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 누가복음 16:9-13 - 방현섭 목사

by 방현섭 posted Feb 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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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본문 : 누가복음 16,9-13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11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인들 내주겠느냐?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제  목 ;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들어가며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진리와 자비를 기리며 기뻐하는 이 귀한 주현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이 자리에 모여 기쁨과 감사와 희망으로 예배하는 사랑하는 성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여성 교우님들이 특별히 더 아름다우신 것 같습니다. 중년의 한 여인이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수술대 위에서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자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으로 이제 끝이냐고 물었더니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며 그녀가 앞으로 30∼40년은 더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이 회복됨에 따라 그녀는 병원에 더 있으면서 이왕 병원에 들어온데다 앞으로 3-40년은 더 살겠다고 하니 얼굴을 팽팽하게 하고 눈 코 모두 예쁘게 수술했습니다. 아랫배도 집어넣기로 하였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불러 머리도 염색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수술이 끝나고 병원에서 나오다가 달려오는 앰뷸런스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 서게 되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30∼40년은 더 살 거라면서요?"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뜯어고쳐서 못 알아 보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외모, 몸뚱아리만 치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아름답고 건강하게 꾸미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들어가서 :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적 세상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자본주의라는 단어로 잘 설명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사회주의도 없고 공산주의도 전체주의 없거나 있어도 미미하고 그저 자본주의만이 독주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는 세상에서 자본의 문제, 경제의 문제 즉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그동안 ‘많이 버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척도이다’라는 식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많이 벌어 많이 헌금하면 그게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믿어왔지요. 물론 맞는 말이겠지만 좀 더 섬세하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한 키워드는 자본주의와 그리스도인이라는 두 단어일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고자 한다는 것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셨지요. 결국 재물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리도인인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재물, 물질, 돈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저는 올해부터 세금공제라는 것을 받게 되었기에 제 자신의 기부금영수증을 떼어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해를 돌아보니 제가 이것저것 다 합쳐 한 2400만 원 정도 수입이 있었더군요. 그런데 헌금을 600만 원 정도 했고 사회단체 후원 등에 약 110만 원 가량 지출했습니다. 제 수입이 얼마 안 되는데 그 중에서 700만원, 약 1/3 가까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좀 과한 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빚도 몇 백 있는데 너무 마음만 앞선 것은 아닌지, 살림하느라고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그리 많은 수입은 아니지만 교회와 교회를 통한 선한 사업,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꾼들을 위해 많이 냈다는 것이 말입니다. 요즘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돈지랄을 하는 부끄러운 소식이 많이 들립니다. J교회 J목사는 교회 돈 32억 원을 5년 동안 횡령했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는 연봉을 6억 받는다는데 그것도 부족하여 외국여행으로 교회 돈을 탕진하고, 재정을 관리하는 성도들도 미심쩍어 하는 가운데 100억짜리 펀드를 들었답니다. 교회는 그 목사의 세 딸의 유학비, 사모차량구입·유지비·사택관리비·의료비 등도 지급해 주었답니다. 그런 목사들에 비하면 저는 무척 자랑스럽고 돈을 그리스도인답게 사용했다고 자부합니다.
제 잘난 척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저는 여러분들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은 얼마나 버시고 얼마나 어떻게 쓰셨는지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서 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물론 저는 여러분들이 어떻게 한 해를 사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규모는 작아도 재정적으로는 매우 넉넉합니다. 여러분이 헌금생활을 아주 잘 해주셨지요. 덕분에 지역사회를 위해 또 좋은 모임을 위해 적절하게 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십일조를 거의 대부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교회 목사님들이 놀라십니다. 그렇지만 그런 수치적인 것이 아니겠지요! 여러분들 스스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나에게 물질과 건강과 가정과 등등 모든 것들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과연 나는 얼마나 그 물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썼는가 하고 말입니다.
요즘 커피전문점이 많이 생겼지요.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에 보통 3,000원에서 4,500원 정도 합니다. 한 달이면 몇 잔 정도 마십니까? 시내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은 서너 번은 마시겠지요? 한 달에 만원이라고 치면 일 년이면 12만원입니다. 그런데 그걸 아깝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습니다. 그런데 한 달에 만 원씩 NGO단체에 기부하면 연말에 기부금영수증 받아보면서 ‘12만원이나 했어?’하면서 놀라고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커피를 사 마시면 잠시나마 커피의 깊은 맛에 빠져 기분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만 후원은 뭔가 특별하게 얻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정직한 것 같지는 않은 한 재산관리인-청지기라는 말은 요즘 거의 안 쓰죠-이 자기가 퇴직을 당할 처지가 되자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데려다가 빚진 내용을 고쳐주고 나중에 자기에게 은혜를 갚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을 보고 주인은 오히려 칭찬을 하면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주인은 처음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야기는 청지기를 고용한 사람을 주인이라고 하지 않고 부자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부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지 그것이 진짜 부자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물질이 친구를 사귀는 일에, 즉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으로 쓰여야 함을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왜 불의한 물질이라고 할까? 혹시 그 부자가 불의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것일까? 그러나 영어 성서를 보니 worldly, 즉 세속적이라는 의미더군요. 즉 돈, 물질 자체가 거룩하다기 보다는 세속적인, 그 자체적으로 불의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불의한 것, 자체로 깨끗하지 못한 물질이고 돈이지만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나눔을 통해 이웃과 친구들을 위해, 즉 하나님의 뜻에 맞게 나누어질 때라는 것입니다. 구때 불의한 재물은 정의로운 재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이 지혜로운 마음으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나의 재화를 투여, 즉 사용했을 때 그에 알맞은 효용, 즉 즐거움이나 가치가 나타나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을 유용한 소비라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얼마를 내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누리고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따집니다. 그래서 잘 썼다 혹은 잘못 썼다를 판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금이나 좋은 일을 하는 단체에 대한 후원이나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이런 것이 괜하게 생돈 쓰는 것 같고 아깝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자본주의적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적이지는 않습니다.
성서는 우리의 선행과 신앙적 삶으로 얻게 되는 그 무엇, 그 어떤 가치가 참된 구원이 아니라 그런 행위에 참여하고 선한 일에 기꺼이 나의 것을 나누는 것 자체가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심판은 죄를 지어서 어떤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행위에 젖어 사는 것이 이미 심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우리의 물질을 좋은 일에 기꺼이 내 놓는 것을 통해 상급이니, 천국이니, 구원이니 하는 무엇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물질과 돈을 나눔으로써 후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할 때에 영접을 받게 될 것임도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요즘 같이 돈이 인생을 좌우하는 시절에는 인생역전이 한 방에 훅 갑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행복이라는 발판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많이 느낍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해서 평생이 그럴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것을 지금 나누며 산다면 후에 우리가 뜻하지 않는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우리를 영접하고 돕고 나누어 줄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그것은 때로 하나님 자신이 돌보시고 나누시고 채워주시는 경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스스로 보증을 서주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오늘 우리의 물질적 삶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으로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가며 : 세상 살면서 가장 큰 복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금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 서로를 돌아보고 응원하고 돕는 측은한 마음입니다. 전국적으로 자행되는 가축류의 살처분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 바로 그런 사람다운 마음입니다. 하물며 우리와 같은 성질과 심정을 가진 이웃을 보고 측은히 여기고 또 그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응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인간성일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마음이 드러나는 것은 물질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이나마 기쁘게, 기꺼이 나누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