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을 뚫으세요' / 마가복음 2장 1~7절 - 이관택 전도사 -

by 좋은만남 posted Oct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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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4일 성령강림절 제22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지붕을 뚫으세요'

이관택

본문: 마가복음 2장 1~7절

1 며칠이 지나서,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 예수가 집에 계신다는 말이 퍼지니, 2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마침내 문 앞에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 때에 한 중풍병 환자를 네 사람이 데리고 왔다. 4 무리 때문에 예수께로 데리고 갈 수 없어서, 예수가 계신 곳 위의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서, 중풍병 환자가 누워 있는 자리를 달아 내렸다. 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6 율법학자 몇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한단 말이냐?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였다.


지난 주간 월요일 화요일 1박 2일간 준회원 수련회에 다녀왔습니다. 목사안수를 받기 위한 진급과정 때문에 갔었는데, 예배학 시간에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개신교 예배에서 말씀 선포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 말씀 선포 시간은 설교자만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회중은 그저 듣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다. 말씀 선포는 총 3단계로 이루어 지는데, 성서를 읽을 때가 첫 번째 말씀 선포이며, 설교자가 강단에서 설교 할 때가 두 번째 말씀 선포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말씀 선포인데, 설교를 듣는 이들의 귀와 마음에 ”들리는 말씀“이 세 번째 말씀 선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 분들 각 자에게 ‘들리는 말씀’ 곧 하나님께서 지금 이순간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말씀은 각 자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설교에 대한 부담이 많습니다. 설교를 잘 못하는 것도 부담이거니와 일주일에 한 번 말씀 나누는 이 시간이 너무나 귀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두려움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많은 것을 준비한다고 해도, 나의 한계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여기 있는 모두에게 제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평상시 부담 갖는 것의 절반만 갖기로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여러분들이 조금 더 부담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 각 자는 세 번째 말씀 선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말씀이 들리느냐?는 아마도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이 예배에 참석하느냐, 여러분의 상태가 지금 어떤지에 따라 다 다를 것입니다. 각 자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실지 기대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정말 나에게 충분하게 들려지는, 지금 이 시간이 우리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바이올린 켜는 청각장애인 소녀의 영상"

자막이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내용을 잘 이해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상 속의 바이올린 선율만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영상 속에서 청각 장애인인 한 소녀가 등장합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한 모양인데, 차림을 보니 집도 좀 가난한 것 같고, 또 예기치 않게 점점 청력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은 그 소녀를 왕따 시키고 있지요. 그 소녀의 현실적인 문제는 그 어느 것 하나 녹녹하지가 않습니다,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삶입니다. 하지만 거리의 악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 거리의 악사는 그 소녀의 현실적인 조건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는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써 가장 중요한 문제 일텐데, 가난하다. 절망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사는 소녀를 온전히 받아드립니다. 결국 악사를 만나서 그 소녀는 점점 다시금 자신의 소리를 찾아갑니다. 결국에는 어떻게 됩니까?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서진 바이올린'을 들고 콩쿨대회에 나가서 자신의 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게 됩니다, 세상에 자신의 소리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도 각 자 하나님께서 주신 악기를 하나씩 연주하는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삶의 조건도 다르고, 어떤 사람은 지금 너무나 힘든 삶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지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놀라운 선율의 소리를 이 세상에 들려줄 수 있도록 악기를 주셨습니다. 나의 소리!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선율을 연주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지금 어떤 상태에서 연주하고 있습니까? 혹, 내 바이올린이 조금 망가졌다고 포기하고 계십니까? 아님 내 악기는 정말 뛰어나지 않냐고 자만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 주십니다. 내가 비록 못난이 같은 삶을 살아도, 사람들에게 손 가락질 받고, 넌 할 수 없다고! 좌절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듣고 있어도 말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악사가 소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먼저 너의 눈을 감아라. 네 속에 있는 소리에 귀 기울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눈을 감아라.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눈을 감는 다는 것! 세상의 조건과, 물질의 욕망으로 잠시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신 내안의 온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 다는 것입니다. 아 내가 나를 잊고 살았는데, 원래 내가 연주하는 악기 이런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지? 눈을 감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십니다. 사실 가버나움은 예수 공동체의 베이스 캠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루 하루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병든 자는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버려지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악기가 있다고, 그것 지금 연주할 수 있다고 얘기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복음의 위력이 사람들의 실제적 생활을 변화시키자 온 유대 땅이 술렁술렁합니다. 그 날도 이제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돌아다니시며 사역을 하시고 나병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지요. 그러데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나 봅니다. 예수께서 머문 집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발 딛을 틈이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여러 사람 중에는 오늘의 주인공 중풍병을 앓고 환자와 네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네 명의 친구들은 아마도 중풍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친구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 동안에도 굉장히 많은 시도들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만나면 내 친구의병이 낳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누워있는 친구 침상을 통째로 들고, 예수일행 머문다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들어갈 수가 없지요. 이미 그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 곳에 이미 꽉 들어찬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냥 동네 약장사가 왔을 때, 얘들이 벅적벅적 거리는 그런 상황은 아닐 겁니다. 우리 나라의 가장 유명인사가 은평구에 왔다. 그럼 누가 그 유명인사를 맞이하러 갑니까? 구청창, 국회의원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앞자리 맡아 놓고 있을 겁니다. 공무원들 앉고 지역 유지들 앉고 그런 식이겠지요. 당시로 보면 마을 이장님도 있고, 그 잘났다고 권세 등등한 율법학자와 서기관들도 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 시비를 걸죠. 예수님 자체에는 별 관심 없지만, 그래도 유명하니까, 어디 한번 면면이라도 보자! 하는 심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이 네명의 친구는 도저히 병든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더러운 병자, 이 죄인을 어찌 데려 왔냐고? 문지기가 막을 것이 분명하고, 여기저기서 나가라고, 꺼지라고 소리칠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의 병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존재입니다. 당연히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동네에 유명한 인사가 나타났는데, 그런 중풍병자 따위가 들어 올 수 없는 노릇이지요.

아마도 네 친구와 중풍병자는 좌절 했을 것입니다. 뭐 세상이 그렇지! 한 두 번 겪었던 일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다음 부분을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네 친구가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통째로 메고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 뚫고 예수님 앞에 당도한 거죠. 얼마나 난리가 났겠습니까? 예수님꼐 복음 전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저 사람이 뭐얘기하나 들어보고 있는 경건한 분위기에서, 집 천장이 뚫리더니 병상이 내려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곳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표정도 가관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친구들의 믿음 보시고, 중풍병 환자를 고치십니다.

'에바다'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시죠? 에바다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바로 '열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가복음 7:34~35를 보면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예수님의 사역을 대부분이 에바다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닫혀 있던 문을 열려라!하는 사역입니다. 중풍병자에게 닫혀있던 그 집의 문, 그 집의 문을 뚫고 들어 온 중풍병자의 삶을 열어주십니다. 눈이 닫혀 있고 입이 닫혀 있는 사람들의 눈과 입을 열어주십니다. 초반의 영상에서 나의 소리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소리를 열어주시는 것 말입니다. 닫혀 있는 천국 문을 열어 주십니다. 닫혀 은혜 통로를 열어 주십니다. 핏줄이 꽉 막혀서 답답하게 살아가면서 동맥경화증을 앓는처럼 하루 하루 소망 없이 답답하게 사는 우리의 삶을 열어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중요성은 예수님이 혼자 열어 제낀 것이 아니라 네 명의 친구의 헌신과 믿음, 그리고 실제적인 실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렇네요. 예수 앞에 나아오기 까지 앉은뱅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중풍병 환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신앙 공동체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긴 문을 여는 것이 구원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문을 만나는 데 그 때마다 그 문을 열어 재끼는 것이 신앙 여정이다. 죄인에게 잠겨진 문을 여는 것! 죄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이겠지만 그 천국문을 여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하지만 절대 혼자서는 안된다 라는 것입니다. 열리라! 이 명령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지만 그 열릴 수 있는 조건은 신앙공동체의 헌신과 믿음 때문에 가능합니다.

다음 주면 좋은만남 공동체가 25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합니다. 함꼐 신앙생활 하는 것이 뭐 우연이지? 생각하시는 분이 있지요? 하지만 신앙공동체의 건강성은 우리로 하여금 나의 삶의 문을 열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예수님 앞에 데려다 줄 수 있고, 나 또한 누군가를 예수님 앞에 데려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지붕을 뚫는 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그렇다면 오늘 지붕을 뚫는 그 과감한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성서 시대 지붕은 그저 우리와 같은 비를 막아주는 공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습기가 없고, 무더운 이스라엘의 기후 때문에 사람들은 지난 번 함희옥 성도님 댁 가서 지붕위에 앉아서 도란도란 별 보던 일 생각나세요? 그렇게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고. 별을 보고, 간단한 음식을 먹고, 심지어 기도까지 하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지붕은 일상적인 활동공간 사람들이 서로 교제 나누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네 친구들과 중풍병자는 그 일상의 공간이었던 지붕을 뚫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공간을 완전 바꿔 버린다.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이라는 드라마의 메인 카피가 바로 일상을 뒤흔들 박력있는 한방 이 네 친구들은 아마도 좌절 앞에서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지붕 위에서 이야기 나누면서 하나님께 함꼐 기도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붕을 발견하게 되었죠. 일상을 뒤흔들 한 방 결국 지붕을 뚫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혼자서는 전형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지붕은 어디 입니까? 여러분은 그 지붕을 뚫기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나를 알아주고 나와 함께 즐거운 친구하나면 족하다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지붕이든 벽이든 뚫어 버리고 참자유를 누릴 수 있겠지요?

우리가 다음 주 창립 기념주일을 맞이 하여 합창을 합니다. 각 자의 악기들의 소리를 내는 것 화음을 만드는 것 , 합창은 합창일 뿐이지만 우리 각 자의 신앙여정은 계속됩니다. 이번 합창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네 삶이 내는 소리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한 소리를 잘 내서, 잘 조율하고 화음을 맞춰서 멋드러진 하모니를 내는 것은 분명 세상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소리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