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더불어" / 로마서 12:15-18 - 이관택 전도사

by 좋은만남 posted Jan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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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6일 주현절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함께, 더불어

 

이관택

 

본문: 로마서 12:15-18

15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16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18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드디어 2013년 계사년 뱀의 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60년에 한번씩 돌아온다는 흑뱀의 해라고 합니다. 그냥 뱀도 징그러운데, 까만 뱀이라니, 좀 더 징그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기독교 전통에서 보면 뱀은 굉장히 기분 나쁜 동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사탄이 바로 뱀입니다. 멀쩡히 하나님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우리 인류의 조상을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한 망할 놈의 짐승이 바로 뱀 아닙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은 하나님께서 만든 모든 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뱀은 평생토록 여자의 자손들의 발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뱀은 진짜 저주받은 동물일까요?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지요. 하나님이 손수 만든 창조물을 저주하시다니요? 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많은 나라에서 길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몸이 길어서 장수를 뜻하기도 하고, 지혜를 가리키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제국을 상징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왕을 생각해보십시오. 뱀이라는 건 다시 말해 거대한 제국의 상징입니다. 이집트에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블레셋과 아멜렉로마 등 당시의 힘 있는 여러 나라에게 끊임없이 괴롭힘 당하고, 종살이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뱀은 어떤 의미였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발을 손상케 하여 우리를 노예로 전락시키는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부와 명예와 장수 지혜의 상징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일지 모른다! 하나님 앞에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번 더 거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조상들의 경우 뱀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역시 뱀은 아주 길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장수, 지혜, 다산, 풍요를 뜻하는 듯 많은 좋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특히 제 맘에 드는 것은 뱀이 재생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뱀이 허물을 벗고 한단계 성장하듯, 새로운 변화와 시작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 사도가 이전 것은 지나갔으되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라는 말씀처럼 이전의 상처투성이 몸둥아리, 더럽고 비루한 정신, 나약하고 탐욕스런 우리의 마음을 허물 벗듯이 모두 버리고, 더욱 성장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재생,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2013년 계사년 우리 모두가 재생의 삶, 즉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또한 더불어 우리가 함께 이뤄가는 좋은만남교회가 진정으로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사는 공동체로 새롭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2013년에는 절망에 빠져버린 한국사회에 진정한 재생의 역사가 이뤄지기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세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염원합니다.

 

올해 2013년 좋은만남교회의 표어는 작년 제작년과 마찬가지로 예수감동입니다. 풀어보면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사는 공동체입니다. 지난 2년간 우리 예수님처럼 느끼려고, 또 예수님처럼 살려고 무던히 노력해왔지만, 올해가 바로 그 끝판왕의 해입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 보셨습니까? 재미있었나요? 1편이 반지원정대인데,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모릅니다. 영화는 3시간인데, 지루해도 너무 지루했지요. 2편도 그저그랬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3왕의 귀환!” 이것이 지금의 반지의 제왕을 있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도 마지막편이 가장 중요하듯이, 올해는 우리교회적으로도 각자의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그 동안 잘했던 분들은 더욱 힘을 내서 마무리 하시고, 그 동안 좀 부족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 번에 다 만회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기본일텐데, 어찌보면 평생을 붙잡고 가야할 문제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사도가 로마의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의 한 대목입니다. 읽는 것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저는 2013년 새해벽두에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부디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말씀으로 받으시길 부탁드립니다.

 

15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16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18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산다. 2011년도에는 이런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좀 어려우니 일단 예수님처럼 느끼기라도 하자구요. 예수님의 감수성을 우리도 본받고, 민감하게 느끼면서 살자구요. 그런데 느끼는 것과 사는 것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느끼는 만큼 살고, 사는 만큼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느끼고, 사는 것 어떻게 합니까? 앞에서 바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대로만 하면 확실합니다. 이 말씀을 먼저 가슴에 새기시구요 저는 이 말씀 중에 3개의 단어를 가지고 보충하려합니다.

 

첫 번째는 함께입니다. 투게더 함께라는 말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이미지가 가장 강렬하게 떠오릅니까? 예수님이 혼자 잘났다고 폼 잡는 이미지 보다는 항상 누군가랑 함께 있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수많은 양떼에 둘러싸인 모습, 군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 힘겨운 여인의 등을 토닥거리는 모습, 소경의 눈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 등 혼자인 예수님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기쁜 잔치 자리에선 호탕하게 웃어 제끼고,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십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 만드는 거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야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었구요. 뭘 좀 아는 사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울고 있는 사람 앞에선 철저하게 먼저 무릎을 꿇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당시의 성인 남자로서는 가질 수 없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마음, 장애인의 마음, 아이의 마음, 이방인의 마음을 공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예수님께서는 깊이 개입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많은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기 때문에 함께가 아니었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이들을 자상하게 대하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예수님의 함께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셨기에 그는 함께였습니다. 나랑 생각 맞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꾸리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류보편, 생명과 평화를 위해 기꺼이 모든 존재와 함께일 수 있는, 함께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함께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원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까지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함께입니다. 바라옵기는 2013년 좋은만남교회가 이 지역 은평구를 넘어, 한국사회를 넘어, 세계의 평화를 넘어, 우주의 평화!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기대하는 공동체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함께입니다.

 

오늘 말씀에 계속 이어지는 단어들 중 2번이나 등장하는 것이 바로 모든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함께가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인 구원과 보편적인 사랑의 메시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모든 사람은 둘째 치고, 내 옆의 단 한사람이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엊그제 여자친구 집에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상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울상을 짓는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보일러가 고장나서 그 전날밤 너무 추어서 잠을 한 숨도 못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아무튼 단 한사람 사랑하는 것도 어려운데...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마지막 3번째 단어는 약간의 위안이 됩니다. 18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이라는 말입니다. 여자친구집 보일러가 고장났는데, 저보고 고쳐달라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아마도 위로해달라거나, 같이 있어달라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는 따뜻한 떡볶이와 순대, 오뎅국물을 사가는 일일 것입니다.

 

할수있는대로라는 말에는 변화하겠다라는 의지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건성으로 해볼께가 아닙니다. 적극적인 변화의 의지를 갖겠다라는 말입니다. 겁이 많고 무식했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전과 다른 새사람이 되는 것을 보십시오.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사도행전의 베드로를 보면 마치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끕니다. 바울사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같이 위대한 신앙인들은 변화의 아이콘입니다. 변화는 가장 가슴벅차고, 역동적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변화를 원하십니까?

변화하지 않는 물, 고인물은 썩는다고 하지요? 요새같으면 고인물은 얼어버립니다. 우리의 삶까지 얼게 만들 이 추위 꽁꽁 얼어붙지 않으려면 끊이없이, 변화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2013년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절실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변화합시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고, 사랑합시다. 예수님이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하며 여러분으로 인하여, 사건이 벌어질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를 정리합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던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변화의 3단계를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낙타이고, 두 번째는 사자, 마지막 단계는 아기입니다. 낙타는 나는 해야만 한다라는 말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끌려다니는 존재의 상태입니다. 법과 규율에 끌려다니는 모습입니다. 마치 노예처럼 말입니다. 신앙으로 따지면 억지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사자의 단계는 나는 원한다라는 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적극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마지막 3번째 단계는 아기입니다. “모든 것이 신비로운 상태그 어떤 것도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보고, 만져볼 수 있는 단계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뛰어넘어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궁금하며, 새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2013년 우리는 어떤 상태로 살아갈까요?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 어떤 것일까요? 함께 더불어 평화롭게 아기처럼, 살아가야겠지요. 그 무엇보다도,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염원하고, 맑고 깊은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기를 소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