야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잘난 하나님의 사람들, 실상은 그리 잘난 것 만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잘났느냐 못났느냐가 아니고요. 그들이 어떤 소망을 품고 있는가?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국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결국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것이 원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망 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죽었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어떤 소망을 품어야 할까?를 고민하시고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망이 있는 한, 그 소망을 따라 사는 한 그 인생은 행복합니다. 이제 남에게 보여지고 평가 당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인생이 소망에 따라 움직여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 좀 뭐 좀 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망을 품기가 어렵습니다. 잔치가 땡기기는 한데, 시간도 없고, 여건도 안 되죠. 사실 지금 내가 진짜 소망하는 건 잔치에 가는 게 아니거든요. 뭐 잔치야 나중에 가면 되고 지금은 밭이 더 중요하고, 소가 더 중요해 지는 겁니다. 우리 삶의 밭은 무엇입니까? 소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하려 합니다. 우리 각 자의 소망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망. 하지만 함께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각 자의 소망만을 쫒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서로의 소망을 확인하고 응원해 주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 영상의 제목이 “별볼일 없던 외톨이의 대성공”이었습니다. 흔히 조금 부족하고, 뭐하나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을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죠. 그 사람 별볼일 없는 사람이야. 진짜 그 사람이 할 일이 없다는 건 아닐 겁니다. 별볼일 없다는 것은 외부에서 그 사람을 단편적으로 평가할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볼 때,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요? 지난번에 중국 워크캠프에 2주간 다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몸 건강히 잘 다녀왔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간 마을은 한센인 회복자 마을인데 마을 이름은 샤오창핑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소록도 같이 중국도 1950년 이후 한센인들을 문둥이라고 하여 산간 오지에 격리수용하는 정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한센인들이 외부와 격리되어 따로 살고 계십니다. 워낙 사람의 발길도 드물고, 지원도 되지 않기 때문에, 시설과 생활 환경 자체가 매우 열악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화장실을 짓는 일을 하면서 밤에는 각 가정을 방문하여 그 곳 어르신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 분들은 단순히 한센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분은 이 곳에 오기 전에 군인으로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셨던 이야기, 어떤 분은 자식들이 대학에 다닌다는 이야기, 이 곳에서 연애한 이야기, 부부싸움한 이야기, 앞으로의 희망과 바램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면서 이들을 한 인간이 아닌 그저 한센인으로만 생각한 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들도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라 각 자의 꿈과 인생 여정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살고 있는 소중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입체적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혹자는 별볼일없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할 때, 그냥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뭉뚱거릴 때, 신앙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은 정말 위대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함부로 평가할 수 없고 그의 소망 또한 함부로 말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서로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그냥 교인? 아님 책방주인? 전도사? 중요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어떤 영화보다도 다이나믹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사람 그저 그래.. 라고 평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별볼일 없는 인생은 없으며 우리의 인생은 진짜 볼 것 투성이입니다.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인생이죠. 저 사람 이야기의 다음 장이 뭘까? 나의 이야기의 다음 장이 뭘까? 그러다 보면 이야기가 만나기도 하고요 결말을 함께 그려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합류한다고 하지요? 부디 좋은만남 공동체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소망을 품은 행복한 이야기들이 점점 합류하고, 합류해서 풍성한 소망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 소망이 실제적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