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조회 수 58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1111-0320

구체화 6

 

 위대한 칼 라너의 마지막 편지들 중 하나로, 도움을 청한 한 젊은 독일인 약물중독자에게 보낸 답장이 있습니다. “당신네 신학자들은 하느님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이 하느님이 내 삶과 어떻게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 하느님이 어떻게 내게서 약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라는 그 중독자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해야겠습니다마는, 나에게 하느님이란 절대적 신비고 또 언제나 그랬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누구인지 이해 못합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암시를 받고 어렴풋이 압니다.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신비를 말로 옮겨 놓으려는 부적합한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낱말은 전혀 없습니다. 그에 대한 문장은 전혀 없습니다.” 또 런던에서 어떤 신학자들의 모임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학자들의 과제는 모든 것을 하느님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설명할 수 없는 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설명 할 수 없는 신비. 우리는 모릅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 아 ….”

 

 말이란 가리키는 것입니다. 묘사가 아닙니다. 비극적이게도, 사람들은 하느님과 관련된 거기서 말을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어떻게 그렇게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보다 더 미친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인간과 관련된, 혹은 나무나 잎이나 동물과 관련된 거기서도 말이 그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하느님과 관련해서 말을 그것이라고? 무슨 소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의 이런 과정에 참가했던, 국제적으로 유명한 한 성서학자가 “맙소사, 당신 말을 듣고 보니 난 평생 우상을 숭배해 왔어요!” 하고는 이렇게 털어놓더군요. “난 우상숭배자라는 생각이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내 우상은 나무나 쇠로 만든 게 아니거든요. 정신적 우상이죠.” 정신적 우상은 더 위험하죠. 정신이라는 매우 미묘한 재료를 써서 하느님을 만들어 내니까.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