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1204-0122
사랑에 대해 무슨 말을?
나는 사랑을 어떻게 묘사할까? 새 저서에 내가 적고 있는 묵상들 가운데 하나를 들려 드리기로 했습니다. 천천히 읽어 드릴 테니 따라 가며 묵상해 보십시오. 삼사 분 만에 다 읽을 수 있도록 여기 요약해 두었죠. 안 그러면 읽는 데 삼십 분이 걸릴 테니까. 복음서의 한 문장에 대한 해설인데, 먼저 플라톤이 말한 “자유인을 노예로 삼을 수 없으니, 자유인은 감옥에 있어도 자유인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 대한 반성이 있고 나서 복음서의 비슷한 문장이 나오죠. “누가 천 걸음을 가자고 하거든 함께 이천 걸음을 가시오.”
너는 내 등에 짐을 지웠다고 해서 나를 노예로 삼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누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감옥에서 나옴으로써 외적 현실을 바꾸려 한다면 그는 정녕 갇힌 사람이다. 자유는 외적 환경에 있지 않다. 자유는 마음속에 자리한다. 지혜에 도달한 사람을 누가 속박할 수 있는가? 아무튼, 일찍부터 내 마음에 간직했던 복음서 문장을 들어 보라. “군중들을 헤쳐 보내신 후에 예수께서는 따로 기도하려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홀로 거기 계셨다.” 이것이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이다. 홀로 있을 때라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난 적이 있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떤 사람, 어떤 상황, 어떤 사물을 자기가 상상하는 대로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준다는 뜻이다. 보지도 못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를 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조건화다. 우리의 개념들, 우리의 범주들, 우리의 편견들, 우리의 투영들, 우리가 우리의 문화들과 우리의 과거 경험들에서 끌어온 우리의 딱지들이다. 본다는 것은 인간이 감히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이니, 그것은 훈련된, 방심 없이 경계하는 정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 사람, 각 사물을 그 생생한 현재 순간에 바라보려고 수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정신적 나태에 빠져 있으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