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조회 수 39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 황금을 드리겠습니다.

성서 :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들어가며 : 언제나 너그러우시면서도 언제나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바르고 깊은 은혜와 사랑이 6월의 첫 주일을 맞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 세우신 교회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들과 그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벌써 6월입니다. 막 춥다가 갑자기 무더워지는 이상기온 가운데 맞이하는 6월이라 더욱 엉겁결이고 정신이 없습니다. 벌써 한 해가 또 절반가까이 지나가버렸습니다. 부디 삶이 우리를 속이지 못하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도록 마음 다잡고 되돌아보시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목사님이 예배시간에 방해가 된다고 핸드폰을 가져 오시지 말라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 나가 있는 외아들로부터 핸드폰을 받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홀로 있는 어머니가 걱정이 된다면서 아들은 핸드폰을 사주면서 어디에 가든지 꼭 가지고 다니라고 신신 당부했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디에 가든 핸드폰을 챙겼습니다. 교회에 갈 때 성경은 안 챙겨도 핸드폰만은 꼭 챙겨 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지난 주에 하도 강조를 해서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깜박 잊고 핸드폰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설교 시간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컬러링에서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노래 리듬이 울렸습니다. 성도들은 배꼽잡고 웃고 있는데 목사님은 “내가 그렇게 신신 당부하였는데 말을 듣지 않고 왜 예배 시간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 왔느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할머니가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갑자기 예배당은 써늘해졌고 할머니는 쥐구멍이라도 찾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강대상에서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늴리리야 늴리리야...”라는 컬러링 소리였습니다. 범인은 목사님이었습니다. 60대인 목사님도 깜빡 잊고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강대상에 올라온 것입니다. 온 교인들이 목사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핸드폰을 열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 하나님 말씀하시지요. 예..예...잘못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잠시 꺼두셔도 됩니다.

아담이 어느 민족이었을까? 분명하지는 않지만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으로 보아 한국 사람은 분명히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 같으면 선악과를 먹지 않고 뱀을 잡아먹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더라도 이들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아담까지 선악과를 먹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남자들은 도무지 아내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들어가서 : 많이 웃기셨는지요? 웃으면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90%가 치유되고 류머티즘에도 확실한 효과가 있으며 식후 20분간 웃기만 해도 혈당치 상승이 약 40%나 억제된다고 합니다. 금 싫어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요즘 금값이 너무 올라서 금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인데 제가 선심 쓰듯이 오늘 설교 제목을 ‘황금을 드리겠습니다’로 정했습니다. 힘겨운 인생에 황금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웃음이 아닐까요! 일단 제가 웃음이라는 황금을 여러분께 드리면서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황금 받으셨지요?
뜬금없이 황금 타령을 하는 것은 제가 실제로 999.9% 황금을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황금과도 같이 고귀하고 값비싼 하나님의 말씀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황금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황금과도 같은 고귀하고 값어치 있는 기독교의 기본적 윤리규범을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7장 12절입니다. 사실 이런 류의 말이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격언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아닐꺼라는 추측이 있습니다만 그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구절이니 성서에도 예수님의 입술에 담아 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문구라 하더라도 중요하면 예수님도 말씀 안하셨다고 볼 필요는 없겠지요. 아무튼 이 구절은 기독교 윤리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황금의 말씀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인간관계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사에서 끔찍한 참상을 불러 일으키는 두 가지 요인을 보면 남의 것에 대한 탐욕과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중 소통이 안 되고 오해가 생기고 대결로 치닫게 되는 것의 대부분은 자기 관점에서만 소통하려고 하는 미숙함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자리가 어떤 곳이든지 자신의 방식과 스타일, 관습으로만 소통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처럼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해주어야 할 것을 생각할 줄 안다면 이런 오해는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것을 원할까를 생각하고 접촉한다면 소통은 보다 원활해질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 때도 다를 것은 없었겠지요. 예수님을 가까이서 모신 열두 명의 제자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면모를 일일이 보면 참 기가 막힌 구성입니다. 어부가 넷, 세금공무원에 폭력적 열심당원, 출신을 알 수 없는 제자들. 이들은 가족까지 끌어들여 은근히 자리 욕심을 부리고 서열다툼을 하거나 수제자인 베드로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하면서 문제를 만듭니다. 이런 제자들을 거느리실 때 예수님도 참 난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어부들을 대할 때는 고기 잡는 일로 만나십니다. 세금공무원들은 그들 그룹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나눕니다. 창녀와 병자, 가난한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눈높이 모임에 들어가셔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함께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대접 받고 싶은 그대로 남에게 먼저 대접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대북한 사업을 하다 보니 남과 북의 문화 차이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최근에 본 책에 따르면 북한 대학생은 연애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연애를 하다가 걸리면 심한 경우 퇴학도 당한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은 학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체제여서 학생들이 국가나 인민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 연애질이나 하느라고 학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반면 남한 대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연애가 자유롭고 연애에 집중한다. 남한의 대학생들은 자기 돈으로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채의식이란 없습니다. 그저 지성적 자유인으로 누리는 자유가 우선입니다. 또 남쪽은 우회적으로 이야기하지만 북은 직설적으로 얘기합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직접대면의 기회가 많지 않은 남쪽은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간접화법을 택하지만 북은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많은 공동체 사회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오해를 해소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쪽은 북한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면서 자유가 없고 경직돼있고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독재국가라고 인식합니다. 반면 북한은 남한을 타락하고 이기적이며 돈만 알고 진심이 없는 말종이라고 인식하겠지요?
문화에 옳고 맞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좋은 것도 없습니다. 자신들이 불편해 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도 없지요. 그런데 이런 사실을 생각지 않고 남과 북이 만난다면 만나는 그 순간부터 오해하고 분노하고 다투게 될 것입니다. 그저 내 생각만이 맞고 옳다고 고집하는 관계는 결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할까봐 걱정입니다. 완고하고 자기의가 강한 사람, 자수성가하여 제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이 구원 받기 힘든 것은 심판대 앞에서도 하나님과 다투며 자기 말이 맞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자기의 주장만 강요하는 것은 이처럼 끔찍한 일이자 관계를 깨뜨리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젠 우리교회도 중형교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는 다르다는 느낌보다는 비슷하고 같다는 느낌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얼마 되지도 않는 교인이지만 참 많이 다르다는 느낌, 그리고 다양한 기대들과 반응들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 대한 혹은 천국에 대한 기대, 기대하는 모습도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교회와 천국이라는 개념조차도 서로 다르다면 큰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천국에 다녀온 사람이 없으니... 그저 다양한 기대와 반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황금률의 말씀일 것입니다. 남에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관점으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마음을 헤아리라는 가르침을 따르면 그냥 그 자리 그 시간이 바로 천국이 됩니다. 다툼이나 오해, 소통의 부재가 있을 리가 없겠지요. 그날이 바로 좋은만남교회가 천국이 되는 날입니다.
정말 타인이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따라주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먼저 내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변할 각오가 돼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맞섰던 이들 바리새인 서기관도 마찬가지의 경우입니다. 자기들이 맞고 한 치의 오차도 없다고 믿는 자기의, 자기확신이 강하여 도무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오늘날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반하는 대표적인 적대세력으로 지목받고 오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이방인을 배척하고 오직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막힌 담을 허시고 세계인류가 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다양한 타인들에 대한 배려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들은 것 같은데 참으로 주옥같은 말이 나와서 얼른 스마트폰에 적었습니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내가 막는 것,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내가 막는 것이다.’ 나의 마음은 열려 있는데 상대방이 도무지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나는 너그러운 사람이라 내 중심이 아닌데 상대방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푸념하지도 마십시오. 어쩌면 오만이나 편견으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황금덩어리를 발로 차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마땅히 따르고 본받아야 할 삶의 자세이자 모습이고 모범입니다.

 

나가며 : 한 만남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주문을 하는데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이집 김치찌개가 최고니까 그걸 시켜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사람 역시 이 집은 된장찌개가 최고라며 된장찌개를 시켜 먹으라고 권합니다. 둘은 모두 최고의 것을 서로에게 권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자신의 관점과 자신의 관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대접이 최선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의 관점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은 잘 하고 있다고 자만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예수님처럼 자기를 버리면서 타인의 자리에 서 보신다면 갈등은 줄어들고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황금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이 말씀이 삶 가운데 살아 생동하게 하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자비,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3 [깨어나십시오] - 사랑의 세계 8 좋은만남 2012.05.22 291
322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5/27) 좋은만남 2012.05.29 285
321 [깨어나십시오] - 사랑의 세계 9 좋은만남 2012.05.29 241
320 '나는 슈퍼스타?' / 마태복음 5:14-16 - 이관택 전도사 좋은만남 2012.05.29 577
319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6/3) 좋은만남 2012.06.12 315
318 [깨어나십시오] - 사랑의 세계 10 좋은만남 2012.06.12 240
317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라' / 고린도전서 12:31b - 13:6 - 이관택 전도사 좋은만남 2012.06.12 510
316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6/10) 좋은만남 2012.06.12 271
315 [깨어나십시오] - 사랑의 세계 11 좋은만남 2012.06.12 289
314 '희망의 상자' / 로마서 5:1-5 - 이관택 전도사 좋은만남 2012.06.18 421
313 사회적 성화를 위해 함께 드리는 기도(6/17) 좋은만남 2012.06.18 259
312 [깨어나십시오] - 사랑의 세계 12 좋은만남 2012.06.18 296
311 하나님 나라를 고백하라 / 누가복음 17:20-21 - 방현섭 목사 방현섭 2012.06.23 378
» 황금을 드리겠습니다 / 마태복음 7:12 - 방현섭 목사 방현섭 2012.06.23 392
Board Pagination Prev 1 ...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 56 Next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