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생명을 위한 고난 / 로마서 6,12-14 - 방현섭 목사

by 방현섭 posted May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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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로마서 6,12-14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제목 ; 참생명을 위한 고난

설교일 ; 2012. 3. 29.

재능교육 농성장 설교

 

들어가며 ;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고난 받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며 복되게 하시는 은혜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이런 자리에서 설교할만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얼마나 부담스럽고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대북 인도지원단체에서 일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고 또 이 자리에서, 서울광장 모퉁이에서,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서 열린 재능교육 촛불기도회에 몇 번 참석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위로와 격려, 응원의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많이 고심하였습니다만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마음으로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왔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과 열린 귀로 오늘 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들어가서 ; 오늘이 벌서 1561일째인 것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는 숫자입니다. 계산해보니 4년하고 101일이 더 지난 시간입니다. 또 지난번에 와서 듣기로는 첫 해고를 당한 일이 벌서 10년 전에 일어난 일이고 10년 동안 계속 복직을 위해 싸워 오신 분도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 반년에서 1년이면 대형 건물들이 하나 우뚝 솟기도 합니다. 저도 10년 동안 교회에서 목회를 해왔는데 정말 긴 시간이었고 그 사이 저의 청춘은 완전히 흘러가버렸습니다. 하물며 투쟁으로 버텨온 10년이라니! 기가 막힌 시간입니다.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벌어지면서 사는 10년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10년입니다. 농성은 4년하고 101일입니다.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고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고 아무도 함께 해주지 않던 그날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 것이며, 또 이분들의 하루하루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솔직히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고정된 직업도 없고 고정된 수입도 없고 언제쯤이면 해결될 것이라는 기약도 없이 경찰과 시청직원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막나가는 공권력에게 몰리고 쫓겨나는 그 날들, 어린 자녀들이 자라나서 중고생이 되는 과정을 그저 그렇게 보내면서 아이들 눈망울을 바라보는 부모로서의 마음은 또 얼마나 힘겨웠고 또 얼마나 길게만 느껴졌을까... 그저 기가 막힐 뿐이라는 막막한 느낌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저는 단지 힘겨운 고통의 시간이라고 단 몇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그 긴 시간을 그렇게 버티고 싸우면서 이 자리를 지켜오셨습니다. 비록 껍데기뿐이긴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국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의 그 의지와 결의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는 이 처참한 현실을 벌서 10년째 외면하고 오히려 용역 깡패를 고용해서 온갖 말도 안 돼는 테러를 저지르는 그 박성훈 회장이라는 작자에 대한 증오와 저주의 마음이 저에게도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 이 설교를 그 작자가 저지른 온갖 비인간적인 망동과 탐욕으로 발생한 범죄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원없는 저주를 퍼부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설교의 주인공이 오만방자한 악인이 아니라 그 악인과 그 악인의 범죄에 맞서 싸우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주와 파괴가 아니라 희망과 축복이 오늘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십년을 버티고 이 자리에서 4년이 넘게 견디신 것은 파괴와 대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해와 회복, 희망과 상생을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지금 사순절기를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가 죄값을 치르는 제물이 되고자 오셨습니다. 그 죗값을 치른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리는 고난을 당하고 피흘려 죽음으로써 인류의 생명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난당하고 죽어간 예수를 다시 살려주셔서 부활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고 하늘 보좌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사순절은 이런 고난과 부활의 과정을 기억하며 고난에 참예함으로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준비하는 40일입니다.

부활은 새로운 체험이고 신세계가 열리고 그 신세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말 그대로 죽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전의 옛날 사람, 온갖 허물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죽어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체험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활의 놀라운 기적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과정,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고는 부활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겪어야 할 고난과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죽음으로 대신하였고 온 세상은 부활을 누리게 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죄송스럽지만 저는 오늘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여러분이 당하고 계신 이 고난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왜 하필 재능고육의 해고 노동자들일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의 고난에 비해 너무나도 길기만한 10년의 고난의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당하신 고난보다도 더 질기고 강도가 높으며 지긋지긋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여러분의 이 고난이 분명 부활을 위한 고난, 재능교육 해고자들이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온 세상이 구원을 얻게 될만한 그런 고난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추악합니까?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 서민들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다 아실 것입니다. 또 권력과 재물을 가진 이들이 노동자 서민들에게 부리는 횡포도 일일이 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이런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 결국 도덕과 윤리도, 양심과 이성도 짓밟혀 그야말로 민주주의라는 탈을 썼을 뿐 착취와 억압은 심해지고 온통 혼란과 혼돈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간절한 구원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반드시 고난의 과정, 죽음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재능교육 노동자 여러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셨듯이 세상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고난의 과정을 겪고 계신 것입니다. 이 고난을 잘 견디고 부활을 맞이하게 될 때에 세상은 분명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고용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세상은 노동자도 사람이고 해고는 살인이라는 피같은 교훈을 얻게 되고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못된 습성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돈벌이보다 더욱 귀중한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 함부로 폭력을 휘둘러 노동자와 그 가족을 모두 질식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깨닫고 반성하게 되는 그런 세상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그동안 빼앗겼던 당연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떨쳐 일어서고 연대하여 부당한 노동계의 관행에 맞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여러분의 이 기나긴 고난이 끝나는 순간에 부활의 사건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나가며 ; 존경하는 재능교육 복직투쟁 노동자 여러분! 지금의 이 고난이 너무 길다고, 너무 힘겹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재능교육 회사가 너무 못되게 굴고 너무 심하게 몰아붙인다고 해서 좌절하지도 말아주십시오. 지금까지 10년을 끌어온 싸움이니 머지 않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고난이 분명 한국사회의 노동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킬 부활 사건을 위한 고난이라고 믿고 오늘도 내일도 당차게 맞서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무나도 힘겹게 10년을 버텨오신 분들에게 드리는 부탁이기에 너무나도 송구스럽고 죄송하지만 오늘 읽은 성서 말씀처럼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쳐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위로가, 부활의 확신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