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5일 부활절 제2주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이관택
본문: 예레미야 1:4-9
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7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9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깊어지면 낯설어진다
어제 제 동생이 결혼을 하였습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시고, 또 오시지는 못하더라도,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에 선후배 동료들의 결혼식에 많이 참석하고 있는데, 확실히 친동생이 결혼하는 자리는 뭔가 느낌이 달랐습니다. 우선 왜 동생이 먼저 가냐? 결혼 안하냐? 라는 질문을 100번 이상 들었습니다. 사실 별생각이 없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니까 ‘아! 내가 좀 못난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심지어는 ‘결혼 빨리 해야지’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또 하나는 그렇게 많이 참석했던 결혼식인데, 참 낯설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습니다. 항상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부조하고, 밥 먹고, 사진이나 찍고 왔지, 결혼이란 예식을 자세히 경험해 본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그런 것이 더욱 익숙한 결혼식이었는데, 친동생의 결혼식을 치루면서, 결혼식의 낮선 풍경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손님이 얼마나 올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의 모습도 보았구요. 부조금을 계수하고, 그것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신부 측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 손님들의 축복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결혼이 그저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어제 결혼식을 통해서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깊어지면 낯설어진다’ 참 신기합니다. 제 동생이 와이프를 만난지, 100일 만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빠르다라고 생각하시죠? 그런데 이 둘의 중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너무 익숙하게 십몇년을 알고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 10월인가요. 오랜만에 교회에서 만나 차를 마시던데, 참 낯설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십몇년을 알았었는데, 그 이숙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왔습니다. 서로를 향해 깊어지니까,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하니까 낯설어집니다.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이야 말로 진짜 그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야 말로 내게 의미가 있고 나의 삶을 바꿔주는 것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조금씩 깊어질수록 우리는 낯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이 진짜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만 머물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매주 일년이면 50번을 넘게 예배 드립니다. 똑같은 순서, 똑같은 말씀! 하지만 그렇게 익숙하게만 받으들이지 마세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낯선하나님. 지금까지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요사이 교회앞 큰길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평상시 별관심이 없는데, 조금 자세히 보니 그 꽃망울들이 여간 이쁜게 아닙니다. 신기한 경험이죠, 그저 개나리인데,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보니까 막상 내가 알던 그 개나리가 아니라, 진짜 이쁜 새로운 꽃으로 다가오더라구요. 깊어질수록 낯설어집니다. 그런데 이 낯섬은 우리를 진정한 관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옆 성도님과 인사해보겠습니다. “오늘따라 왠지 좀 낯서네요”
부르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1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콜링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시는 장면은 참 감동이 있습니다. 저는 예리미야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제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또 저를 애타게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엊그제 서울연회를 참여하면서 목사 안수식을 지켜봤는데, 목사 안수를 받고 감격의 눈믈을 흘리면서 “부름받아 나선이 몸” 찬송을 부르는 이들으 모습을 보니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지금 이렇게 부르고 있구나! 나도 부르시고 계시겠지? 하지만 하나님이 어찌 목사들만 부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각 자의 상황에 맞게 부르시고 계십니다. 5절을 보면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는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은 낯선 나와 만나는 과정
그런데 오늘 예레미야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6절에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라고 대답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이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출애굽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에는 모세가 이집트에 가서 동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뭐라고 대답합니까? “저는 입이 뻣뻣하고, 말도 잘 못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예레미야도 모세도 자기 자신이 판단해버립니다. 답을 딱 내립니다. 난 못해! 난 안돼! 과연 겸손해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안의 새로운 내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자기 맘을 자기가 압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하고, 다시 희망했다가 절망하는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내 인생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열심히 공부만 하면 뭐가 됩니까? 실은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합니다.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는 과정, 나 안에 이런 힘이 잇는 줄 몰랐는데, 어라 · 내가 이런면도 있었네. 믿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점점 성장합니다. 모세와 예레미야가 처음엔 부정했잖아요. 하나님 전 못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 전 못합니다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은 못합니다.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단정합니까? 삶의 신비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만이 이런 속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까 깊어지면 낯설어진다고 했지요. 낯선 나와 만나는 과정! 그 과정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과정입니다.
오늘 7-8절을 보면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모세와 예레미야의 하나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의 부르심은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예레미야는 똑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거절했지요.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달랐습니다. 또 그들의 사역의 핵심이 달랐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하는 말마다. ‘구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절망하고, 포기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희망을 보여주고, 너희는 구원될 것이다. 자유케 될 것이다.라고 선포합니다.
하지만 예리미야는 어떻습니까? 이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되기 바로 직전 하나님의 경고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합니다. 너희들은 이렇게 살다간 망한다. 너희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경고입니다. 무서운 심판입니다.
오늘 7절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맡긴 말씀은 구원이십니다. 예레미야에겐 심판의 경고였습니다.중요한 것은 구원의 메시지이든, 심판의 메시지이든 모두 살리기 위한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 계신 우리에게 맡긴 말씀은 무엇입니까? 아니 나에게 맡긴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나를 귀하게 쓰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분명히 나의 삶을 통해 하실 메시지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광야의 외치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하면, 내가 최소한 예수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을 맡겨 주실텐데,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생각을 품어야 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비탈길에서 돌맹이는 생명을 얻는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요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조르바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조르바라는 사람이 참 매력적으로 나오는데, 이 사람은 약간 쾌락주의자입니다. 노는 거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조르바라는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게 참 많은데,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아침에 둘이 함께 출근하다가 조르바가 돌맹이를 걷어찹니다. 돌멩이는 비탈길을 따라 때굴때굴 굴러내려가죠. 그 때 조르바는 그런 놀라운 광경을 처음보는 사람처럼 갈 길을 멈추고 그 굴러가는 돌맹이를 바라봅니다. 그리고선 주인공에게 말하죠. “봤어요? 비탈길에서 돌맹이는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내리막길에서 돌맹이는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내리막의 내리막으로 몰리던 모세를 보십시오. 살인자로 낙인찍히고, 도망자로 인생일 끝날 것 같았던 모세가 결국 하나님의 부림심에 순종하자, 그 동안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아주 낯설지만, 말에 능력이 넘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는 엄청난 일을 하게됩니다. 예레미야도 내리막길입니다. 이제 몰락해가는 나라,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 희망이 안보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예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신앙 자체를 새롭게 바꾸는 큰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지금 힘겨운 상황 가운데 있는 분들,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그 마음 확신하지 마십시오. 답을 본인이 내리지 마십시오. 어려울 때가 시작입니다. 내리막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내안의 낮선 나를 찾으세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을 위한 계획이 있으십니다. 나를 통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를 통해 놀라는 소리, 탄성의 소리, 감격의 소리가 울려퍼지길 소망합니다. 또한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지금도 우리의 삶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