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속적 성공 VS 가치 있는 삶
성서 : 빌립보서 3:5-10
5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들어가며 :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또 따르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성도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크고 놀라운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게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에 수잔 앤더슨(Suzanne Anderson)이란 여인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눈 수술을 받다 실명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주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해요." 그 말에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했습니다. 여러 번 넘어지며 서러워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날 무렵, 그녀가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 뒷자리에 앉으며 아내의 출퇴근길을 말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살률 세계 1위의 오명을 얻은 한국입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어 허덕이는 서민들에서부터 유명 연예인, 카이스트 학생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합니다. 하루에 4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자살은 절망으로부터 유혹을 받습니다. 절망은 아무 것도 기댈 곳이 없다는 외로움, 소외감으로 인해 생깁니다. 이 이야기의 남편과 같은 존재만 있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든든한 마음이 생기겠지요. 하나님이 바로 이 남편 같은 존재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자신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게 여겨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든든하고 자상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새 힘을 얻어 살아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들어가서 :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신 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을 기념하며 우리도 예수님 닮고 예수님 따라 살기를 소망하며 지내는 귀한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새로운 결단을 해애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매주일 고백하는 좋은만남 신앙고백을 통해 그 결단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도는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정말 우리 자신의 진실한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참 열심히 삽니다. 무엇인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지요. 그 목표점이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하면 바로 성공입니다. 성공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성공, 공부를 많이 해서 학식을 쌓는 성공,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 성공, 큰 사업을 하는 성공, 유력한 정치인이 되는 성공 등등의 목표를 위해 우리는 우리 인생의 대부분을 바칩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타고 나기를 무슨 큰 그릇으로, 미국식 표현으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떤 대단한 목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다 직장에서 인정받아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고 높은 직위에 올라가고, 열심히 벌어 자기 집 마련하고, 남들보다 큰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자식농사 잘 져서 자식들이 서울 유수의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꿈을 꾸면서 그 정도만 해도 성공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이 성공하시기를 기원하며 응원하며 또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참된 성공의 의미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은 소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출신성분부터가 선택 받은 핏줄을 타고 났습니다. 집안이 지역사회에서 유력하였고 그 자신도 재능이 있어서 소위 당시 최고의 고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서는 이런 신분을 ‘베냐민 지파, 히브리 사람, 바리새파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 단어는 한 마디로 성공한 사람,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정통파로써 이단에 대한 강렬한 열정까지 있어서 이단축출에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었지만 그가 예수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자신 있게 내세우고 자랑했었던 자신의 가문, 혈통, 지위, 권력, 인기, 학문, 부귀 등등을 오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물이 뭡니까? 쓰레기지요. 사실 쓰레기보다 조금 더 더러운 느낌을 줍니다. 자신의 인생 모두를 투자해서 얻은 성공이었지만 지금 돌아다보니 쓰레기만도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이 지금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토록 자랑스러워마지 않은 것들을 오물로 비유하고 이제 더 좋은 것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고린도후서 11장 24절 이하에서 보니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라고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잘 나가는 길을 박차고 나와서 거지나 죄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장똘뱅이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삶을 사는 자신의 신세가 기구하다고, 괜히 나와서 이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한숨을 쉬어도 모자를 판에 그는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오물이었다고, 쓰레기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과 바꾸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 오히려 더 감사하고 기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 바울이 만난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만난 삶을 ‘가치 있는 삶’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월등한 가치를 우리는 ‘가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가치 있는 존재이고 그를 만난 삶이 가치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세속적 성공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고 목적, 가치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모두 바친 성공이라는 것이 한 발짝만 떨어져서 바라봐도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공을 통해 얻는 것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갖는 가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잘 알려진 영화를 보면 쉰들러는 그저 돈을 많이 벌 생각만 하는, 부자가 되는 성공에 목숨까지도 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생명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기 위해 소유하였던 반지, 자동차, 시계, 고급 시가 등등을 더 가치 있는 일에 쓰게 됩니다. 세속적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가치 있는 삶’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바울이 당한 것과 같은 온갖 고난과 고초의 길입니다. 예수의 길이라는 것이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자기를 타인에게 내어주고 나누어주는 길입니다. 세속적 성공과는 정 반대의 방향입니다. 도무지 가고 싶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구원이 있고 기쁨이 있고 세속적 성공이 주지 못하는 큰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왜 이런 미친 일이 벌어지는 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것이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구정물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납니다. 내어주고 나눠주는데 오히려 풍성해집니다. 죽었는데 부활하고 사람들은 버렸지만 하나님은 들어 쓰십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약해 보이지만 그 무엇도 꺾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는데 오히려 세상을 모두 가진 것이 됩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가치 있게 된 삶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신비를 체험하는 사순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가며 : 오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음성을 통하여 인생의 귀한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과연 우리가 추구하고 목표하며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라고 물으십니다. 세속적인 성공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진정한 구원은 우리 삶이, 우리 인생이 가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 성공에만 몰두해서는 우리가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신비를 체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길을 기꺼이 따르십시오. 십자가의 길, 나눔과 섬김의 길,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길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신비를 체험하고 예수님을 따르기고 결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