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0일 성령강림절후 제2주 및 환경선교주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라
이관택
본문: 고린도전서 12:31b - 13:6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우린 여전히 독처하고 있다.
‘인간은 외롭다’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이 불공평한 세상에도, 인간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것이 있다면 ‘외로움’을 일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도, 행복하다고 큰소리치며 함박웃음을 짓던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 외로움이란 ‘혼자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어떨 땐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마치 짐짝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을 때, ‘난 역시 혼자야’라고 좌절하게 됩니다. 특히나 만인을 향한 경쟁체제가 삶의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외로움은 더욱 친숙합니다.
이 외로움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김기석 목사님께서는 현대인이 느끼는 이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 고하니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데 ‘무능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외롭다는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생명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따뜻한 시선이 항상 나를 지켜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도 아침부터 지금까지 성령의 시원한 바람이 나와 동행하고 있질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외롭습니까? 사랑하지 못해서랍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아서이고, 그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해서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혼자인 것은, 독처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서 우리 곁에 소중한 사람들을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셨건만, 우린 여전히 독처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독처하는 것처럼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우리에게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옆사람과 함께 인사 나눠보시죠. “사랑합니다.”
누구나 탄생신화가 있다.
역사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위인들은 저마다 탄생신화가 하나씩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는 신화를 가지고 계십니다. 심지어 박혁거세 왕은 알에서 태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놀라운 기적과 같은 사연이 아니더라도, 모든 생명의 탄생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 할 각자의 사연들이 있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으로 인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생명들을 낳고 기뻐하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그렇지 않은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탄생은 그 자체로 사랑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증거합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제게도 나름 너무나 감사한 탄생신화가 있습니다. 신비한 간증거리이기도 한데요. 저희 어머니께서 저를 태속에 가지셨을 때, 그만 이 안에 종양이 생겼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니까, 병명을 알 수 없지만 암과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물김치와 소금물로만 연명하셨다고 합니다. 혹여나 영양분이 들어가서 암세포가 커지면 안 되기 때문이죠. 어머니가 당시에 그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곳이 기도원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급기야 수술 당일 날 어머니 마음속에 병원에 가면 죽을 것 같고, 기도원에 가면 살 것 같은 마음이 들으셨답니다. 그 당시 교회 다니신지 얼마되지도 않으신 분이 가족들과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도원으로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안되면 저랑 같이 죽으시겟다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사실 제가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얼마 전입니다. 믿지 못할 신화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저라는 존재가 이 땅에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마음을 졸이고, 기도했는지, 또 그만큼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저의 기적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도 귀한 사연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을 이렇게도 사랑하시고, 이렇게도 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보듬고, 다듬고, 이끌어 가십니다.
부활은 다시 태어나는 것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태어난 날 어머니도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태어난다는 것은 언제라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살인자 도망자 모세는 하나님의 예언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75세 노인이었던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서른 살의 예수 또한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면서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면서 새로운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또 다시 시작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음으로 다시 한번 새 삶을 경험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또 다른 삶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자의 삶을 이루십니다.
언제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신앙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좌절은 없습니다. 외로움은 없습니다. 다만 새로운 부활에 대한 기대만이 있을 뿐입니다.
요즘 교회텃밭을 가꾸는데, 저는 그저 물이나 주고, 상추 순이 나면 따주는 정도이지만, 신기한 것은 자라고 있는 것을 따주지 않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말라죽는 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춧잎을 따주는 것이 상추입에서 볼때 완전히 자신의 몸을 버림으로 새 순을 낫게하고, 그것이 상추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상추는 죽습니다. 다른 말로 자기를 계속 버리지 않으면 상추는 죽습니다.
이철수 판화 ‘덜떨어진 놈’을 보면 땅콩은 다 익으면 줄기에 떨어입니다. 그런데 덜 익은 것일수록 줄기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덜떨어진 놈’이란 말은 이 때 쓰입니다. 새롭게 태어나지 않은 인생. 부활이 없는 인생은 바로 덜떨어진 인생입니다.
사랑하며 살고 싶어라
생일을 맞이하여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제 마음을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 저는 다시태어나면 사랑을 마음껏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3장은 소위 사랑장이라고 불립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겠다고 단언하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 사랑의 길입니다. 성경의 모든 주제가 실은 이 말씀에 축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한 1서 4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알지 못한다는 거 아닙니까? 뭘 해도 소용없다는 거 아니예요. 사랑은 가장 먼저해야 할 것이며, 가장 끝까지 부여잡아야 할 것입니다. 가끔 여러 가지 논리로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랑’만은 붙잡아야 합니다. 저는 사랑을 맘껏하면서 살고 싶은데 두 가지 유념하려고 합니다. 첫번째는 ‘사랑은 오래참는다’ 저는 성서에서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는데 가장 먼저 설명하는 구절이 ‘오래 참는다’라는 말을 확인하는 순간 놀라웠습니다. 사랑하는데 가장 힘든 것이 뭔지 아세요? 바로 꾸준히, 한결 같이 사랑하는 겁니다. 인간의 감정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변덕이 죽 끓는듯합니다. 한결같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오래 참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랑은 ‘당신’때문에 가능하다. 대상이 없는 사랑은 폭력적입니다. 관계가 없는 사랑은 맹목적입니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이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 아닙니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다르게 사는 것
오늘은 환경선교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알아차리는 것, 이 땅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황폐해져왔는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느끼고, 다시금 돌이키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는 날입니다. 오늘 함께 나눈 사랑의 대상을 우주까지 확대해보는 날입니다. 우리를 보듬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감사하는 날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환경주일을 지내면서 말뿐인 절기가 아니라 실제적인 변화를 위해 신앙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1.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
2. 인식한 현실과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꿈꾸는 것
3. 그 꿈을 현실에 실현하기 위해 실천하는 거
한 가지씩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