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1147-1120
통찰과 이해 2
“게으름, 그게 뭔데요? 게으름도 무수한 형태가 있죠. 산부님의 게으름은 어떤 형태인지 들어 봅시다. 신부님이 말하는 게으름이란 무엇인지 설명해 보십시오.” “글쎄요, 난 무슨 일이든지 해낸 적이 없어요. 아무 일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바로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렇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아침에 잠이 깨어봐야 일어나 할 만한 일이다 싶은 게 없어요.” “우울하신가요, 그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일종의 위축감이랄까.” “늘 그랬습니까?” “뭐, 늘 그랬던 건 아니고, 젊을 적엔 더 활동적이었죠. 신학생때는 생동감이 넘쳤고요.” “그럼 이런 일이 시작된 건 언제죠?” “아, 서너 해 전이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내가 묻습니다. 그는 한참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오래 생각해야 할 정도라면 사년 전에는 썩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그 전해에는 어땠나요?” “아, 그해에 서품을 받았죠.” “서품받던 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 가지 작은 일이 있었어요. 마지막 신학 시험인데, 낙방했죠. 좀 실망했지만 극복했어요. 주교님은 날 로마로 보냈다가 나중에 신학교에서 가르치게 할 계획이셨고 나도 솔깃했더랬는데, 시험에 낙방하는 바람에 주교님은 맘을 바꿔 날 이 본당으로 보내셨죠. 사실 그건 좀 부당했어요, 왜냐하면….” 바야흐로 그는 화가 납니다. 거기 극복하지 못했던 분노가 있는 겁니다. 그 좌절감을 돌파해야 하는 겁니다. 그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건 쓸데없는 일, 무슨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건 부질없는 것이죠. 분노와 좌절을 직면하게 하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어떤 통찰을 얻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걸 돌파할 수 있을 때 그는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내가 훈계를 하며 결혼한 그의 본당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면 죄책감만 느끼게 했겠죠. 자신을 치유할 자기 통찰, 이것이 첫째로 할 일입니다.
또 하나 큰 과제가 있는데, 이해입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하리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저 그러리라고 추측했을 뿐이죠. 왜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었나요? 행복해지고 싶어서였죠. 교수가 되어 어떤 지위와 특전을 가지는 게 행복한 일일 거라고 당신은 생각했죠. 그럴까요? 거기에 이해가 요구되는 겁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