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6일 주현절후 제2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따뜻한 봄이 생각나는 날'
이관택
본문: 마태복음 6:28~31
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습니다. 특히 어제와 오늘은 한파경보까지 발동할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고 있는데, 이럴 때 걱정되는 것은 추운 날씨에 경직되는 우리의 몸의 움직임과 활동 반경, 또 그 만큼이나 경직되고 움츠려드는 우리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차도남', '차도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아시나요? '차가운 도시 남자'와 여자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화제의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남자주인공이 대표적인 차도남입니다. 신빙하기가 도래했다는 지금, 그 신빙하기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신빙하기를 만들어 낼 만큼 아주 차가운 심성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바로 차도남, 차도녀가 되기를 선망합니다.
날씨도 춥고,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차가워지는 시대, 또 마음이 차가워져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선망하는 시대! 이 차가운 시대 속에서 오늘 윤성근 성도님의 찬양은 그야말로 '따뜻함'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목소리 그리고 멋드러진 기타연주, 그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따스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속삭이는 강아지풀의 음성을 들으셨나요? 천국의 춤을 함께 추자고 우리에게 간절하게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나요? 몸서리치게 차가운 시대입니다. 너무나 추운 오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따뜻할 수 있는 이유! 바로 하나님의 신비가 우리의 삶을 가득 얼싸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절망적일 때, 앞이 캄캄할 때, 가끔 어떤 사람을 보면 희망의 빛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요? 추운 겨울날 따뜻한 봄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찬양처럼 말입니다. 우리 옆의 분들 보시면서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을 보면 따뜻한 봄이 생각납니다.
한기연에서는 '매운떡볶이'라는 성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모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각 자의 일정들 때문에 매주는 못 모이고 있습니다만 만날 때마다, 신앙과 신학을 다룬 책들을 읽고 함께 토론을 하기도 하고, 신앙적인 고민을 나누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김규항이 쓴 '예수전'이라는 책을 함께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예수님의 삶과 예수님의 고민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을 복음서를 통해 강해형식으로 풀어 쓰고 있습니다. 또 단순히 예수님의 이야기만을 쓴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도 담겨 있습니다.
모임을 잘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집 가는 방향이 같았던 한 친구가 제게 울먹이면서 이야기합니다. 왜 우리 모임에서는 각 자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위로해 주지 않느냐고! 왜 자꾸 욕망만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라고 하느냐고, 왜 개인의 상처보다는 이 사회의 상처만 이야기 하냐고! 왜 나의 아픔보다 남의 아픔에 더 민감해야 한다고만 하냐고! 그렇게 사는 게 맞고 예수님처럼 사는게 맞는것을 알긴 아는데, 그런데 나도 지금 너무 힘들다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와 여력이 없다고 토로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고민은 그 동안의 진보적인 민중교회들의 한계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친구만의 고민이 아니라 실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 모두의 고민이자, 현재 좋은만남교회의 고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지요.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추구하며, 그 신앙의 결단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욕망! 내 속에서 꿈틀되는 욕망을 잘 들여다 보고, 맘몬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참 진리를 위해 사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조금 더 갖는 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다른 이로 하여금 조금 더 못 갖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갖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나누며 살려고 하는 것이 맞지요. 모두 맞는 소리이긴 한데~ 지금 이 암혹한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에도 허걱거리고, 너무나 힘겨운데! 시대가 얼마나 차가운데, 예수님처럼 살라니,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남을 생각하라니, 이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 경지인가요?
제가 매주 시사인이라는 잡지를 구독하는데, 이번 주 시사인 편집인 글에서 '진실 피로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설문조사를 하면 사람들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신문이 조중동 신문에 비해 소위 '진실보도'를 더욱 잘 하는 것으로, 또 이미지도 좋은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왜 구독률은 조중동의 1/5에도 못미칠까? 그 이유는 신문사 규모와 역사도 있겠지만, 한겨레나 경향을 보면 이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구조적인 한계 등 불편한 진실을 자주 접하게 되니까 점점 암울해진다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이것을 '진실 피로증'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이 '불편한 진실'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삶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신문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접하는 것과는 범접할 수 없는 더 큰 삶의 무게를 요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이 곳에 계신 우리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이 혹시 지금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은지, 너무나 큰 부담감과 짐을 짊어지고 있지 않은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목사님과 이런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라고 명령하시는 부분도 있지만, 상처 받은 한 영혼을 위로하고, 지치고 고단한 삶 속에서 충분한 쉼을 누리게 하는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동반해야 하는데, 우리교회는 그런 설교를 많이 못했던 것 같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복 받아라! 지금 힘들지만 성공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는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필요한 복을 주시고 있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서로의 관계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기쁨이 우리의 삶을 위로 하고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확실합니다.
어찌보면 신앙을 지키고 삶의 원칙들을 세워 나가는 일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하려고 할 때 그렇습니다. '나'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 세상이 차가운 듯 보여도 실상 이 차가운 대지 아래에 봄을 기다리며, 씨앗을 틔우기 위해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생명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차가운 세상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별로 소중해 보이지 않는 강아지 풀 하나가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나처럼 사는 건 나 밖에 없다!' 오늘 말씀 29절에 솔로몬의 영화도 이 꽃만큼 잘 입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따스한 햇살이 온 세상을 고루 비추고 모든 생명에게 고루 비추듯이 예외없는 하나님의 신비가 생명 저마다 ‘나처럼 사는건~’ 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게 합니다.
나처럼 사는 것은 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비가 날 얼싸안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신비는 자신의 피조물들을 단 하나의 개체도 똑같이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르네 지라르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희생양’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자신도 욕망하게 되는 모방심리를 갖게 되면서 타인과 비슷해지고 경쟁과 갈등이 생겨난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아귀다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칙은 경재이 아닙니다. 오히려 협력입니다.
나처럼 사는 건 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서에서는 정확히 이야기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의 대부분이 이런 것들인데 말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4계절 중에 먹을 것 걱정되고, 입을 것 걱정이 가장 심화되는 계절이 겨울입니다. 봄이 된다는 것은 이 겨울에 먹을 것 걱정이 잠깐 멈추고, 입을 것 걱정이 한시름 놓이는 일을 말합니다. 봄에 열매가 가득 열리지는 않지만 희망이 싹이 틔지 않습니끼? 하지만 우리는 '봄'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 추운 겨울에 따스한 봄을 생각할 수 있는 삶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남들은 춥다고 얘기할 때, 남들은 어둡다고 아우성 칠 때! 곧 봄이 올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처럼 곧 환한 태양이 떠 오를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오늘 너무 춥지만 봄을 생각해 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봄 말입니다. 혹시 지금 건강 때문에, 관계 때문에, 금전 때문에 힘드신 분들 있습니까? 오늘처럼 한파가 몰아치는 날에 사람들의 기도는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장갑을 구하고, 어떤 사람은 목도리, 어떤 사람은 날씨가 조금 따뜻해 지기를 구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말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 되는 것이 봄입니다.
우리 삶의 기도가 마치 봄을 기다리는 듯한 기도로 점점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바로 그 나라가 우리의 삶의 한 가득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무엇이 더 큰 이적인가?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것, 그리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사람이 그것을 부끄럽고 불편해 하게 되는 것 - 우리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따스한 봄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나와 다른 모든 이를 위한 봄 참 기대됩니다.
"돌맹이도 숨을 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맹이가 숨을 쉰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