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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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묵
마침내 도달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고 모두들 나에게 묻습니다. 그저 호기심일까요? 침묵이 어떻게 깨달음이 체계에 맞아 들어가는지, 혹은 침묵이 그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지, 혹은 거기 도달하면 무얼 느끼게 되는지 우리는 언제나 묻고 있습니다.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알게 됩니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모른다”가 동양에서는 널리 알려진 말이죠. 그걸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반대를 말할 수 있을 따름이죠. 구루가 진리를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진리를 말로, 문구를 옮길 수는 없는 겁니다. 그건 진리가 아니죠. 그건 현실이 아니죠. 현실을 문구로 옮길 수는 없는 겁니다. 구루는 오류를 지적할 수 있을 따름이죠. 오류들을 떨쳐 버릴 때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도 말할 수는 없습니다.이것은 위대한 가톨릭 신비가들 사이에서도 공통된 가르침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년에 집필하려고도 이야기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았던 겁니다. 나는 그 유명한 침묵이 단 두 달 동안이었던 줄로 생각했는데 사실을 여러 해 동안이더군요. 그는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했고 또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푸른 망고 맛을 못 본 사람이 “그 맛 어떠냐?” 묻자 “시다”고 말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한 낱말로 잘라 말한다는 건 궤도를 벗어나는 법입니다. 그 점을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썩 현명하지 않습니다. 말을 ― 예컨대 성서의 말씀들을 ― 붙들고 늘어지고 그래서 전혀 틀리게 알아듣습니다. “시다”고 하면“식초처럼 시냐, 레몬처럼 시냐?”고 묻습니다. 아니죠, 레몬처럼 시지는 않고 망고처럼 시죠. “하지만 난 한번도 망고 맛을 못 봤는데.” 안 됐군! 그러고도 그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는 겁니다. 망고 맛을 봤더라면 그랬을 리 없죠. 다른 주제로 썼을지언정 망고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을 리른 없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날 마침내 푸른 망고 맛을 보면 “맙소사, 내가 바보짓을 했구나. 그 논문을 써서는 안 됐는데”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바로 그랬던 겁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