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완전한 사랑을 향하여
성서 : 마태복음 5:43-48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46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들어가며 :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감사로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성도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그 교회에서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중의 한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진 말씀하셨습니다. "응, 있었는데, 다 죽었어."
들어가서 :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고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왜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확신하십니까? 아마도 많은 분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이생에서의 삶이 끝나면 천국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신앙의 목적,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일까 하는 것은 좀더 생각해봐야겠지요.
천국은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 목표가 아니라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천국을 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잘 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결과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서 올바른 신앙을 갖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른 믿음을 갖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셔서 천국에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바른 신앙, 바른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서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이 세상 끝까지 있겠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가장 큰 계명은 이것이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두 번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성서는 계속해서 사랑을 이룰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수천 년의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였고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피조물인 사람들을 사랑하셨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하게 성취된 것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이 구약과 신약을 꿰뚫고 있는 주제이자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가장 큰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부하고 대항한 엄청난 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나 다름 없는 존재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 외아들을 인류의 죄를 대신 갚는 희생제물로 내어 놓으십니다. 또 예수님은 인류의 죗값을 대신 갚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만큼 큰 사랑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큰 사랑을 이루시고 드러내신 것입니다.
주일을 빠짐 없이 성수해야 하고 또 소득의 1/10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기도생활도 열심히 해야 하고 때를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마음 속의 소망에 대해 알려내는 전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바로 신앙을 이루고 거룩함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둘러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은 사실 사랑 받을만한 존재, 사랑하고 싶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소위 모범적인 교인들, 착하고 순종적인 교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교인들도 착하고 겸손하며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사람들 중심으로 교제가 일어나고 교분이 쌓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경고하십니다. ‘사랑받을 만한,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 무엇이 어렵더냐,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뛰어 넘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고 미워하는 이들을 휘하여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보통 사람이 하는 사랑을 뛰어 넘어 더 큰 사랑을 할 것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보통사람의 사랑을 뛰어 넘어 보여주고 이루어야 할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핍박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대상이라면 과연 누구, 어디일까요? 저는 북한에 대해 편견 없이, 선입견 없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한국의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북한의 영유아 지원사업을 하는 저도 좀 복잡하고 답답합니다. 여러분도 많이 듣고 공감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낸 쌀이 미사일 되어 돌아온다.’ 천안함 사건은 정말 북한의 소행인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제쳐 놓는다 치더라도 연평도 포격, 핵실험, GPS교란,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과 협박,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로도 이용될 수 있는 발사체 실험 등등 한국을 도발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벌였습니까? 순수한 차원에서 지원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판에 오히려 깽판을 놓는 것 같은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봐왔습니까? 게다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닌가 하는 회의감도 들고요. 한국 국민 감정과 정서도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데다가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쏟아내면서 대북감정을 악화시키고 있기까지 합니다. 정말이지 요즘 시대에 북한을 돕자는 말은 누가 내 뺨을 한 대 때려주세요 하고 들이 대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은 북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구나 사랑 받을 만한 사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대수로울 것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당시에 가장 악한 존재로 지목되던 세금관리인, 세리나 이방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다 한다고 지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분명 이들과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보여주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선과 악이라는 잣대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은 햇살과 비는 의인과 악인을 떠나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리죠. 기독교인의 사랑은 이처럼 어떤 이유나 어떤 공로에 의해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 악인이나 의인이냐를 떠나서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 조건이 없는 것처럼 기독교인이 베푸는 사랑은 역시 아무 조건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장 어려움에 처한 국가 중 하나인 북한에 대해서 가장 강한 적개심을 품고 가장 격렬하게 비난해대는 집단이 바로 한국 기독교인 것은 참으로 비참하고 비탄한 일입니다. 북한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탄압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할 집단으로 생각해서인지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듯이 보입니다. 퍼 줘봤자 미사일이나 만든다고 펄펄 뛰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 그 분들은 기독교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껍데기뿐인 사랑을 반드시 심판의 자리에서 따져 물으실 것입니다. 왜 완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였느냐고 물을 실 것입니다.
작년에 두 번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평양과 사리원, 남포 등의 유치원, 고아원 등에 방문하여 북한 지역을 둘러 보았습니다. 북한은 남한사람에게 자격지심이 있어서 자기들 비참하게 사는 것을 잘 안 보여줍니다. 그래서 고아원이나 유치원도 잘 운영되는 괜찮은 곳만 보여줍니다. 저는 그곳의 비교적 영양상태가 양호한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비참하게 마르고 영양상태가 안 좋은 아이들을 보고 왔더라면 아마도 모금을 더 많이 이끌어 낼 수는 있었겠지요. 그러나 또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온 것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무튼 그랬습니다.
북한의 인구가 3천만 명이 조금 안 된다고 하는데 그중에 600만 명이 취약계층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약 20%가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걸 보면서 저들을 도와줄 것인가, 아닌가, 도와주거나 혹은 도와주지 않았을 경우에 어떤 이익이 우리에게 있을까, 어떤 손실이 있을까, 나중에 저들이 오히려 우리를 괴롭히면 어떨까... 이런저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들을 숙고하고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 보이겠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성서가, 오늘 읽은 말씀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 이 명령을 기쁜 마음으로 마음에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나가며 : 특히 감리교회 교인들은 더욱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해방 전 북한지역에 388개, 만주지역에 16개 감리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만 지금은 다 없어졌습니다. 가정교회라는 형태로 교회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교회는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만이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북한교회의 재건을 위해서도 함께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 마음속에 큰 깨달음이 있고 울림이 있어 이제부터라도 완전한 기독인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완전한 사랑을 이루어야 할 대상이 북한 동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나눌 수 있는 여러분 또한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